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것은 단지 생존을 위한 본능을 넘어선다. 왜 우리는 멈추지 않고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며, 늘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단지 살아 있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존재하고자 하는 실존적 충동을 지녔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철학, 특히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러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즉자존재’(En-soi), ‘대자존재’(Pour-soi), 그리고 ‘타인의 시선 속의 나’라는 세 차원으로 설명한다.
우선, 즉자존재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 곧 의식 없는 물질 그 자체다. 돌, 나무, 책상과 같은 대상들은 이 범주에 속하며, 인간의 육체 또한 이러한 즉자존재로서 드러난다. 우리의 키, 인종, 체형, 성별 등 물리적 속성들은 판단 이전에 '그저 있는 것'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즉자존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의식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재구성한다. 이것이 바로 대자존재, 즉 의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대자존재는 완결되지 않은 존재로서 항상 스스로를 넘어서고자 하며,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발판 삼아 더 나은 나로 ‘되어가는 과정’ 자체다.
우리는 또한 타인의 시선 속에서 존재한다. 타인은 나를 내가 아닌 방식으로, 내가 아닌 존재로 정의하려 한다. 외모, 지위, 학력, 출신 같은 외형적 정보는 종종 나의 본질을 가리는 가면이 되며, 타인의 판단 속에서 나는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된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해석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자유로운 해석과 선택의 가능성, 바로 여기에 인간 존재의 핵심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느끼는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왜 무언가를 갖고자 하며, 왜 그것이 내 것임을 증명하고자 하는가?
소유란 단지 ‘갖고 있다’는 상태를 넘어선다. 법적으로 등록되었거나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진정한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물은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의 소유욕을 끊임없이 거부한다. 그래서 인간은 사물을 단지 소유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
내가 오랜 시간 사용하고, 나의 일부처럼 닳아가는 물건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연장선상에 놓인 ‘의미 있는 사물’이 된다. 기능이 다할 때까지 나와 함께했던 사물은 나의 일부로 내재화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유다. 소유란 관계이고, 지속이고, 함께 한 시간이다.
이 개념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지만, 타자는 언제나 타자로 남는다. 육체적 접촉으로도, 감정의 교류로도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음에 좌절하지만, 바로 이 절망은 인간 실존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소유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인간다움의 본질일지 모른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흥미로운 확장을 시도한다. 우리의 육체(즉자존재)는 우리의 의식(대자존재)에게도 일종의 사물처럼 느껴진다. 의식은 끊임없이 이 즉자적 자신을 넘어서려 하며, 자신을 완성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대자존재는 스스로를 완결하지 못하며, 항상 자신을 넘어선 가능성의 존재로 남는다. 즉자와 대자의 불일치, 그 간극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 바로 그것이 인간이 느끼는 '존재의 욕구'다. 나는 지금의 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될 수 있는 나를 향해 나아가려는 충동을 멈출 수 없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신학적 세계관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며, 모든 존재는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신은 단순히 인간을 만든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신은 인간에게 강요가 아닌 자유로운 응답의 가능성을 주셨고, 인간은 그 선택을 통해 신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신은 자신의 영을 통해 인간의 육체와 하나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 관계는 인간의 자유 속에서만 가능하다. 신은 오늘도 묻고 계신다. "너는 나와 하나 되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자발적인 응답, 그것이 곧 인간 존재의 궁극적 완성이다.
존재의 욕구는 자기 자신과의 간극에서 출발한다. 나는 나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하며, 타인도, 어떤 대상도 완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 결핍의 인식은 절망이 아니라, 존재를 향한 불꽃이다. 우리는 그 갈망 속에서 나를 찾아가며, 타인과 관계 맺고, 더 큰 존재와 연결되기를 소망한다.
그 욕구는 나를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존재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