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일기

동몽선습 부자유친(父子有親) 5

by 물음표

* 이 글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또는 철학 및 인문학 유명인들의 주장이나 저서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전에 얘기했듯 자식인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A+B로 탄생한 'AB'라는 존재입니다. 생물학적으로도 나라는 존재는 부모가 가진 DNA가 결합하여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立(립)'의 뜻인 ‘존재하다’는 단순히 육체적인 요소에 한해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부모가 가진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존재하다'인 거죠.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존재하다’와 연관하여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식을 단순히 'AB'로만 놓으면 안됩니다. 달라지는 것이 필요하죠.


A는 A이기에 발생하는 일을 경험하고, 이를 A스럽게 해결하며, 이러한 해결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결과물 또한 A답기에, A는 A로 불리게 되는 겁니다. B 또한 B이기에 B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테죠.


예를 들자면, 미술을 하는 사람은 세상을 볼 때 색, 형태 등을 남들보다 더 신경씁니다. 그에 따라 미술가에 어울리는 경험을 하고, 문제가 생긴다면 일반인보다 감성과 직관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할 확률이 높을 겁니다.

또한 그에 따라 맞이하게 될 결과로도 어떤 감성적인 부분이 높겠죠. 이것이 바로 미술가로서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부모님 또한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어머니는 어머니의 방식대로 일을 바라보실 것이고, 해결하여 결과물을 맞이하는 것도 각자답게 이뤄내시겠죠.


이것의 연장선으로서 자식인 AB가 맞이하게 될 결과물은 두 사람의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그들의 방식을 보고 배웠기에 단순하게 표현하면 ‘AB다운 방식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도 아니고 B도 아니기에 'AB'인 동시에 전혀 다른 'C'다운 방식의 결과물을 맞이하는 것이기도 하죠.


여기서 '스스로'를 'AB'이자 A와도 B와도 다른 'C'라고 생각하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立(립)'이 뜻하는 것 중 하나인 ‘세우다’입니다. 자신이 'C'라는 고유한 존재라고 뜻을 세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C'가 독단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혼자 만들어 낸 가치관이나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부모인 A와 B의 성공과 실패 또 그에 따른 조언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죠. 그렇기에 'C'이면서 동시에 A와 B의 자식인 'AB'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억해야지만이 앞서 얘기한 '立(립)'의 의미 중에 하나인 ‘정해지다’를 포함할 수 있게 됩니다. 부모의 성공과 실패를 보며 배우고 이를 통해 살아가며 경험함으로써, 고유한 사고가 ‘정해져서’ 그에 따라 뜻을 세우고 스스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즉, 부모인 A와 B를 부정하게 되면 그 둘의 결합물이자 그 둘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해지고 만들어진 'AB'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AB'와 ‘C'는 같은 사람이기에, 결국 'C' 또한 부정하게 되어 스스로를 부정하며 '더 이상 'C'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했던 어떠한 행동을 극단적으로 싫어해서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는 않을 거야.’라고 다짐한 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짐 자체가 부모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부모의 행동을 보고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가 정해지게 되어 나만의 가치관이 확립되어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분명 싫어했던 부모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문제는 여기서 부모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합니다.

부모가 싫다고 해서 부모의 영향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억지로 부정하면 할수록,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들을 부정하게 되고, 이것은 자기혐오와 우울감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죠.


그러니 자식이 자신의 부모를 '부모로서 대한다'는 것의 의미는 부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향을 깨닫고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들로부터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고 행했던 오류나 한계를 극복함으로서, 자신만의 길을 찾고 나아갈 길이 정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자식'으로서 '부모'와의 관계에서 '立(설 립)'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C'인 내가 존재함에 있어서 자식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부모는 내가 세운 뜻의 근거이자 반면교사로서 나의 존재를 위해선 필수라고 하지만, 자식은 내가 근거가 되는데 내게 자식은 어떤 역할을 하는걸까?'


의문이 드실 겁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부모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첫 번째로는 자식이라는 존재가, 내가 세운 가치관과 뜻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살아있는 증거라는 점에서입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기준과 의미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게 되는 행동 하나하나가 매순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죠. 물론 모든 행동이 성공하면 좋겠다만은 그러기 힘든 것이 삶이니 대부분 실패를 더 많이 맛봤을 겁니다.


예전에 썼던 글인 ‘긍정과부정’에서 얘기했듯, 실패한다는 것은 잃고 패함을 의미합니다. 지금과 달리 옛시절에는 이 실패 자체가 곧 죽음의 기로에 선 것이며 대부분 죽음을 맞이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물론 현대에는 실패가 곧 죽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방식인 'C'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러한 실패를 통해 우울증을 겪거나 자괴감에 빠져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죠.

그러니 실패란 사실상 자기 증명의 실패와 같은 의미이며, 이는 정신적인 죽음과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실패는 단지 결과가 아니라, 한 존재의 죽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자식'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자식'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내가 살아온 방식, 내가 믿었던 방향, 그 모든 것이 세상 속에서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부모로부터 그랬던 것처럼, 내가 세운 뜻을 수정 보완해서 이어갈 존재로서 '자식'이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자식'의 존재는 어찌 보면 자신이 지나온 삶의 해석이 틀리지 않았고, 그 방식이 한 생명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실패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는 것과 동일한 거죠.

그래서 자식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했던 방식이 세상에 받아들여졌다는 증표, 그리고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존재의 증명'과도 같은 겁니다.

이제 두 번째 이유를 보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지실 겁니다.


두 번째로는 'C'라는 가치관이 자식을 통해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은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여기서 '이름'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름 석 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뜻'을 뜻합니다.

폭군이나 살인자들의 이름은 '그들처럼 살지 말자'라는 뜻으로 남는 것이고, 성군이나 영웅들의 이름은 '그들의 가치관을 본받고 닮고 싶다'라는 뜻이기에 남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의 가치관은?

앞서 말한 것처럼 나를 보고 자란 자식을 통해서 아주 사소한 일부분이나마 대대손손 전해지는 겁니다. 변형되고 가공될지언정 나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여기에 더해 자식은 육체적으로 DNA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 일부분 전해지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나의 가치관을 물려받음으로써 내가 죽더라도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앞서 얘기했던 '立(립)'이 ‘전해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이유입니다. 내가 세운 가치관과 뜻이 자식에게 전해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내 존재의 증명이며, 자신의 의지가 관철되어 성공했음을 알리는 증거라는 것이죠.

즉, '나'라는 '존재의 완성'은 내 가치관이 자식에게 전해져 영원히 유지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고, 이게 바로 부모로서 자식과의 관계에서의 '立(립)'인 겁니다.


이번 문장에서 일관되게 쓰이고 있는 '부모'의 의미는 이전에 말했던 '가까이서 보호하고 양육하는 존재'를 뜻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부자유친'에서 해석했던 문장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보호하고 양육하며,

이때 '敎(교)'와 '諫(간)'을 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 뜻 등을 전하는 것이고,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敎(교)'와 '諫(간)'을 하며,

이때 부모가 전해주는 것들을 간직하고 근거로 삼아 길을 정함으로서 자신만의 생각이나 가치관, 뜻 등이 세워져 '스스로' 존재함과 동시에 '서 있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즉, '유학'에서의 '부모, 자식 관계'는 혈연을 의미하는 육체적인 측면에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관계'를 의미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친부모냐, 양부모냐, 아니냐는 상관없습니다. 정확히는 친부모도 양부모도 혈연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도 하지만, 이번 문장에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러한 위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번 문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금 제 방식대로 해석하자면 이렇습니다.



苟或 (구혹)

만약 혹시라도


父而不子其子 (부이불자기자)하며

부모이면서 그의 자식을 자식으로 대하지 않으며

(당신이 부모이면서 자신의 자식을 있는 그대로의 자식으로서 인정하지 않으며)


子而不父其父 (자이불부기부)하면

자식이면서 그의 부모를 부모로 대하지 않으면

(당신이 자식이면서 자신의 부모를 있는 그대로의 부모로서 인정하지 않으면)


其何以立於世乎 (기하이립어세호)리오

그가 무엇으로써 세상에 설 수 있겠는가?

(당신은 무엇으로써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네가 너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기 때문인데,

그들을 그들로서 대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너라는 존재의 증명은 무엇을 통해 할 수 있느냐?’


부모를 부정하면 '나'라는 존재의 '근거'가 사라지고, 자식을 부정하면 '나'라는 존재의 '미래'가 사라집니다. 그 누구도 그 대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과 동일하겠죠.


물론 이것이 부모 또는 자식에게 휘둘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립'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립'하기 위해서 대상을 거부하고, 관계를 끊으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부정하며,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결말을 맞이할 테니 말이죠.


오히려 부모도, 자식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며 인정하고 소통을 하여 관계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존재케 해주는 대상으로서 고유한 자신을 지키며, 서 있음을 유지하는 게 '자립'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아니, 사실 이미 '3대'로 이루어진 가문의 '부모, 자식 관계'에 있어 '나'라는 존재는 'A'이자 'B'이고 'AB'이자 'C'인 복합적이면서도 고유한 존재이니, 굳이 그들을 부정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당연하다는 듯 물은 게 아닐까요?


작가의 이전글유학?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