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강연, 소통과 섭외의 비밀’ 스케치
지난 5월 24일, 전국 초·중·고등학교 작가와의 만남 최다강연자 권오준 작가가 ‘학교 강연, 소통과 섭외의 비밀’이란 특강을 했다. <강연자를 위한 강연> 출간을 기리는 강연이다. 피아니스트 이화정이 메들리곡 연주에 이은 강연 첫 뚜껑이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었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
10여 년 전 머리로 떨어진 이끼 한 움큼이 떨어졌다. ‘어, 이거 뭐지?’하고 스쳐 지나갈 수 있던 일이었으나 권오준은 달랐다.
까닭을 살리려고 두리번거리다가 밤나무에 있는 새둥지를 봤다. 가지를 밟고 올라가니 새알이 세 개가 있는 개똥지빠귀 둥지였다. 손을 넣어보니 따뜻한 알을 감싸고 있는 것이 이끼였다. 알을 품고 있던 어미가 사람이 가까이 오자 날아오를 때 이끼 한 조각이 딸려 올라갔다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권오준.
반짝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새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보고 싶다.’ 다음 날부터 날마다 열 시간이 넘도록 새 10여 종을 살피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두 철이 지나니 많은 자료가 쌓였다. 이 자료 바탕으로 출간계약을 하고 새 이야기 동화 시리즈를 펴내면서 기자에서 작가로 탈바꿈했다.
또 8년 전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서 관장과 얘기를 나누다가 빵돌이란 소릴 들을 만큼 빵을 좋아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생님 빵 굽는 동화작가라고 하면 멋지겠네요.”했다. 그 말이 확 꽂혔다. 집으로 올라오면서 제빵학원에 전화를 걸어 등록하고 바로 달려갔다. 오후 8시 40분. 원장이 늦었으니 내일모레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바로 하고 싶다고 했으나 수업이 끝나가서 반죽이 발효가 다 되어 오븐에 넣어 굽기만 하면 되어서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어서 가운을 입고 발효가 된 팬이라도 오븐에 넣어야 하겠다고 떼쓰다시피 하여 숙성된 빵반죽을 오븐에 넣고 25분 뒤 노릇노릇한 빵을 맛본다. 마침내26개 빵을 만드는 수업을 한 차례도 빠짐없이 마쳤다.
과정을 마치기가 무섭게 집에 반죽기를 들여놓은 권 작가, 작은도서관에 찾아가 빵 굽는 동화작가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응답을 듣는다. 드디어 첫 수업, 빵이 다 구워지고 교실 안에 빵 냄새가 가득한데 아이들은 빵을 만지작거릴 뿐 먹으려고 들지 않았다. “왜 먹지 않니?” “엄마한테 보여주려고요.” 제가 만들었다는 증거가 사라지니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아차!’ 싶었던 권오준. 다음부터는 아이들이 먹을 빵은 미리 집에서 구워 가지고 갔다. 이 모두 우연히 튼 싹을 물주고 다듬고 가꾸어 얻은 열매.
강연자를 위한 강연도 마찬가지였다. 6년 전 어떤 작가 신년하례회 때 잠깐 강연 이야기를 하게 됐다. 학교 강연 얘기를 하는데 반응이 뜨거워 5분만 하고 말려던 얘기를 26분이나 이어갔다. 이때 ‘이야! 강연자들에게 들려줄 강연’을 하면 좋겠다고 다듬어 <강연자를 위한 강연>이 태어났다.
권 작가는 ‘우연을 가장한 운명’을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얘기했다. 우연, 만나서 그렇게 스칠 수도 있을 일을 필연, 반드시 그런 일로 만들어낸 권오준 작가.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을 때 바로 나서서 빠져들어 꾸준히 이어가야 운명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랬을까? 맞닥뜨린 기회를 스쳐 보내서는 안 된다며 작은 보기를 하나하나 낱낱이 들어가며 정성스럽게 얘기했다.
재미와 메시지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 수는 얼마나 될까? 2022년 기준으로 6,163개로 학생은 266만 4,278명이다. 강연 시장으로 보면 어마어마하다.
학교에서 강연자로 좋아하는 작가는? 재미있게 강연하는 작가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작가를 부르는 학교도 있다. 아이들은 어떤 작가를 좋아할까? 말할 것도 없이 재미있게 하는 작가다. 강연 3대 요소는 ①재미, ②재미, ③재미다. 재미있으려면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강연자와 애들 사이에 있는 유리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얼마나 빨리 유리 벽을 없애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가장 좋은 길을 거듭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강연장에 자리에 앉는 아이에게 이것저것을 물으면서 벽을 허물어간다. 재미를 찾는다고 해서 레크레이션처럼 받아들이며 곤란하다. 재미 안에 메시지가 빠져선 안 된다. 그래도 작가와의 만남은 수업 시간이 아니다. 책을 읽고 작가를 만나 잔치 자리다. 잔치는 신바람이 나야 한다. 신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강연자 몫이다. 끊임없이 흔들고 끊임없이 재미있게 해야 하는 까닭이다.
말 걸기와 듣기
강연은 아이들이 가진 걸 다 끌어내는 것이고 그러려면 거듭 물어야 한다. 답을 하는 모든 아이에게 저학년생에게는 동그라미 고학년생에게는 포인트를 준다. 때로는 재미를 주려고 마이너스 포인트를 주기도 한다.
강연장에서 가장 먼저 찾는 건 내향성 아이, 소심한 아이, 장애를 가진 아이다. 이런 아이는 강연자를 보지 않는다. 무선마이크를 들고 강연장을 누비며 단답형 물음을 주고받으며 아이들을 파악한다.
손을 들었으나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를 살려야 한다. 한 10초쯤 기다린다. 더듬더듬 말을 하는 아이가 있으나 어떤 아이는 끝내 말을 하지 못한다. 마이크를 가져다 댔을 때 “음…”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할 얘기가 있는데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때 “잠깐 얘들아, 얘가 내게 귓속말 찬스를 걸었어.” 귀를 아이 입 가까이 가져다 대고 고개를 끄떡끄떡하면서 “얘들아! 이 아이가 놀라운 얘기를 했어. 나는 이런 얘기를 처음 들었어. 대단하다. 넌 어찌 이런 생각을 다 했니?” 하면서 이 아이가 했을 법한 말을 떠올리고는 입에 올려 얘기하며 “그치?”하고 그 아이에게 확인을 받는다. 아이들에게 손뼉을 치라고 하고 “동그라미 20개!”
흐뭇해하던 아이는 나중에 다른 물음에 손을 들고 답을 한다. 때로는 그 자리에서 바로 선물을 주기도 한다. 이 아이가 선물까지 받으면 평소 공부 잘하고 말도 잘하는 아이들 기분이 어떨까? 씁쓸할 테다. ‘수업 시간에 칭찬 한 번 듣지 못하던 아이가 말도 안 돼.’ 하면서 만회하려고 맹렬히 손을 든다.
체험활동을 하라
강연할 때마다 체험활동에 15분~20분을 쓴다. 만들기나 그림그리기. 아이들에게 좋다고 여기는 것을 뽑도록, 한 아이에게 스티커를 다섯 장씩 나눠주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한 장씩 붙이라고 한다. 교사들도 똑같이 붙이도록 한다. 민주주의를 알려주려는 뜻이다. 스티커를 가장 많이 받은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데 스티커를 많이 받은 것은 엉뚱한 상상을 했을 뿐 1등을 한 것은 아니라고 거듭 밝힌다. 뽑히지 않은 아이들이 상처를 덜 받게 하려는 뜻이다. 이 시간에 틈을 내어 아이들이 내미는 소지품에 사인해준다. 가장 놀라운 소지품을 들이민 아이한테 선물을 주기도 한다.
시작하기→20→50→70→100
강연을 한 번 한 작가는 한 해에 300번 강연할 수 있다. 한 번이 스무 번이 되고 스무 번이 쉰 번이 되고 일흔 번이 되며 백 번이 된다. 세 해 전에 만난 작가 한 사람이 “강연을 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했다. “맨땅에 헤딩해서라도 하나만 물어오세요.” 며칠 뒤 전화가 왔다. 공공도서관에 불쑥 찾아가서 강연 일정을 하나 잡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소개해 준 강연 하나. 처음 두 개로 시작한 강연 150회를 훌쩍 넘겼다. 그러나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200회는 하지 못한다고 한다. 힘껏 두드리면 반드시 열린다는 말씀이다.
앞날을 준비하라!
강연 말미 소프라노 손정윤이 ‘얼마나 뜨거워야’에 이어 앙코르곡으로 ‘넬라 판타지아’를 불러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미리 받은 물음에 답을 하는 시간.
권오준 작가 바쁜 가운데에서 피아노를 배운다. 연습할 틈을 따로 낼 수 없어 차에 키보드를 싣고 다니면서 짬짬이 연습한다. 10년 동안 꾸준히 하겠다는 각오. 10년을 내다본 공부다.
아울러 틈틈이 희귀 북마크도 모아 전시회를 일곱 차례나 하고 북마크 강연도 곁들였다. 네 해째 전설이 된 그림책 작가 모리스 샌닥 희귀자료도 모으고 있다. 앞으로 모리스 샌닥 희귀자료 전시회로 열릴 것이다. 모두 앞날을 겨냥한 발걸음이다.
강연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연을 잘하려면 말하기에 자신감이 붙어야 하고, 그러려면 <강연자를 위한 강연> 엘리베이터 말 걸기에 나와 있듯이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자꾸 물으면 주목받는다. 주목받으면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려면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림책·동화·청소년소설로 작품 폭을 넓혀라. 폭이 넓을수록 강연 섭외가 들어올 확률이 높아진다. 아울러 강연할 수 있는 터전인 작가와의 만남 풀에 들어가려고 애써야 한다.
섭외가 들어오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고라도 강연을 해서 그 모습을 찍어 SNS에 올려라. 반드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