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 가치관과 습관, 심지어 취향까지도 이미 공고하게 형성된 이 시점에서, 나는 묻는다.
과연 지금의 삶의 궤도를 바꾸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그 궤도가 심히 왜곡되어 있고, 악과 죄로 점철되어 있다면 단호한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다양성의 하나, 개성의 발현 수준이라면 전면적인 전환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인식 아래에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삶의 미세한 조정들이다.
나의 선택들을 되돌아보고, 아주 작은 각도를 수정하며, 보다 선하고 온전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시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여정 속에서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선택해 온 삶의 길이 죽음이 아닌 구원으로 향해 있기를.
나의 존재가 세상에 고통을 가중시키는 자가 아니라, 위로와 자유를 더하는 자가 되기를.
나는 나 자신이 결코 쉽게 ‘사랑’에 헌신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육체의 수고, 정신의 헌신을 통해서라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의 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나 역시 이상적이거나 완전한 존재는 아니다.
인생에는 분명한 방향성이 존재한다.
마흔 중반에 이른 지금, 나는 이 사실을 더욱 깊이 실감한다.
지구에서 명왕성을 향해 탐사선을 발사했다고 상상해 보자.
발사 순간의 각도 차이가 아주 미미하더라도, 긴 여정을 거쳐 도달하는 지점은 전혀 다른 궤도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성장의 어느 시점부터, 즉 자기 인식을 시작한 때부터, 삶의 순간마다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주어진 세계 속에서 '기투(棄投)'해 온 것이다.
‘기투’란 무한한 가능성의 장 속에서 내가 의지적으로 방향을 선택하고 행동함으로써, 어떤 존재가 되기를 결단하는 행위다.
이 선택들은 때로 지혜롭고, 때로 어리석으며, 때로 선하고, 때로 악하다.
이 모든 선택들의 총합이 지금의 나를 구성한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어릴수록 인생의 방향을 수정하기가 비교적 용이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것은 점점 어렵다는 사실이다.
중년에 이른 사람은 자신의 삶의 궤적으로부터 그가 향하고 있는 인생의 전체 방향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남은 인생을 통해 더 나은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의 선택들이 만든 이 존재를 긍정하며, 오늘도 신께 지혜와 긍휼을 구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내 인생이, 지금 이 순간도, 선하고 바른 길 위에 놓여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