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된 것인가, 만들어진 것인가

신앙에 대한 실용주의적 변증

by 신아르케

무신론자이면서 철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신이라는 개념, 종교라는 체계는 인간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낸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인류의 정신이 발달하는 과정 속에서, 문화적 특수성과 결합되어 형성된 결과일 뿐이라고.

나는 이 주장 앞에서 즉각적으로 반박하기보다, 잠시 멈추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특히 그들이 사용하는 한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 바로 “필요”라는 말이다.

인간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종교가 생겨났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는 주장.
나는 이 지점에서 오히려 하나의 다른 가능성을 본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인간에게 불필요한 것이었다면,
과연 그것이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거의 모든 문명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상과 관념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현실 속에서 작용하지 못하고,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
과학 역시 그러하다. 수많은 가설이 제시되지만, 실제 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반복적으로 작용하는 이론만이 살아남아 법칙으로 자리 잡는다.

이 점에서 종교 역시 하나의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종교는 단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일 뿐인가,
아니면 인간 존재의 깊은 차원과 연결된 어떤 실재에 대한 응답인가.

나는 이 둘이 반드시 대립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자의 설명이 후자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인간이 어떤 것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은,
그것이 단순한 허구라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구조 속에 그것을 요구하는 깊은 층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수학적 진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인가, 아니면 발견한 것인가.
자연 법칙은 인간의 사고가 구성한 것인가, 아니면 원래 존재하던 질서를 인식한 것인가.

중력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지만, 중력 그 자체는 인간 이전부터 존재했다.
인간은 그것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점차 인식하고 개념화했을 뿐이다.

나는 신앙에 대해서도 유사한 관점을 취해 보고자 한다.

신이라는 개념이 언어와 문화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원래부터 어떤 초월적인 실재를 향해 열려 있는 존재이며,
그 감각과 경험이 점차 개념과 언어의 형태로 정리되면서 종교라는 구조를 형성한 것은 아닐까.

원시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자연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듯,
현대의 인간이 문명과 언어 속에서 살아가며 잃어버린 어떤 감각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 느끼는 능력은 오히려 둔화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신앙을 이렇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신앙은 없는 것을 만들어 믿는 행위라기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어떤 실재에 대해 점차 눈을 뜨는 과정일 수 있다.

물론 이 주장은 과학적 방식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신앙은 과학과 다른 영역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허구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앙은 단지 머릿속의 개념으로 머무르지 않고,
삶 속에서 작용하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사랑, 용서, 절제, 겸손과 같은 가치들은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삶의 방향을 바꾸며, 존재를 깊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그리고 나는 성경을 통해 제시되는 이러한 가치들이
실제 삶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확인해 왔다.

그 과정은 단순한 신념의 유지가 아니라,
일종의 실존적 실험에 가까웠다.

만약 그것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신앙을 계속 유지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오히려 그 말씀이 삶의 깊은 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렇게 정리하게 된다.

종교가 인간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설명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종교를 허구로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나는 인간의 종교성이
어떤 실재에 대한 반응으로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일 가능성을 더 크게 본다.

결국 이 문제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남는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판단한다.
이 세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기준 위에서 살아갈 것인가.

신의 존재를 믿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며,
그 존재를 믿고 살아가기로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이 선택은 강요될 수 없고,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의미는,
어쩌면 지금 이 삶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 드러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신앙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어떤 실재를 향해 열려 있다는 한 가지 가능성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가능성 위에 서서,
오늘도 나의 삶을 해석하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