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하는 예배자, 던져진 삶에서 나를 빚다

by 신아르케

현재의 나는 수동적인 삶을 극도로 경계한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험적 조건 속에서 나는 의식적으로 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속에서 종종 삶의 주도권을 상실한 듯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조직과 전통, 집단의 문화, 사회 분위기, 과거의 경험들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마치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닌 게임의 규칙 속에 던져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때 많은 사람은 체념을 선택한다.
주어진 틀 속에서 적응하거나, 혹은 분노하며 비판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삶의 주도권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인식과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든 능동적 주체로 자리할 수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한 대로, 우리는 던져진 존재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자율적 주체다.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 나는 대타존재(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 왜곡된 자아를 잠시 접어두고 나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로 했다.
사르트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내가 대자존재로서 인식하는 나와, 타인에게 보이는 대타존재로서의 나는 불일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아로 살아가기 위해선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함몰되지 않고, 나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 사유를 예배라는 행위를 통해 실천해 왔다.
매주 주일 오전 11시 30분, 나는 교회의 예배 처소에 앉아 있다.
예배의 구성권은 목회자에게 있고, 찬양은 찬양 리더가 이끌며, 설교는 설교자의 일방적 전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틀 안에서 나는 어떻게 나의 존재를 능동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몰입’에 있었다.
나는 미리 그날의 말씀 본문을 읽고, AI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찬양곡 역시 악보와 음원을 통해 익혀두며, 예배 중에는 육체와 감정을 함께 사용하는 예배를 드린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감정의 에너지를 찬양에 담아 표현한다.
설교 시간에는 수동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경청하며 필기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나를 예배의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만든다.

몰입은 단순한 집중을 넘어선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통점으로 **몰입(flow)**을 발견했다.
그는 말한다.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어려운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온다.”
나는 이 정의를 통해 예배와 몰입의 교차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예배라는 틀 안에서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하며, 능동적으로 나의 정체성과 신앙을 실현해 나간다.
누군가는 단순한 종교 행위로 여길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실존을 조각하는 시간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 있지만 나의 선택과 태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이로써 나는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내면의 진실한 기쁨을 경험한다.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몰입하는 자만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오늘도 예배의 순간마다 던져진 조건들 속에서 나를 빚어가며 살아간다.
이 모든 깨달음과 실천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허락하신다.

이것이 나의 철학이며,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길 위에서 조금씩 진정한 나로 완성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