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재는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존재 방식이 있다. 혼자 살아갈 때는 그것이 크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게 되면 각자의 존재 방식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드러난다. 말과 행동, 표정과 태도, 일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나는 이 글에서 한 사람의 존재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카리스마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카리스마는 특별한 권위나 리더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가진 분위기, 태도, 성향, 삶의 방식이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히 영향을 미치는 힘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서로의 카리스마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영향은 매우 미묘하고 복잡하게 작용한다. 어떤 사람의 열정은 누군가에게는 자극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솔직함은 누군가에게는 신뢰로 느껴지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관계의 미묘한 패턴을 완전히 규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차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기호, 그리고 익숙한 방식에 따라 세상을 바라본다. 그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하기도 한다. 심할 경우 상대를 악마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숙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상대방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포용하며 관용할 수 있는 자세가 성숙한 시민 의식이며 공동체를 살아가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만약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항상 고려해야 한다면, 삶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할 때마다 누군가 상처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누군가 불편해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사람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겸손한 사람, 좋은 사람, 편안한 사람이라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용기와 자신감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반대로 공감 능력 없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그 경우 사람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나는 요즘 바로 이 지점에서 고민하고 있다.
어느 쪽이 옳은가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회사에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단지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모습이 주변 동료들에게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들은 나의 속도와 열정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 것일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기준에서 보면 잘못은 없다.
그러나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공동체 안에서는 단순히 옳고 그름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 타인의 연약함을 돌아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은 그렇게 완전히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는 열정적인 사람 앞에서 자극을 받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위축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하나의 기준을 세워 보았다.
공동체 안에서 나는 내가 가진 역량의 70퍼센트 정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가진 열정을 있는 그대로 100퍼센트 발휘하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금 절제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겸손의 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겸손이란 자신을 무조건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타인을 위해 절제할 줄 아는 태도일 것이다. 때로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내 자유가 조금 제한되는 것처럼 느껴져도,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조절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있고, 나의 진심과 열정이 오해받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의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는 절제를 요구하되, 타인에게는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의 존재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칭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기독교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절제를, 타인에게는 이해와 사랑을.
그리고 그 균형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