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구조 개혁을 향한 제안

평등과 능동성의 회복을 위하여

by 신아르케

기독교의 핵심 정신 중 하나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그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신념이다. 이러한 평등의 개념은 근대 헌법에 담긴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기독교 사상에서 큰 영향을 받은 선언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외적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 영성과 자유의지라는 비가시적 요소를 의미한다. 이는 칸트가 언급한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인식의 구조와도 연결된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며, 누구도 타인을 지배하거나 계급화할 수 없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신교의 '만인제사장론'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기초이다. 이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핵심 교리로 자리 잡았으며,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직접 관계 맺고 말씀을 묵상하며, 서로를 섬길 책임이 있다는 정신이다. 이 교리는 중세 로마 가톨릭이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두었던 위계적 질서를 비판하며 제시된 혁명적인 평등 선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는 이러한 평등의 정신에서 멀어져 있다. 목회자와 평신도, 교회 내 직분 간 서열화, 그리고 신학교 교육을 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신자 간의 구분이 암묵적으로 위계질서를 만들고 있으며, 이는 기독교 본래의 영적 평등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더욱이 목회자를 “목자”, 신자들을 “양”이라 부르며 우열 구조를 전제하는 표현이 여전히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구조를 교회 내 ‘역할극’이라 부른다. 성도는 무비판적으로 지도자를 따르고, 지도자는 스스로를 탁월한 영적 리더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위는 지도자의 역할이 ‘권위자가 아니라 겸손한 종’ 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라고 자처하는 행위는 교만의 발로이며, 이는 오히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신앙의 변화는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능동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교회 예배는 한 명의 목회자가 설교를 중심으로 권위를 행사하고, 성도는 가만히 앉아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구조로 고착화되어 있다. 이 구조는 인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누르고 있으며, 신자 개개인의 신앙적 책임성과 영적 성장 가능성을 저해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는 개혁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물론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전통과 관행을 바꾸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깨어 있는 신앙인들과 양심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 신의 뜻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구별하여,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다.

나아가 교회는 성도의 다양성과 자율성, 그리고 평등한 책임과 참여를 보장하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동등한 존재이며, 누구도 그 위에 군림할 수 없다. 누군가를 신격화하고, 누군가를 종속된 존재로 바라보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신의 이름을 빌린 또 하나의 우상일 뿐이다.

나는 한국교회가 ‘만인제사장’의 참된 정신을 회복하고,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고 능동적인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기독교가 이 시대에 던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강력한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