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모든 인류에게 최선의 삶을 허락하고 계신다.
이 믿음은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내가 직접 체득하게 된 실존적 진리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기쁜 일, 슬픈 일, 고통스러운 일, 예기치 못한 우연까지도—결국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한 과정임을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그것은 삶을 일정 거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질 때에야 비로소 이해되는 신비이기도 하다.
우리의 이성은 본질적으로 제한적이다.
삶의 수많은 층위와 국면을 동시에 인식하고 판단할 수는 없다.
마치 다이아몬드의 모든 면을 한눈에 볼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는 인생이라는 입체적인 진실을 단면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불행이라 여기는 어떤 사건도, 나중에는 나를 위한 가장 좋은 일로 드러날 수 있다.
관점이 바뀌면, 사건의 성격도 달라진다.
진정 성숙한 신앙은 자신의 삶을 저주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삶 자체가 신이 자신에게 허락한 최선의 길이라는 믿음 위에 살아간다.
이때 한 가지 중요한 오해를 피해야 한다.
이것은 수동적 체념이 아니다.
신이 주신 삶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되, 그 현실 속에서 더 높은 이상을 향해 능동적으로 기투(棄投)하는 삶이다.
나는 이 ‘기투’라는 단어를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에게서 빌려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존재(즉자존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실행함으로써 ‘의미 있는 존재(대자존재)’로 나아간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을 해석하고 창조하는 주체이며, 실존은 바로 그 행위 속에서 완성된다.
나는 여전히 나에게 언제나 최선의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
그분은 나의 영혼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내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분이다.
무명이어도, 세상이 주목하지 않아도, 혼자 있어도, 가난하거나 병들었어도—
내가 지금 주어진 삶을 긍정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참된 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신이 주신 이 삶은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의 현장이다.
그 안에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고, 내가 기투해야 할 영적 목적이 놓여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행위가 바로 믿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매일 새롭게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