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주체, 인간인가 인공지능인가〉
인공지능 기술은 이제 우리의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창의성의 영역까지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과거에는 오직 인간만이 창조적 활동의 주체로 여겨졌고, 동물의 행위가 간혹 창의성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의 차원과는 비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금기의 선이 흔들리고 있다.
예술이라는 영역, 곧 인간의 창의성이 가장 순수하게 드러나는 분야에서조차 인공지능은 아이디어만 입력하면 80%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결과물의 미세 조정과 최종 판단에 인간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기술 발전의 속도를 고려하면 이 주도권이 언제 역전될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창작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문명사적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이 공모전 역시 단순한 시의적 행사가 아니라, 창작의 본질과 권리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탐색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쪽으로 사고한다. 마치 빛이 두 점 사이를 직선으로 이동하듯, 가장 효율적인 길을 택한다. 인공지능이 삶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상, 인류는 더 이상 과거로 회귀할 수 없다.
나 역시 그 혜택을 실감하고 있다. 복잡하고 난해했던 철학서도 이제는 AI의 도움을 받아 즐겁게 탐독할 수 있게 되었고, 고통스럽기만 했던 글쓰기 또한 창조적 유희의 시간이 되었다. 기술은 나를 해방시켰고, 동시에 다시 인간 자신을 더 깊이 응시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저작권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창작에는 반드시 ‘창조적 영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이 영감이 인간의 소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이 인류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인간의 마음에 비추는 정신의 빛이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구현하려 애쓸 뿐이다. 글자, 그림, 소리, 형상 등 우리는 그것을 다양한 표현 수단으로 번역한다.
그렇다면 창작물은 단지 개인의 소유일 수만은 없다.
물론 창작자가 자신의 기술과 시간, 감정, 고통을 들여 구현한 수고는 반드시 존중받아야 하며, 그에 상응하는 보상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그 과정의 일부를 감당하게 된다면, 이제는 인간과 AI의 기여 비율에 따른 권리 배분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기준을 성찰을 바탕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창작물의 저작권을 부여할 때, 인간과 인공지능의 기여도를 80:20으로 가늠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때 80%는 인간의 창의적 구상과 논리 전개, 고유한 표현 방식이 담당하고, 나머지 20%는 문법 교정, 어휘 추천, 문체 정제 등 완성도를 높이는 기술적 기여에 해당한다.
이 기준은 결코 객관적 수치로 환원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시대적 직관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실천 가능한 정의의 기준을 모색할 수 있다. 완전무결한 기준은 없지만, 공동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균형점은 언제나 존재한다.
사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행위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오타를 자동으로 수정하는 기능조차도 따지고 보면 창작 개입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창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우리는 정답보다 질문을 던질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을 정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창작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창작은 특권이 아닌 보편의 능력이며, 그 확장은 인류 전체의 문화적 진보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전체 기획과 구조는 물론 창의적 은유와 논리 전개를 나 스스로 구상했다. 다만 일부 문장을 정제하고, 문어체로 다듬고, 흐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다. 이 기여가 20%를 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에, 이 글은 명백한 창작 저작물이라 말할 수 있다.
이 글이 만약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새롭게 제정될 저작권법은 무엇을 기준으로 인간의 창작을 구분할 수 있을까?
창작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이다.
인공지능은 그 불꽃을 더 멀리 비추는 등불일 뿐이다.
이 불편하고도 흥미로운 논의 앞에서, 우리는 창작자의 자격을 따지기보다는 창작의 책임과 미래를 함께 감당할 지혜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