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후 내가 한 일

by 깜미쌤

“엄마! 계엄령 내렸대!”

내 귀를 의심했다.

뉴스를 틀어보니 사실이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계엄소식에

국회 앞에서 달려간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이 보였다.

유혈사태가 일어날까 봐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계엄군이 국회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시민들이 있었다.


계엄군을 막아서는 시민들도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경찰, 계엄군도 얼마나 무서웠을까……

‘시민, 경찰, 군인들

부디 흥분하지 마시기를.

제발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 군대에 있는 애가

누가 있지?‘

문득 조카들이 떠올랐다.

다행히 군대에 있는 녀석은 없었다.

지인 아들이 군에 있는 게 생각났다.

큰 딸아이 친구 형은

원래 내일이 전역이라고 한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국회 앞으로 가고 싶었지만

대구에서 서울은 너무 멀다.


담을 넘은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속속들이 도착하고

계엄해제를 요구할 수 있는

150명을 넘어 190명이

모였다고 한다.

희망이 보였다.


시민들과 대치하던

계엄군이 한 발 물러섰다.

시민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도하는 마음도 잠시.

벽으로 이동한 계엄군이 창을 깨고

국회 본청으로 진입했다.


벌떡 일어났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현실인지 영화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바리케이트를 치며

계엄군을 막아내고 있었다.


108배를 시작했다.

무력한 나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자라게 해 주세요.

제발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자라게 해 주세요. “


불안에 떨었던 밤이 지나갔다.


예정대로 강의하러 갈 수 있었다.

목도리와 롱패딩을 따로 챙겼다.

일정 마치고 가야 할 곳이 있었다.


나를, 내 가족을

우리 조카 같은

경찰과 군인들을

우리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다.

“엉가이 하고 고마 내려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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