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동경하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왕조현이다. 초등학교 때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천년유혹>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고, 왕조현의 큰 눈과 매혹적인 얼굴을 본 순간 좋아하게 됐다. 왕조현이 나오는 중국 영화를 다 볼 정도다.
@5천 원과 맞바꾼 동생
중학생 시절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청소하다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왕조현이 신작 영화 개봉 홍보하러 천호동 한일시네마에 무대 인사를 왔다.
그 소식을 들은 나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면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바로 극장으로 가려는 순간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고민 끝에 짠순이인 초등학교 5학년 동생을 꼬시기로 했다. 내 동생은 세뱃돈과 친척 어른들에게 받는 용돈을 안 쓰고 지갑에 모을 정도로 짠순이다.
집에 간 나는 동생에게 왕조현을 볼 기회라는 이유를 들어 설득 끝에 같이 버스를 타고 극장으로 갔다. 문제는 동생이 5천 원밖에 안 가지고 왔다. 당시 극장 티켓값은 5천 원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언니가 먼저 들어가서 사인받고 나올 게, 다음에 네가 들어가 받으면 돼, 매표소에서 기다려”라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말을 믿은 순진했던 동생이 그립다.
극장에 들어간 지 10분 만에 왕조현이 무대에 나왔고, 관객들과 악수했다. 왕조현은 큰 키만큼 손이 너무 컸고, 눈은 왕방울만 했다. 동경하던 왕조현과 악수를 하고, 손에서 나는 그녀의 향기를 맡으며 신나 있었다. 동생과 약속을 잊은 채 영화를 봤다.
순간 내 등을 무섭게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니 엄마와 동생이 같이 있었다. 동생은 얼굴이 빨개졌고, 엄마는 “영화 끝나고 집에서 보자”라는 말과 함께 무섭게 영화를 봤다. 불안한 마음에 영화는 집중도 안 되고 재미가 없었다.
결국, 집에서 엄마에게 혼났고, 종아리 5대를 맞았다.
동생은 40세가 되었음에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며, 당시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날 줄 모른다. 철없는 나의 행동에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릴 때 가능했기에 가끔 생각나면 즐거운 추억이다.
@떡볶이와 하얀 바지
나는 딸 부잣집 둘째다. 사람들은 둘째가 위, 아래에서 많이 치였을 거라 말하나 나는 절대 아니었다. 난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웠고, 사고 싶은 옷이 있다면, 할머니, 엄마, 이모까지 대동해서 살 정도다. 그만큼 욕심이 많았다.
욕심보다 더 큰 건 떡볶이다. 우리 세 자매는 떡볶이를 좋아했다. 내가 살던 둔촌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성내동 작은 시장 떡볶이는 한 접시에 300원에서 500원이면 실컷 먹었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봄날 우리 세 자매는 떡볶이 먹으러 시장에 갔다. 언니가 1천 원으로 떡볶이를 사줘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런데
대형사고가 벌어졌다.
동생이 내가 아끼던 하얀 바지에 국물을 흘렸다. 나는 화가 나서 동생에게 화를 내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별일은 아니지만, 그때는 세상 끝날 것 같았다.
어릴 적 나는 한번 화가 나면 쉽게 안 푸는 성격이라 그날 밤 동생과 자다가 동생의 이불을 다 빼앗았다. 비몽사몽 정신이 없던 동생은 자기 이불 안 뺏기려고 내 이불을 당기다가 그만 내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나는 너무 분해서 새벽 1시에 불을 켜고 다시 소리를 지르며 동생 따귀를 때렸다. 동생도 자다가 황당했는지, 내 따귀를 때리며 받아쳤다. 나와 동생은 5분 정도 서로 때리고 소리 지르다 잠에서 깬 부모님께서 보셨다. 이 상황이 너무 황당했던 두 분은 나와 동생에게 그날 밤 자지 말고 손 들고 서 있으라 했다. 나는 그 당시는 억울함을 느낀 것 같아 울기만 했고, 다음날 개구리 공주가 되었다.
한 살 차이인 동생은 어릴 때는 진짜 천사였다. 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 되자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키가 커진 동생은 말까지 버릇없어질 정도로 나를 만만하게 보는 듯했다. 동생과 매일매일 싸웠던 시절은 밉고 싫어서 많이 원망하고 울었다. 동생만 없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 같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들어가서도 많이 부딪히고 싸웠다. 내가 아끼는 옷을 동생이 매번 안 입겠다고 하고는 매번 입고 다녀 너무 화나게 했다. 동생하고 싸우는 게 지쳐 결혼하고 싶었다.
결혼하면 안 싸울 줄 알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친정엄마에게 서로 아이를 부탁하기 위해 더 부딪혔다. 카톡으로 ‘너 죽어라 “라는 모진 말까지 했다. 6개월 동안 메시지와 수신차단하며 서로 연락을 안 했다. 왜 동생에게 유독 예민할 걸까?
내가 동생이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말과 상처를 준 걸까?
아니다. 나도 동생이 나를 매번 만만하게 대해서 상처받았다.
왕조현 때문에 동생을 혼자 둔 이후도 계속 싸웠다.
어릴 때 많이 싸우고 원망했으나 지금은 친구보다 연락 자주 하고, 걱정도 많이 되는 것 같다. 지금은 가끔 동생이 집에 놀러 와 내 옷 중에 입고 싶어 하는 옷이 있으면 준다. 나이가 들면서 많이 너그러워진 것 같다. 가끔 힘들거나 우울한 일이 생길 때 어릴 적 언니, 동생과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많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