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by 신아르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된다.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 특히 신앙을 막 시작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교회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그 말을 들은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나는 지금까지 내 생각대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는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삶 전체를 흔드는 문제로 다가온다.

오래 신앙 생활을 한 사람조차도 일상의 대부분을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따라 살아간다. 그런데 새신자에게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겨라”라고 말하면, 그것은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로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도 하나님께 물어야 하는가.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든 것을 일일이 묻고 기다려야 하는가.

이 질문은 어쩌면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중요한 질문이다.

만약 다 자란 자녀가 매번 부모에게 “오늘 무엇을 먹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건강한 관계라기보다 오히려 미성숙한 모습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는 것은
정말 그렇게 모든 사소한 선택까지 지시를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무엇을 하나님의 뜻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잘못 설정했을 가능성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매우 분명하다.

그것은 한 인물의 삶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다.

성경은 그분의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스스로를 낮추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끝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빌립보서 2:6-8)

이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핵심이 담겨 있다.

나는 이것을 십자가의 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정신은 거창한 신비한 계시가 아니라,
아주 분명한 방향을 가진다.

겸손, 낮아짐, 사랑, 용서, 관용, 인내.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방향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내가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를 맞추는 문제가 아니라,
그 선택 속에서 어떤 마음과 가치를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다.

상처 입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함께 식사를 한다면,
메뉴는 중요하지 않다.
그 선택 안에 담긴 사랑과 배려가 중요하다.

어떤 직업을 가지는지도 마찬가지다.
그 일이 세상적으로 크고 작음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세부적인 선택의 목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방향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것을 피한다.
더 편한 길을 선택하고, 더 유리한 판단을 내리며,
자기중심적인 선택을 합리화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때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단순하지만 따르기 어려운 것이 된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삶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물어보는 삶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기준 앞에서 매일 선택하는 삶이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이 있다.

이 선택은
십자가의 정신에 가까운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아마도
하나님의 뜻은 그 질문 속에서
이미 충분히 우리에게 드러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