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연구2』를 읽으며 다시 생각한 시민사회의 조건
역사의 연구 2권을 읽으며 나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론은 단순했다. 성숙한 시민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이 자유는 흔히 오해되듯, 언제나 편안하고 조용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는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시민에게 자유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들이 언제나 현명한 선택만 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숙한 사회란 시민의 실수 가능성까지 감내하는 사회다. 여기서 중요한 덕목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관용이다.
자유로운 사회는 필연적으로 시끄럽다. 서로 다른 생각과 욕망이 충돌하고, 그 차이를 조율하기 위해 대화와 타협이 반복된다. 이 과정은 피곤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사회는 이 소음을 정상으로 받아들인다. 갈등을 제거해 침묵을 얻기보다, 갈등을 관리해 자유를 지키는 쪽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관용은 인간의 본성에서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와 다른 의견을 불편해하고, 틀렸다고 단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관용은 미덕이라기보다 학습과 훈련으로 익혀야 하는 시민의 기술에 가깝다. 성숙한 시민사회는 이 기술을 교육을 통해 길러낸다.
이 지점에서 법의 역할을 다시 보게 된다. 국가는 최고의 도덕을 기준으로 사회를 운영하지 않는다. 법은 성인군자의 삶을 강제하기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질서와 권리를 보장한다. 법이 도덕적 완벽을 요구하는 순간, 그것은 통제가 되고, 통제는 곧 자유의 축소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국가의 의지가 윤리 판단까지 독점하려 할 때, 사회는 전체주의적 경향으로 기울기 쉽다.
전체주의적 사회는 겉보기에는 편안해 보일 수 있다. 윤리적 선택을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편안함의 대가로 시민은 선택의 자유를 잃고, 책임의 감각 또한 약해진다. 나와 다른 집단과 개인은 쉽게 배제되고, 다름은 곧 잘못으로 낙인찍힌다. 자유를 포기한 사회가 맞이하는 풍경이다.
만약 한 사회가 독재자의 권력 아래에서 시민의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 원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유를 불편함으로 여기고, 관용의 훈련을 게을리해 온 이전 세대의 선택들이 축적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사회가 다시 성숙한 시민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자유가 박탈된 상태로 고착될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의 책임에 달려 있다.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역사는 자유가 언제나 희생의 대가 위에서만 유지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오늘 자유로운 시민사회에서 살고 있다면, 그 배경에는 반드시 선배 세대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자유를 누리는 만큼, 불편함을 감수하고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성숙한 시민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동시에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이들과 공존하는 관용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자유는 소란스럽고, 민주주의는 피곤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유는 인간을 시민으로 만드는 조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