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이 감당해야 할 존재의 무게, 고통

by 신아르케

우리는 누구나 삶 속에서 감당해야 할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육체의 고통이든,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 고통이든 간에, 인간이라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어떤 무게를 짊어지고 걷는 일이다. 이 고통은 단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너무도 실감 나는 존재의 실체이기에, 내가 지금 여기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증표이기에 고통스럽다.

고통은 종종 예상치 않게 찾아온다. 예기치 못한 사건, 관계의 어긋남, 내면의 좌절과 실망, 또는 그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으로. 우리는 그 고통을 덜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때로는 영상이나 음악에 나를 던지고, 때로는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분출하며 순간을 견뎌보려 한다. 그러나 이내 깨닫게 된다. 이 모든 것은 고통을 일시적으로 유예할 수 있을지언정, 그 뿌리를 뽑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해서 생산적인 활동에 나를 몰아세우는 것도 완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독서나 글쓰기, 사유와 명상 같은 고차원의 활동도 결국은 정신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오히려 과도한 각성과 불안정한 흥분 상태로 나를 몰고 가기도 한다. 나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아무리 고귀하고 생산적인 활동일지라도, 그것이 또 다른 회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내가 발견한 진실이 있다. 고통은 피해서도, 억누르려 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고통은 오히려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마주 보아야만 한다. 조용히 나 자신과 고통을 함께 대면하는 시간. 무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고통이 나를 파고들도록 허용하는 용기. 그것이 고통을 견디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 아닐까.

나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참 잘 버텼어. 오늘도 여기까지 온 너는 충분히 잘한 거야.” 타인에게는 그렇게도 너그러우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인색한 내가, 이제는 조금씩 나에게도 연민이 아닌 자비의 시선을 보내기로 한다.

삶은 반복이다. 그리고 고통도 반복된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다. 깊은 밤 집안을 고요 속에 도는 것, 브런치에 쓸 글을 작성하는 것, 이러한 작은 행위가 사실은 나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준다. 그것이 나를 숨 쉬게 하고, 오늘을 또 살게 한다.

나는 더 이상 고통을 낯선 손님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함께 살던, 다만 이름 붙이지 못한 동반자였다. 이제는 그 이름을 불러주며, 고통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본다. 그 이야기 속에는 나의 진실이 있고, 성장의 흔적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안에는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견딘다. 이유 없는 고통이 아니라, 아직 내가 다 알지 못한 의미를 담은 고통이기에. 고통은 나의 원수이자, 동시에 나를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스승이기도 하다. 이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고통에 쫓기지 않는다. 나는 고통과 함께 걷기로 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