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

사랑 성장기

85개 리스트로 찾은 남자친구.

하지만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그 리스트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사귄 지 일주일

한밤중의 선물

사귄 지 일주일 만에 그는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어느 날 밤 11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잠깐만 집 앞으로 나와볼 수 있어?"

무슨 일인가 싶어 급하게 나가보니

그는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서 있었다.

"가족들과 나눠 먹어. 내가 직접 만들었어."

투명한 용기 안에는 정성스럽게 담긴

바나나 푸딩과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들어 있었다.

그러고는 정말 그냥 갔다.

푸딩.jpg 본가 형광등 아래에서 찍은 초코 바나나 푸딩

집에 들어와 가족들에게 건네면서

나는 쑥스러워서 거짓말을 했다.

"친구가 줬어."

가족들은 엄청 맛있게 먹었다.

나도 한 입 떠먹는 순간 놀랐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하지만 진실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보수적인 우리 집에서 일주일 사귄 남자친구 얘기를

꺼내기엔 아직 이른 것 같았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일주일 사귄 남자친구가 가족을 생각해서

직접 디저트를 만들어왔다니.'

85개 리스트 어디에도 이런 항목은 없었다.


셰프 남자친구의 일상

그 뒤로도 신기한 일들이 계속됐다.

자기가 먹어보고 맛있는 게 있으면 나 주려고 사 오고

퇴근하면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본 뒤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의 원룸에 처음 갔을 때 깜짝 놀랐다.

모던 심플한 인테리어에 블랙과

포인트 레드 컬러로 구성된 공간

분위기 있는 여러 개의 조명. 내 집보다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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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만든 파스타와 스테이크, 연어덮밥

"앉아있어, 금방 할게."

셰프인 그는 내가 파스타 먹고 싶다 하면 파스타를

스테이크 먹고 싶다 하면 스테이크를

일본식 퓨전요리가 당긴다 하면 그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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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꼬노미야끼, 닭날개 튀김과 맥주. 크림리조또와 닭다리 구이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온 뒤, 저녁을 차려줬다.

다 먹고 나면 설거지는 무조건 본인이 하고

나는 침대에 누워 쉬라고 했다.

내가 괜찮다고 일어서려 하면

갑자기 얼굴을 굳히며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 말고 앉아서 쉬어. 화낸다."

KakaoTalk_20251022_113835283.jpg 얼큰한 쌀국수와 야끼교자

그러면서 날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TV나 유튜브를 틀어줬다.

평소엔 부드러운 사람이었지만

내가 쉬는 것에 관해서만큼은 단호했다.

그 고집마저 사랑스러웠다.


같은 꿈, 같은 방향

어느 날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꿈은 100억 부자야. 사업 성공해서 꼭 이루고 싶어."

진지하게 말하는 그를 보고 놀랐다.

왜냐하면 나도 남이 들으면 황당할

100억 부자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래. 재테크로 100억 벌 거야."

"진짜? 우리 합치면 200억이네. 든든하다."

우리는 웃었지만, 서로의 눈빛은 진지했다.


남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에이, 현실적으로 되겠니" 하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달랐다.

나처럼 꿈을 크게 가져도 되고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라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나랑 비슷한 사람이구나.'


85개 리스트에 적었던

"가치관, 신념이 나와 일치한다"는 조건이

처음으로 진짜 의미로 다가왔다.


독감이 알려준 것

진짜는 아플 때 찾아왔다.

어느 날 아침, 어지럽고 아픈 상태로 무작정 전화를 했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그는 바로 달려와 날 병원에 데리고 갔다.


A형 독감 진단을 받고 수액 치료를 시작했다.

1시간 넘게 걸린다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미안했다.


"차에서 기다려도 돼. 오래 걸려."

"괜찮아. 여기 있을게."

그는 묵묵히 옆에 앉아 기다려줬다.


그 순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도 남자친구와 병원에 갔다가

대기 시간이 1시간 걸렸는데

남자친구가 차에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화를 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달랐다.

불평 한마디 없이 옆에 있어줬고

수액 치료 중인 나를 위해

약국에서 약도 미리 타다 주고

근처 죽집에서 죽까지 사뒀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고

내가 힘들 때 자기 일처럼 뛰어다녔다.


결심의 순간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85개 리스트는 최소한의 기준이었을 뿐

진짜 사랑은 그 기준을

훨씬 넘어선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조건표에는 없었지만 그가 보여준 것들: 한밤중의 바나나 푸딩, 퇴근 후 차려주는 저녁, 나와 똑같은 100억의 꿈, 병원에서 1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주는 마음.


6개월 후, 나는 그와 결혼을 결심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사랑은 조건표가 아니라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아플 때 옆에 있어주는 사람

내 꿈을 비웃지 않는 사람,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네 번의 망한 소개팅과 세 번의 아픈 연애가

만들어준 85개 리스트. 그 리스트는 나쁜 사람을

걸러내는 데 충분했지만,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까지는 가르쳐주지 못했다.


결국 진짜 인연은 체크박스 밖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결심하는 것과

실제로 결혼 준비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둘씩 우리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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