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이전에 한 걸음

by 신아르케

러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내 공원을 지나는데, 목줄 없이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중년의 남성분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폰도 없이 휴대폰으로 영상을 크게 틀어 놓은 채 걷고 계셨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민주시민이라면,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행동을 보면 조심스럽게라도 말을 건네는 것이 맞지 않을까.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가갔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상황은 단순하지 않았다.
아무리 불러도 그분은 나를 인식하지 못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야, 그분의 청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거니, 처음에는 경계하는 기색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고 예의 있게 말을 꺼냈다.
같은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에서, 목줄 없이 산책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고, 견주 전체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다.

그때 그분은 조용히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그 반려견은 19세의 노견이었고, 시력도 거의 잃은 상태였다.
목줄을 채우면 아예 움직이지 못해 산책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곁에서 지켜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며 산책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나는 그저 보이는 장면만을 근거로,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정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판단했던 것인가.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한다.
눈에 보이는 한 장면, 한 행동, 한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규정해 버린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마치 충분한 근거를 가진 것처럼 확신해 버린다.

그러나 오늘의 짧은 만남은 나에게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 사람의 삶 전체, 그 상황의 맥락, 그 안에 담긴 사정까지 알지 못하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옳고 그름을 나눈다.

그 이후로 나는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산책을 하며 음악이나 영상을 크게 틀어 놓은 나이 드신 분들을 볼 때,
예전처럼 단순히 불편함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혹시 나처럼 모르는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그분에게는 그 방식이 가장 편한 선택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공공의 질서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질서를 이야기하는 방식 또한
이해와 여유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나는 조금 더 배우게 되었다.

나는 오늘의 경험을 통해 하나의 다짐을 마음에 새겼다.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 것.
내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지 말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판단하기 전에 한 걸음 더 다가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

어쩌면
성숙한 시민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을 늦출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