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 계약직 신세

by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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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 이어집니다.




‘아무리 외국계라도 그럴 수가 있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와중에, 머릿속에 그런 생각만 맴돌았다.


K 형은 작년에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회사를 나갔다.


“우리 팀에 임피 들어간 김 부장님 있잖아?

(임피 – 임금 피크제 / 보통 55세가 되면 연봉이 10%씩 깎인다. 58세부터 시작하는 곳도 있고, 경력이 중요한 곳에선 없기도 하다.)


그 분 애들도 많고 어려서 그 분 대신 나갈 수 있냐고 면담했더니,

그냥 둘 다 나가라고 하더라. ㅎㅎㅎ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더니 회사에 문제 있고 위기 오면 해결하고 극복하겠다고 밤새고 열심히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네.

새로 온 아무것도 모르는, 위에서 꽂힌 경영진이 계속 삽질할 거고, 더 나이 차면 이직 기회조차 없을 테니 지금 옮겨야겠다. 다행히 회사도 오래 다니고 퇴직금에, 위로금도 준다고 하니 도전해 봐야지.”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형은 얼마 안가 한 외국계 회사에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연봉도 높은 편이고, 해외 사업하면서 MNC에서 일해보고 싶었거든.

(MNC – Multi National Company : 다국적 기업)


그만두고 조금 쉬었다가 시작하고 싶었는데, 그만두고 얼마 안 있어서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이 왔어. 계약직이라는 게 조금 걸리긴 했는데, 뭐 내가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냐. 요즘 경기 안 좋아서 대기업 정규직 취직하기 더 힘들어졌잖아. 일단 한번 잘 해보려고.”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에 표정도 안 좋고 눈도 약간 흐리멍텅 해져있었는데,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형의 얼굴엔 활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랬던 형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궁금했다.


“밖은 전쟁이라더니 살벌하더라고.

지금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있는 것 감사해하고, 버틸 수 있으면 최대한 버텨라.

콕 찝어서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잘 붙어 있는 게 좋을 거야. 비 맞은 낙엽 마냥.”


그렇게 운을 뗀 형의 말은 내가 생각하는 외국계 회사 생활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도 국내 기업들보다 왠지 더 합리적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역시 현실은 직접 겪어 보아야 하나 보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역시 찍어 먹어봐야 확실히 아는 건가. 인생 빡세다.


“계약직이라고 해도, 우리 회사 계약직 분들 보면서 계약 기간 만료 후에 연장하지 않는 정도만 생각했었지.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이야.


나도 신중하게 선택한다고, 그래도 미국계 쪽보단 유럽계 쪽이 조금 더 안정적이고 괜찮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


거기다 우리나라 기업에는 상징적으로 두는 수습기간을, 외국계에선 몇 달 정도를 probation period 라고 부르고 계약서에 집어 넣는데, 맘에 안 들면 그냥 내보내더라고.


몇 달 육아휴직한다는 계약직 여직원에게 그냥 앞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는 걸 보고 눈치 챘어야 했는데, 설마 했다.”


‘하긴, 말이 좋아 외국 자본 유치와 고용 확대지, 외국 녀석들이 무슨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이익 극대화에만 꽂혀 있고 돈 벌어서 잘 exit 하는 것만 생각하지 무슨 좋은 일자리 이런 것에 큰 관심 있겠어. 그냥 하는 소리였겠지.’


개인사업자를 내서 6개월 단기 계약을 해서, 고용 의무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퇴직금도 주지 않으려는 꼼수를 들으니 그런 생각이 더했다.


물론, 친구 중에 좋은 외국계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오래 잘 일하는 사례들도 있지만, 우리나라 정부 보조금까지 받으며 미래 산업을 한다며 사회를 위한다고 광고하는 회사들이 이렇게 인력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사람이 미래’ 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던 모 대기업이 구조조정할 때는 신입사원까지 대상으로 했던 기억이 났다. 광고는 그냥 광고일 뿐인가. 브랜드 광고라며 이미지 광고하며 방송사, 신문사들 챙겨주며 관리한다는 말이 허투루 들르지 않는 대목이다.


‘그런 건 불법파견 아닌가.

나이 많으신 어르신 분들 아파트 경비원 일 시키면서 3개월씩 계약하고 한다는 걸 들으면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남의 일이 아니었구나.’


대기업보다 조금 더 월급을 주는 건, 계약직이라는 risk에 대한 대가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고용 risk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원을 적게 뽑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옥이 있기는커녕, 사옥 임대 수준이 아니라, We Work과 같은 공유 office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여차하면 바로 털고 나가야 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체계는 잘 잡혀있지 않고,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들을 해나가야 하니 일이 몰리고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본국의 경우와 달리 지사나 현지 법인 형태로 운영되니 속된 말로 더 개판이라는 이야기.


‘우리나라 기업들도 과거 그랬지만 52시간이 정착되면서 PC Lock 까지 도입되고 있는데, 선진 자본과 기술력 그리고 앞선 노사 문화를 갖고 있다는 외국계 기업이 그 모양이라니.’


국내 기업들의 사정이 좋지 않아 채용 기회가 줄어들어 외국계 기업으로의 취업이 다른 대안이라고들 하는데 형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일이 몰리고 on boarding도 끝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입사 때 이야기했던 일보다 두 배를 넘어서 세 배 가까이 되어가니 감당이 안 되더라구. 그 와중에 들어온 지 몇 달, 1-2년 된 사람들이 여러 명 그만두는 걸 보면서 의문이 들었는데, 그땐 원래 이 industry에선 이렇다고 하는데 그냥 개소리로 들렸어.


퇴근하고 나서도 컴퓨터를 집에 가져와서 일하고, 주말에도 하루는 일을 했는데도 일이 감당이 안 되길래, 추가로 주어지는 일은 일단 이 일들을 정리하고 하면 안 되겠냐고 말했더니, 자기 말 안 듣는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나중엔 그냥 나가라고 하더라고.


한 달 치 받고 당장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되고, 아님 한 달 유급 휴가 줄 테니 나오지 말고 일자리 찾으라고 하는데 정나미가 확 떨어지더라. 사람들이 여긴 의리, 챙겨주고 그런 건 없으니 더 좋은 기회 있으면 미련 없이 떠나라는 말을 할 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에게 무슨 저런 말을 하나 싶었는데, 사실이었어.


그래서, 어차피 아니다 싶으면 빨리 그만두고 다른 길 찾는 게 맞겠다 싶어서 바로 그만뒀어. 사는 게 참 쉽지가 않다.”


이혼과 함께 삶에 있어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가 실직이라고 했고,

오죽하면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까지 있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십 몇 년을 안정적으로 다니다,

짧은 기간 동안 두 번이나 일자리를 잃게 되니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어차피 마음 추스르고 잡은 다음에 다시 취직해야지.

결국 그 정도의 말 밖에는 해주지 못해서 그냥 같이 술잔만 부딪혀 줬다.


“근데 다행인 게 뭔 줄 아냐?”


이미 취한 형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


“나 퇴직금하고 퇴직 위로금 받은 것 있잖아.

그거 받고 한 달 내에만 전액 찾으면서 세금 다 내던가 (약 10%) 아님 퇴직연금에 넣어 두었다가 55세 이후에 순차적으로 찾으며 절세하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마침 아는 부동산 중개사 분이 싸게 나온 좋은 물건 있다고 소개해줘서 다 찾아서 그걸 사서 임대료를 받고 있거든.


(참고로, 퇴사 후 종합소득세 신고를 할 경우 연말정산을 별도로 할 필요가 없고, 퇴직금은 분리 과세 대상이라고 한다.)


그거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냐.


그리고 다행인지 계약직이라고 나올 때 사유가 해당된다고 최대 8개월인가 실업 급여 받을 수 있을 수 있다고 하니 살았지 뭐.


거기다 내가 바쁘고 힘들다 보니 돈을 안 써서, 한 달에 30만 원도 안 쓰기도 하고,

그러면서 돈은 딴짓 안 하고 예적금부터 시작해서 잘 모아두고, 지금은 대출도 없어서 천만다행이야.


만약에 내가 좀 번다고 버는 만큼 비싼 식당 자주 가고, 옷 사입고 해외 여행 때마다 다녀서 소비 습관 안 좋고, 모아놓은 돈은 없으면서 빚까지 있었으면 정말 큰 일이었지. 집 줄이고 팔고 난리 났을 거다 아마.”


‘그럼, 외벌이에, 수입은 적고, 고정 지출 포함해서 씀씀이는 이미 크고,

모아 놓은 돈은 거의 없으면서 흔한 주택담보대출부터 신용대출이나 마통(마이너스 통장), 전세대출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아찔했다.


‘그래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카드론이니 불법 사채에 손을 대고, 험한 일을 당하는 거구나. 파산과 개인 회생까지. 지금 이게 맞나? 누구는 재산이 3조고 10조라는데, 어떤 사람들은 겨울에 가스도 비싸서 못 켜고, 아예 집도 없고 절도 없이 길바닥에 나 앉게 되는 세상이라니.’


내가 내겠다는 걸 한사코 말리며,


“그래도 형 대접 받으려면 밥은 내가 사야지.”


그렇게 나와서,


“너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2차는 가지 말고 다음에 안 바쁠 때 또 보자.”



하며 떠나는 형의 뒷모습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날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사람들 표정은 왜 그렇게 어두워 보였던지.


한강을 건너며 보이는 풍경은 꽤나 평화로워 보였지만,

대한민국의 절반이 모여서 지지고 볶고 있는 데다, 수많은 외국인들까지 가세해 있는 이 땅은 정말 살기 좋은 행복한 곳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과연 노동부는 노동자를 위한 곳일까?

노동자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외국계 기업들이 벌이는 불법 파견과 계약직 등 꼼수의 시정을 잘 할 수 있을까? 솔직히 관심이나 있을까? 공무원들은 철밥통에 자기 밥줄 끊길리는 없으니 불안정한 비정규직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리가 없지.


직접 경험이 중요하고 간접 경험은 한계가 있으니깐. ㅎㅎ 아닌가? 간접 경험도 귀찮게 뭘 그런 걸 하느냐며 안할까?


아, 내일 출근하기 싫은데,

K 형에겐 출근하고 싶은 그런 날일까.


그냥 돈 많아서 돈 걱정 없이 살고, 일하고 싶을 때만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삶이 진정 최고일까. 쉽지 않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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