교육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홈스쿨링이라는 조심스러운 실험에 대하여

by 신아르케

나는 아내와 함께 자녀들을 홈스쿨링으로 양육해 왔다. 대안학교나 특정 교육 기관에 의존하지도 않았고, 특별하거나 대단한 커리큘럼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우리의 교육은 단순했다. 아이가 최대한 스스로 사고하고, 스스로 계획하고, 자신의 의지로 공부해 나가도록 돕는 것, 그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선택은 용기라기보다 하나의 실험에 가까웠다. 공교육 체제 안에서 성장한 부모로서, 아이를 그 익숙한 틀 밖에 두는 일은 언제나 불안과 함께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이 반드시 하나의 경로만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첫째 딸은 2007년생이지만, 재작년에 수능과 논술을 통해 영문학과에 조기 입학했다. 대학 진학 자체보다 더 큰 걱정은 ‘적응’이었다. 1년 빠른 입학이라는 점도 부담이었고, 무엇보다 그동안 경쟁을 전제로 한 시험을 거의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공부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관계 속에서 위축되지는 않을지, 가족 모두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첫 학기를 지켜보았다.

학기가 끝났을 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한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A+를 받았고,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의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았기에 부모도, 본인도 놀랐다. 그러나 성적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난 심리적 변화였다.

딸의 말을 통해 나는 중요한 차이를 하나 발견했다. 수능 공부는 범위가 끝없이 넓어 막막했고, 그 막막함이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반면 대학 공부는 범위가 명확했고, 그 안에서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끝이 보이자 의욕이 생겼고, 공부가 다시 흥미로운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공부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는 단순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수업 문화였다. 누군가 앞에서 가르치고, 학생들이 그 설명을 따라가며 배우는 구조 자체가 그녀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수업을 듣는 일이 즐거웠고, 그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대학에 와서도 수업 시간에 무관심하거나 졸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것 역시 기대하지 않았던 심리적 결과였다.

2학기에도 그녀는 댄스 동아리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바쁘게 지냈고, 학기 말에는 다시 한 번 전액 장학금과 함께 과 전체 1등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성적 그 자체가 아니다. 그 경험이 그녀의 태도와 성격에 남긴 변화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생기자, 주어진 기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새로운 활동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말과 행동에도 자연스러운 자신감이 실리기 시작했다. 성취가 사람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을 나는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물론 이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홈스쿨링이 공교육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도, 성공과 실패를 입시 결과로 판단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교육의 결과에는 개인의 기질, 환경, 관계, 우연이라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같은 조건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하다. 교육에는 공교육 말고도 다른 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어서다. 공교육은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다소 강제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사회성을 배우는 강점을 지닌다. 반면 홈스쿨링은 자기 주도성과 내적 동기를 키울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아이마다, 가정마다, 상황마다 맞는 길이 다를 수 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이 선택은 위험을 감수한 하나의 실험이었다. 그 실험을 통해 나는 공교육 환경에서 성장한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세계의 작동 방식이, 아이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앞으로의 삶은 또래와는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때로 인생을 더 창의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나의 철학적 신념에 따르면, 자신의 삶을 개성 있게 개척해 나가는 사람은 독립적이며 실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딸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자식 자랑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 점을 부정하지 않겠다. 모든 부모에게 자녀는 하나의 면류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딸바보’ 아빠일 뿐이다.

나는 나의 첫째 딸의 삶을 축복한다. 그리고 그녀뿐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자녀들이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교육의 길이 하나가 아니듯, 삶의 길 또한 하나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