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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택주 Jan 11. 2023

마땅을 흔드는 '이토록 다정한 기술'

진로 걱정하고 창업 꿈꾸는 학생들에게 내미는 손길

“쌓여만 가는 플라스틱 쓰레기 어쩌지?”

“앞을 보지 못하는 이가 여행을 즐기도록 할 순 없을까?”

“한뎃잠 자는 이에게 찬바람이라도 막아줄 순 없을까?” 

“그새 시들었네. 아보카도 아까워서 어쩌지?”

“캄캄해서 숙제도 못 하는 아이 어쩌나?”     


마땅하다고 여기던 것에 물음을 던져 업을 새로 세운 이들이 빚은 이야기가 담긴 책을 펴냈습니다. <이토록 다정한 기술>입니다. 이 책에는 일자리 찾기보다 일거리 만든 사람들이 펼친 결이 소복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앞에 놓인 여러 길 가운데 어느 한 길을 골라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뜻 나서기 쉽지 않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다 보니 첫걸음 떼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아요. 이미 난 길을 가기도 이런데 길을 새로 내야 한다면 어떨까요? 두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앞서 길을 내며 걸었던 사람들이 겪은 얘기를 들으면 한결 마음이 놓이면서 힘이 납니다.  

    

햇빛발전소 가방을 들고 있는 아이들 / 메고 다니면서 만들어진 전기로 밤에 숙제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으려고 고행하는 부처님상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보지 못한 분들은 검색해보세요. 낯빛이 무척 어둡습니다. 미륵반가사유상은 보셨지요? 미륵반가사유상은 부처님 고행상과는 사뭇 다릅니다. 살포시 머금은 웃음이 살갑습니다. 어찌 이리 다를까요? 2,700년 전 인도에서 태어난 부처님은 처음 가는 길이기에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1,500여 년 전 고구려·신라·백제 사람들은 이미 부처님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마음이 놓였어요. 수풀에 덮여 길이 사라졌더라도 앞서서 누군가가 걸어간 길이었다면 다시 닦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넉넉할 수 있었습니다.      

책상으로 탈바꿈하는 따뜻한 종이 가방

<이토록 다정한 기술>엔 여느 사람들이 마땅하다고 여기거나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던 일에 물음을 던지며 누리 결을 바꾸려는 이들이 빚은 길들이 가지런합니다.      


“모든 물건을 사는 순간 값이 내려가는 데 돈에는 왜 거듭 이자가 붙지?”하고 묻는 이들이 내놓은 이자를 받지 않는 은행이 있고, 돈 빌린 사람 마음대로 이자를 내는 은행도 생겼습니다.      

독일지역화폐 킴카우어 / 쓰지 않고 쌓아두면 값어치가 떨어지는 돈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어쩌지?” 하는 물음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아스팔트를 깔도록 하고, 쓰레기 없는 가게를 태어나도록 했습니다.      

“그새 시들었네. 아보카도 아까워서 어쩌지?” 하는 물음이 과일과 채소에 갑옷을 입혀 오래도록 시들지 않게 했습니다.      

“오줌을 그저 흘려보내서야 할까?” 하는 물음 끝에 오줌으로 가꾸는 꽃밭을 낳고, 오줌으로 전기를 만드는 화장실도 낳았습니다.      

차로에 발을 내디디면 바닥이 환해지는 건널목

“캄캄한 데, 길을 건너가다가 차에 치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밤이면 바닥에 불이 들어와 환하게 빛나는 건널목이 태어났습니다.      

“탄소발자국을 없애고 싱싱한 채소를 먹도록 할 순 없을까?” 하는 물음이 슈퍼마켓과 피자가게에 채소밭을 통째로 들어놓도록 했습니다.      

표백제를 넣어 1/3은 지붕바깥에 2/3는 천장으로 나오게 하면 빛나는 페트병 전구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데 참고 살아야 하나?” 하는 물음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 하는 아이들한테 메고 다니면 전기가 만들어지는 햇빛발전소 가방을 선물해 밤에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높고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어 대낮에도 컴컴한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표백제가 들어간 페트병을 지붕에 달아 빛을 선물했습니다.      

브로콜리 씨앗 품은 선물포장지

“고운데 금세 버려지는 선물포장지 너무 아까워 어째?” 하는 물음은 뜯어낸 포장지를 땅에 묻고 물을 주면 고추와 토마토, 당근을 거두게 하고, 해바라기꽃이나 칸나꽃을 피우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이 밖에도 다정한 이들이 낸 새로운 결이 소복합니다. 고불고불 정감 어린 길이든 앞이 훤히 탁 트인 길이든 다 살림을 바탕에 두고 낸 길들입니다.      

이 책이 진로 걱정을 하는 청소년과 학부모, 창업하려는 젊은이 손에 들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싱그러운 생각들을 만나다 보면 제게도 덩달아 싱그러운 생각이 펼쳐질 때가 적지 않았어요. 좋은 생각은 다른 좋은 생각에 붙어 일어나거든요.      


이 책에는 아흔 개가 넘는 싱그러운 생각들로 낸 길들이 있습니다. 아울러 정성껏 빚은 QR코드가 무려 쉰여덟 개가 달려 있습니다. 이 QR코드 하나하나에 고운 길을 낸 까닭이 고스란합니다. 편집을 맡은 김영사 태호 차장 마음 결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도수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안경, 저 위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이 정보가 가지런하다

‘이토록 다정한 기술’이라고 하니까 정이 헤프다는 얘기냐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분도 있더군요. 이 소리에 함박 웃었습니다. 저는 씀씀이 그 가운데서도 마음 씀씀이가 헤픈 사람들을 몇 분 알거든요.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본보기이십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빚으며 사는 분들 또한 정이 헤픈 분들이고요. 그런데요. 알고 보니 마음은 써도 써도 줄어들거나 닳지 않더군요. 저도 어서어서 정 헤픈 사람으로 탈바꿈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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