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빠지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의 경우, 체내에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줄어들며 성욕, 근육량, 골밀도, 기분, 활력 등에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30대 이후부터 매년 1%씩 감소하고, 50대가 넘어가면 남성 갱년기 증후군이라 불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발기력 저하, 피로감, 우울감 등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자존감과 정체감의 흔들림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는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할 일은 아니다.
많은 남성들이 20, 30대에 주체할 수 없는 성욕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프로이트는 "욕망이 있으나 해소할 수 없을 때 인간은 가장 고통스럽다"라고 말했다. 이 시기의 남성은 성욕과 함께 공격성, 경쟁심, 성취욕이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 삶의 경험과 지혜가 부족한 젊은 시절에는 이러한 욕망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방황하곤 한다. 성적 충동과 환상이 빈번하게 생기고, 이를 해결할 방법이 제한적일 때 고통은 커진다.
성욕은 식욕과 같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그러나 사회적 시선은 이를 수치스럽고 억제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성욕 자체보다, 성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판단이 더 큰 고통을 야기한다. 배고픔이 참기 어려운 고통이듯,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남성의 몸은 자연적으로 정자를 배출하려는 생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이를 무리하게 억제하면 신체적, 심리적 균형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사정은 긴장을 풀고 기분을 안정시키며, 수면을 돕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그것에 의존하게 되면 무기력감, 중독, 죄의식이 뒤따른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에는 대부분 심리적 불안이나 긴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정을 하곤 했다. 그것은 일종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절제 없는 쾌락은 쉽게 중독으로 이어지고, 행동의 반복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절제와 균형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원칙이다.
더욱이 성욕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해소되는 욕망이기에 복잡하다. 미혼이라면 성행위는 생명의 탄생이라는 중대한 결과를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아이를 갖는 것은 당사자 모두에게 불행이다. 또한 여성은 한 인격을 지닌 존재로, 성적 결합은 단순한 육체적 행위를 넘어 심리적, 윤리적, 신앙적 의미를 지닌다. 무분별한 성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을 죄의식과 후회 속에 빠뜨릴 뿐이다.
결혼한 후에도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배우자는 성욕을 해소해 주는 대상이 아니다. 육아와 경제활동으로 지친 아내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미혼 시절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결혼 후에도 배우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내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받아주었을 때는, 그것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성의 삶도 결코 녹록지 않다. 물론 여성의 삶 역시 그 고통과 수고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매달 반복되는 월경의 고통,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감내하는 여성들의 삶은 경외의 대상이다. 결국,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짠한 존재들이다.
40대에 접어들며, 나는 성적 충동이 줄어든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변화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얽매던 족쇄가 풀린 듯한 자유를 느낀다. 특히 신앙적인 면에서 성적 유혹과 충동을 절제하며 죄의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삶은 훨씬 평온하다. 육적인 단계에서 정신적, 영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느낌은 내가 존재적으로 성숙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니체는 성욕을 의지의 발현이라 하며, 그것이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될 수도 있고, 집착적 파괴력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지금의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원숙해진 지금의 나, 절제와 통제를 통해 성적 에너지를 바르게 사용하는 지금이 더 좋다.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알맞은 주기에 따라 진심을 담은 교감을 나누고, 남은 에너지는 영적, 창조적 활동에 쏟는다.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지 모른다. 절제 속에서 자유를, 성찰 속에서 평화를 얻는 지금, 나는 남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보다 깊이 있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