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실천이고 실천은 절제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by 신아르케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이 단순한 원칙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나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나와 아내는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이 시간은 단순한 동거가 아니라, 존재의 깊은 얽힘이었다. 물리적 거리보다 더 가까운, 정서와 의식의 연대이다. 창세기 2장 24절,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은 이제 내게 신학적 문장이 아닌 실존적 진리로 다가온다.


그런 긴밀함 속에서, 관계의 온도는 극과 극을 오간다. 좋은 날엔 상대의 말 한마디, 미소 하나에 기쁨이 차오르지만, 어긋난 순간엔 사소한 말투 하나로도 마음에 풍랑이 일어난다. 아내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욕망, 결핍, 감정의 파편까지도 그녀는 본다. 우리는 서로에게 피할 수 없는 존재의 거울이다.


처음엔,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희생하자, 양보하자, 봉사하자. 하지만 그 마음의 밑바닥엔 “내가 이렇게 하는 만큼, 당신도 나에게 잘해주기를”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고, 오히려 실망을 불러왔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사랑은 행위 이전에, 경계의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방향을 틀었다. 아내를 감동시키려 애쓰기보다, 그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 순간 말 한마디를 내뱉기 전에, 그 말이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생각한다.

내가 행동하기 전, 그 눈빛에 거슬림이 담기지 않을지를 살핀다.

이는 절제가 아니라 존중의 실천이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미세한 자제만으로 관계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워졌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억지로 해주려는 노력보다,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삼가는 태도가 훨씬 깊은 신뢰를 낳는다.

나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를 손에 넣었다고 느낀다.


레비나스는 "타자는 나의 윤리적 각성의 기원이다"라고 말했다.

나의 타자는 아내였다. 나는 그녀의 침묵에서 나의 윤리를 들었고,

그녀의 표정에서 내가 지녀야 할 태도를 배웠다.


삶은 우리를 던져놓는다. 완벽하지 않은 자아와, 완벽하지 않은 타자와 함께.

그러나 그 ‘던져짐’ 안에서, 우리는 관계를 통해 빚어진다.

예배자란, 신 앞에만 엎드리는 이가 아니라,

타자의 고요한 경계 앞에서도 머무를 줄 아는 자이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그 경계 앞에 선다.

나를 덜 드러내고, 조금 더 상대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 없는 예배처럼, 나의 관계를 다시 빚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