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유독 걱정이 많은 우리 집 첫째, 그런 성향 때문에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일이 많다.
“이모 옆사람을 툭 쳤는데 괜찮아?”
지난번 같이 호텔에 놀러갔을 때 일이다. 호텔 방문은 왜 이렇게 다 똑같이 생겼는지, 옆집 초인종을 잘못 눌렀다고 첫째는 걱정을 크게 했다. 가끔 늦은 밤 술기운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아파트 호수를 헷갈려 남의 집 도어락을 누른 경험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숙취에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 있으면서 혹시라도 아랫집 주민한테 혼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런 내 모습까지 어쩜 이리 닮았는지.
“걱정하기보다 사과를 먼저하면 돼”
“이모 옆집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해 줘 못 만나는데?”
“그럼 편지를 쓰면 돼”
여행 가방 속에 쏙 챙겨온 포스티잇을 찾아 첫째는 빼뚤빼뚤한 한글로 편지를 적어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옆집에 놀러 온 세 자매 중 첫째에요.
노크와 초인종을 많이 눌러서 죄송해요.”
곧이어 옆집 사람은 방에서 나와 문 앞에 둔 편지를 보고 우리집 첫째에게 귀여운 미소를 지으셨다.
“방에서 모두가 깊게 자고 있어서 아무도 신경 안 썼어요. 걱정 하지마요. 쪽지가 너무 귀엽네요 ”
첫째가 진짜 편지에 적어 사과하는 모습에도 놀랬지만, 사과를 받아주는 어른의 모습이 유난히 인상깊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과하는 일이 줄어든 기분이다. 경험이 쌓이면서 나의 방식이 옳다고 믿게 되니, 쉽게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혹은 먼저 사과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이해해 주길 기대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아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그냥 스친 듯이 말했지만 행동으로 옮겨 먼저 사과하는 첫째, 그 모습을 보면서 아랫집 도어락을 잘못 누른 후 이불에서 걱정만 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동시에 사과를 받아주는 태도 또한 용기 있는 자세다. 사과를 받아주는 마음은 단순히 "괜찮아"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진심을 인정하고, 그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를 겸비한다. 저 사람이 진심일까?" 의심하기보다 일단 그 사람이 용기를 냈다는 점 자체를 인정해 주는 그 마음이 너무 소중하다.
그러니 사과하는 것도, 그리고 사과를 받아주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수사과하는 것도, 받아주는 것도 결국은 상대방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되었다. 나 역시 앞으로는 이불 속에서 혼자 걱정하는 대신, 첫째처럼 더 솔직하고 용기 있게 다가가 보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해올 때, 그것을 따뜻하게 받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요마카세] 목요일 : 어린이의 위로
작가 : 아리
소개 : 어쩌다 조카 3명과 살게 된 싱글레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