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대가

by 신아르케



생명에는 대가가 따른다.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그리고 한 주일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신체는 일정한 리듬 속에서 움직인다. 어떤 날은 몸이 가볍고 정신이 맑다. 집중력도 높고 생각도 또렷하다. 그러나 또 어떤 날은 몸이 무겁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집중이 되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피로를 느낀다.

이러한 변화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생명의 주기이다.

우리는 여러 방법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려 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삶의 저점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강도는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 자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그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온다.

신체의 상태가 흔들리면 마음도 영향을 받는다. 몸이 지치면 생각은 쉽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일도 괜히 마음에 걸린다. 나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부정적인 자아는 이러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불편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온갖 부정적인 해석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나는 가끔 멈추어 나 자신을 바라본다.
지금 나의 몸은 어떤 상태인가.
그리고 나의 마음은 어떤 상태인가.

가만히 관조해 보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기본 상태는 완전한 평안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포함한 상태라는 점이다. 약한 강도의 피로와 긴장, 작은 고통들이 늘 존재의 배경처럼 깔려 있다.

이것은 인간이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조건일지도 모른다.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흐르는 감정을 “절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부터 불안과 절망의 가능성을 함께 안고 살아가게 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스스로를 성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내면의 불편함을 피하려 한다.
고통을 직면하기보다는 잠시라도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강한 자극을 찾는다. 술, 담배, 도박, 과도한 쾌락, 혹은 끊임없는 자극적인 즐거움들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기도 한다. 더 강한 쾌락을 통해 현재의 불편함을 잠시 덮어버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수준을 넘어가는 쾌락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이 된다.
육체를 병들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며, 삶을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끌어들인다. 고통을 피하려 했던 선택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존재의 고통은 생명의 대가이다.

생명을 받은 존재라면 누구나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종종 고통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이 찾아올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무조건 제거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쩌면 더 지혜로운 태도는 그것을 피하려 애쓰기보다 존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생명의 주기에 따라 우리에게 찾아왔듯이, 또한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잠시 멈추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견뎌 보면 마음은 조금씩 차분해진다. 몸의 긴장이 풀리고 생각의 소음이 잦아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의지가 마음속에서 조용히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수많은 생명의 희생 위에 서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생명에서 비롯된 유기물을 섭취하고, 그것을 에너지로 바꾸며 살아간다.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어떤 형태의 희생과 소비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삶 속에서 찾아오는 고통 역시 어느 정도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비용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삶의 고통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문제로만 보지 않으려 한다. 그것을 쾌락으로 덮어버리기보다, 또는 신앙의 이름으로 억지로 외면하기보다, 용기 있게 마주하려 한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묵묵히 견뎌내려 한다.

어쩌면 지혜로운 삶이란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통과하는 삶일지도 모른다.

생명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