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한 그릇의 문명

대중이라는 이름의 야만성에 대하여

by 신아르케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현대 사회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현대 문명 속에 대중이라 불리는 야만인의 무리가 나타났다.”

이는 문명의 외형을 갖추었으나, 그 정신과 태도에서는 문명적 자격을 갖추지 못한 현대인의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한 표현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야만을 과거의 잔재로 간주한다. 도덕과 질서가 정립되기 이전의 상태, 본능에 따라 살아가던 시기를 떠올린다. 그러나 오르테가가 말한 야만은 시대의 후진성이 아니라, 의식의 결여를 가리킨다. 현대인은 기술적으로 진보했으나,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 성숙을 이루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자유민주주의, 과학기술, 물질적 풍요는 수많은 노력과 희생을 통해 축적된 문명의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유산을 어렵지 않게 물려받았고, 그로 인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기본값’처럼 인식되고, 그 가치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있음에도, 자신의 자유를 자율적이고 이성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판단을 미루고, 생각을 타인에게 위임한 채 대중의 흐름에 편승한다.

자기 삶에 대한 주체적 태도보다는 타율과 방관이 우세하다. 이러한 상태는 외형만 문명일 뿐, 실질적으로는 사고의 야만 상태라 볼 수 있다.


성경 창세기 25장에서 에서는 배고픔을 이유로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넘긴다.

그는 말한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는 눈앞의 필요를 위해 장자의 권리와 책임, 미래의 유산을 쉽게 포기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문명적 가치가 경시되는 태도의 상징이다.

에서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겹쳐 보인다.

역사의 고통 속에서 쌓아온 가치들이, 눈앞의 편의나 감각적 만족을 위해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이란 기술의 총합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 능력, 성찰, 절제, 그리고 책임의 결과물이다.

문명인은 주어진 자율성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기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그에 반해, 대중은 의미 없이 반복되는 습관과 유행 속에 자신을 맡긴다.

사고 없이 흘러가는 삶은 결국 문명의 외형만을 유지할 뿐, 그 본질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


의례와 절차가 문명사회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 행위에 맥락과 질서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물론 형식이 내용보다 앞설 때 그것은 공허해지기 쉽다. 그러나 모든 형식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욕망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과정을 거쳐 실현하느냐는 문명과 야만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오늘날 대중문화 속에서는 인간 관계마저 즉각적이고 소비적인 방식으로 치환되는 경향이 있다.

사랑, 우정, 성적 관계 등이 맥락과 절차 없이 단순한 쾌락이나 유행의 일부로 다루어질 때, 인간은 자신을 대상화하며 문명적 고리를 잃어버린다.

이는 충동에 대한 반성 없는 실행, 곧 야만의 작동 방식과 다르지 않다.


교육 역시 문명 유지의 핵심 요소다. 그러나 많은 경우, 교육은 자율적 판단과 사유를 키우기보다는 표준화된 반응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그 결과, 사고하지 않는 존재, 즉 주체가 아닌 수동적 대중이 양산된다.

이들은 자유를 갖고 있으나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선택할 수 있으나 선택하지 않는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그 기술을 사용할 인간의 내면은 정체되어 있다.


오르테가는 문명이 언제든 퇴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문명은 그 자체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각 개인이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재생산해야 하는 역동적 상태다.

생각을 멈추고, 책임을 회피하고, 욕망을 우선시하는 개인이 늘어날수록, 문명은 그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오르테가는 대중이 아닌 ‘귀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귀족’은 사회적 계층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됨을 스스로 훈련하는 개인을 뜻한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감정과 판단을 절제하며,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가려는 태도.

그것이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시민적 귀족’이 필요하다.

지식의 양이나 신분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과 주체적 태도로 문명에 기여하려는 사람들.

그들이 있을 때, 문명은 단순히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올바르게 전달된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기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 문명을 계승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리고 그 문명적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