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오늘은 이전에 소개해드린 휴먼메이드, 비즈빔, 걸스돈 크라이에서 자주 등장했던 일본 스트릿 패션의 아버지이자 우라하라 스트릿의 시작점 후지와라 히로시의 프라그먼트 브랜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대부분 일본 브랜드의 론칭을 도와준 장본인이죠.
프라그먼트는 사실 단순해 보이는 번개 로고로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는데요. 별거 없어 보이는 이 로고가 추가되는 순간 오르는 가격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후지와라 히로시가 걸어온 길과 일본 그리고 세계 패션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알게 된다면 어느 정도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데요.
프라그먼트를 소개하기 전 프라그먼트의 아버지 후지와라 히로시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는 브랜드 휴먼메이드의 나바로 도모아키의 별명이자 현재까지도 디자이너 네이밍으로 사용하고 있는 니고 (2호기)의 출처이기도 하죠. 일본 스트릿 패션의 부동의 1위 후지와라 히로시의 옆에 항상 붙어있어 니고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요. 이전에 소개해드렸던 그리고 앞으로 소개해드릴 많은 일본 브랜드들은 후지와라 히로시의 직접적인 권유나 조언을 통해 론칭을 하고 자리를 잡은 브랜드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펑크 록을 좋아했던 히로시는 20살이 되자마자 펑크 록의 중심지인 런던으로 떠나게 되었는데요. 이때 런던에 초밥집에서 당시 펑크 록의 최고 스타였던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인 말콤 맥라렌을 만나게돼요.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말콤이 지루한 런던에 있지 말고 뉴욕으로 가라라는 말을 듣고 바로 뉴욕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이렇게 보면 소개하는 사람들마다 참 자기 살고 싶은데로 살고 P처럼 행동하는 거 같은데요. 이래야 성공을 하나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펑크록에 빠져 런던으로 왔던 청년은 말 한마디에 뉴욕으로 떠나 당시 록 다음으로 주류 장르로 올라서고 있던 힙합 문화를 접하게 되었죠. 당시 미국은 갱단부터 힙합까지 다양한 문화가 동서부가 분리되어 있었는데요. 미국 동부의 힙합음악에 매료되었던 히로시는 서부의 음악이 궁금해 곧장 캘리포니아로 떠나게 됩니다. 캘리포니아의 해변을 거닐다 봉고차량 한 대로 바닷가에서 자신의 사인이 프린팅 된 서핑보드와 티셔츠를 팔던 청년을 만나게 되는데요. 하필 또 이 사람이 바로 스투시의 창업자 숀 스투시였습니다. 록과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패션에도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두 사람은 패션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지게 되었죠. 히로시가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숀 스투시는 4면이 바다인 섬나라 일본에는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 히로시에게 티셔츠를 선물로 보내주며, 친분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 작은 선물이 훗날 일본과 아시아에 스투시가 특별한 위치로 정착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요. 숀 스투시의 ‘스투시가 일본에 정착한 것은 히로시 덕이다’라는 말에 히로시는 자신은 그저 DHL 택배를 받아 입고 지인에게 선물한 것이 전부라며 겸손함까지 보여주었죠.
힙합 문화에 빠져든 히로시가 가장 먼저 선택한 직업은 디자이너가 아닌 일본의 1세대 힙합 DJ였습니다. (현재도 히로시의 직업은 프로듀서, 뮤지션, 패션 디자이너로 다재다능한 인물입니다 �) 앨범을 내고 힙합 레이블을 만들며 음악계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던 히로시는 하라주쿠의 뒷골목 우라하라의 아티스트 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이때 ‘Good enough’라는 스토어를 만들게 되었죠. 이후 숀 스투시가 지어준 이름인 electric cottage라는 브랜드를 잠시 전개하며 두 개의 번개모양의 로고를 만들었고, 이후 이 브랜드를 리브랜딩 하여 만든 브랜드가 바로 지금의 프라그먼트가 되었어요.
스트릿 패션 시장에 진출한 히로시는 정말 많은 일들을 하게 되는데요. 지금의 영향력은 바로 이 시기에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휴먼메이드의 창업주인 니고와 언더커버의 타카하시 준을 모집하여 NOWHERE 스토어를 컨설팅해 운영을 맡기고, 이후 니시야마 테츠의 더블 탭스, 하루키의 바운티 헌터, 니고의 베이프, 준 타카하시의 언더커버의 탄생을 도와주었으며, 와코마리아의 음악 컬렉션 론칭과 요시다 포터에게 HARD PORTER 라인을 만들기를 제안하고, 나카무라 히로키의 비즈빔 모카신 아이디어와 론칭을 도와주었습니다. 이들은 이후 후지와 라계 디자이너로 분류되었고, 이러한 활동으로 히로시는 일본 스트릿 패션의 대부가 되는 계기가 되었죠.
패션 시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던 히로시는 2006년 리바이스의 제팬 라인인 Fenom 라인의 디렉터를 역임하고, 나이키의 하이테크 프리미엄 라인인 HTM 라인을 론칭하죠 이때부터 이미 히로시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이키에서 론칭한 HTM 라인인데요. 후지와라 히로시, 조던 라인 디자이너인 팅커 핫필드, 나이키의 CEO 마크 파커의 이름 이니셜을 하나씩 따서 론칭한 라인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스트릿 패션 업계에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히로시에게는 수많은 러브콜들이 쏟아졌는데요. 프라그먼트에 몸집도 점점 커지게 되면서 다양한 브랜드들과 협업을 하게 됩니다. 패션, 악기, 캠핑장비, 애니메이션 굿즈, 아이돌 굿즈까지 다양한 협업들이 진행되었고, 놀랍게도 하나도 빠짐없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때부터 프라그먼트의 번개 로고는 단순한 로고가 아닌 돈벼락이 말이 생겼는데요. 단순하게 협업을 같이 진행한 브랜드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으니… 구매를 한 소비자들도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리셀 가격에 생각지도 못한 돈을 벌게 되는 일들이 파다해졌죠. 어디에든 이 번개 로고가 붙기만 하면 정식 판매 가격의 3배? 5배? 는 우습게 올라서 거래가 되었어요.
가장 높은 리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상품들을 소개해하자면 바로 나이키에서 래퍼 트레비스스캇과 협업을 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조던 상품이었는데요. 여기에 프라그먼트의 번개 로고가 추가되고 히로시 특유의 컬러조합을 선보이면서 20만 원으로 출시한 신발이 100만 원을 훌쩍 넘는 리셀가를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빅백의 권지용이 론칭한 피스마이너스원 브랜드와의 협업이었는데 피스마이너스원은 나이키와의 협업을 했을 때부터 이미 시그니처 로고인 잎이 하나 떨어진 데이지꽃이 들어가면 가격이 오르는 브랜드였고, 맛있는 거에 맛있는 거처럼 비싸지는 거에 비싸지는 거 피스마이너원의 데이지와 프라그먼트에 번개가 만나는 이 협업은 30만 원대에 출시한 후드티가 수백만 원에 거래되는 기이한 현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디자이너로써 가장 큰 인정을 받은 협업은 바로 몽클레르 70주년 컬렉션으로 몽클레르 지니어스 라인에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 프로젝트는 몽클레르가 지니어스 라인을 론칭하면서 시작한 프로젝트로 패션, 음악, 예술, 건축 다양한 분야의 천재라고 표현할 만한 사람들과의 협업 컬렉션인데 70주년을 기념한 협업에서 3번째 디렉터로 후지와라 히로시와 프라그먼트가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팬디와의 협업도 이어가면서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죠.
이후 히로시는 또 한 번 충격적인 팝업을 선보이게 되는데 프라그먼트뿐만이 아닌 히로시 사단이라고 불리는 우라하라 스트릿 브랜드들의 상품들을 편의점 콘셉트의 매장 ‘Convveni’ 매장을 만들어 판매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삼각김밥 모양으로 접은 타월과 음료수 페트와 캔에 포장한 티셔츠등 다시 봐도 정말 과감한 콘셉트이고 통통 튀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런 다양한 행보를 이어가는 프라그먼트의 히로시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협업은 바로 가장 최근에 진행했던 바로 뉴진스와의 협업 굿즈였습니다. 프라그 먼트보다는 히로시의 이름을 걸고 진행한 협업이었지만 히로시도 뉴진스도 너무 좋아하는 저는 협업 소식만 듣고도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요. 어쩌다 보니 구매를 하지는 못했지만 지갑의 여유가 생기고 끼니를 거르지 않는 날이 올 때면 꼭 구매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렇게 많은 후배들을 키우고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주며, 우라하라 스트릿이라는 문화를 세계적으로 키워낸 후지와라 히로시의 프라그먼트 소개해 드렸습니다.
[요마카세] 일요일 : 일단 사볼까?
작가 : 인정
소개 : 옷 파는 일로 돈 벌어서 옷 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