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J야 잘 지내지?

by 이상


K 형이었다.


“그냥 그럭 저럭 지내요. 다들 힘들잖아요 요즘.”


“그렇지.”


“형은 잘 지내요?”


“아니, 나도 별로야.

저녁에 뭐 하니?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 할까? 오랜만에?


룸살롱은 가지 말자.

사진도 찍지 말고 ㅎ”


실없긴.


‘형님, 우리가 대단한 분들처럼 누가 부탁하면 권력 휘둘러서 봐주고 챙겨주고 할 사람도 아니고.

직장 다니면서 월급 받아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인간들이 무슨 그런 데를 갑니까.

잘못하면 누구 말대로 실정법 위반에도 걸린답니다.


그런 데 한번 잘못 앉으면 몇 백만 원 나온다던데, 잘못 먹으면 월급 그냥 날아가는 거구요.

요즘 소주고, 식당 밥값이고 다 올라서 삼겹에 소주 마시기도 부담스러워서 저녁엔 퇴근하면 바로 집에 와서 집밥 먹고 발 닦고 잡니다.

점심 때 후배들 밥 사주기도 부담스러워요.


예전엔 식당에서 각자 계산한다면 불편해하던 식당 사장님들이,

이제는 알아서 각자 계산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으시는 것 보면 모릅니까.

세상 살기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어요.’


순간 이런 말들이 속사포처럼 쏟아 나올 뻔 했는데,

침울한 목소리에, 쥐어 짜는 듯한 농담인 것 같아 그냥 저녁에 보자고 하고 말았다.


전에 L 그룹 팀장이 스트레스에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장소를 어쩔 수 없이 자주 지나다니는 나이기에, 요즘은 주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면 챙기는 편이다.


요즘은 일부 업종만 잘 나가고 있고 경제성장률 같은 지표도 나쁘고,

취준생들이 취업을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도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의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다.


직장 회식도 코로나 이후로 많이 줄어든 데다, 회사 사정도 여의치 않으니 더 줄었다.

개인들도 불안함 때문에 지갑을 닫으니 내수 침체가 이뤄지고, 주변에선 식당이나 까페 등 소상공인들의 상가 폐업을 중심지와 주거지를 가리지 않고 많이 볼 수 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사건 사고도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스트레스 증가와 생계 위협 그리고 극단적인 양극화와 다양한 갈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걸 조정해줘야 하는 정치가 해먹고 치고 받으며 상대가 맘에 안 든다고 헬기까지 띄우니 나라가 산으로 가고, 나같은 소시민들부터 힘들어질 수 밖에.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 우리나라 인삿말의 대세가 된 것이 일제시대라고 한다. 징용 등으로 끌려가고 수탈 당하는 불안한 시대를 살면서 ‘안녕’을 묻는 것이 안부 인사가 되었는데, 요즘도 그 정도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별 일 없지?’를 많이 묻는 시절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이러니 정신과에 예약을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시대에, 나부터 챙겨야 하는데,

어쩌겠나. 같이 사는 세상. 좋아하는 사람들 힘들 때 같이 챙겨줘야지.


아프리카 오지 같은 데에 있을 때도 내가 아프면 동료가 날 병원에 데려다 주었고,

그 동료가 아프면 이번엔 내가 데려다 주며 버텼던 기억이 난다.

복귀해선 한 번씩 보며 부랄 친구만큼 절친이 되었다.




K 형은 같은 회사 선배였다.


인상도 좋고 후배들을 잘 챙겼다. 일도 열심히 하고 또 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모든 걸 다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미인이 박명하고, (일찍 죽는 이유가 있겠지.)

능력이 뛰어난 자에게는 세상이 더 시련을 주며, 대기만성형이 많다는 말이 다 그런 뜻인 것 같다.


후배에겐 잘하는데 이 형은 상사들에겐 영 젬병이었다.


하루는 형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이 많은 팀장님이 오셨다.


“안녕하세요?”


“그래, 잘 지내지?”


“예예”


능력은 그저 그런데, 법카 쓰는 건 무진장 좋아해서 법카 대마왕이라고 불리는 팀장님이셨다.


“저 팀장 능력도 없는데 아부로 겨우겨우 팀장 되었잖아.

왜 악착같이 팀장 되려고 했는지 알아?

승진? 연봉? 다 좋지.

근데, 법카 좀 더 편하게 쓰려고 그랬다는 게 정설이야. ㅎㅎㅎ

어찌나 법카 쓰는 걸 좋아하는지 예산 남아 있는 팀이나 임원에게 얼마나 붙고,

비용 좀 쓰게 해달라고 난리인지.

팀장 되고 나선 팀원들에게 아예 작정하고 선언했다잖아.

팀비는 법카로 자기가 쓸 테니까 알아두라고.

회식은 상위 임원 비용으로 할 때만 한다고 말이지.

다들 기겁했잖아. ㅎㅎ”


그래서 그런지 그 팀장을 우연히 만난 K 형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호불호가 강해서 얼굴에 다 드러나는 인간형.

인사를 하면서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담당 임원이 엘베를 타려고 나오셨다.


“어이고, 전무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박 팀장님, 살만해?”


“예예, 전무님 덕분에 잘 살아 있습니다. 충성!

근데…

저 전무님이 싫습니다.”


“어? 머라고?”


그 전무님보다 옆에 있던 우리가 더 당황했다.


‘어후, 저 아부덩어리 개저씨가 갑자기 왜 저러지?’


“아니, 볼 때마다 피부고 얼굴이고 계속 좋아지셔서, 저보다 훨씬 동안으로 보이시니 제가 화가 안 나게 생겼습니까요. 헤헤헤”


“허이구, 사람 참.

이따 점심 약속 있나?

없으면 같이 식사나 하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넙죽.

전무님, 저기 A 일식 정식 좋아하시지요?

제가 예약하고 먼저 가서 딱 자리 잡고 있겠습니다!”


“그래, 이따 보자고 허허허”


역사책을 보며 환관이나 간신이라는 표현을 보며, 어땠을까 했는데,

굳이 영화나 사극 드라마를 볼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더한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난 그래도 이런 걸,

‘충성심, Loyalty’ 라고 포장하는 건가 하고,

웃어 넘겼지만,


K 형은 유독 이런 것을 못 참아 했다.


“어후, 술도 안 마셨는데 오바이트 쏠릴 뻔 했네.

저러고 살고 싶나.”


‘아이고, 형도 좀 저렇게 해야 팀장도 되고, 임원도 되던가,

아님 최소 long run 하는 것 아니요?

정년까지 버틴 영감님들 보시오.

자기보다 10살 넘게 어린 젊은 팀장들 앞에 넙죽넙죽 고개 숙이며,

열심히 하겠다고 달려드는데, 형님은 그래서 되겠소.’


라고 말해주려다 말았다.


명절에 임원들한테 선물도 좀 돌리라는 윗사람들 조언에도,

그렇게 회사 생활할 바에야 때려치우겠다고 응수하는 형을 보며,

어차피 듣지도 않을 것이고,

되려 나에게도 볼멘소리를 할 것 같아 그만했다.


하긴, 사람이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야지.

안 하던 짓 하면 제 명에 못 살 테니까.




“치이익”


불판에 삼겹살 올릴 때 울려 퍼지는 소리는 식욕을 돋운다.


이래서 음식 소리 ASMR과 먹방이 인기 있나.

100만 구독자 유튜버니, 100만 조회수니 이 자극적인 소리와,

노릇노릇 구워진 자태에,

맛깔스럽게 먹으면, 보는 나도 먹고 싶어지는 게 인간 심리지.

그래서, 협찬에 광고까지 붙고 ㅎㅎㅎ


빈 속에 한 잔 말아 돌린 시원한 소맥은 하루의 체증을 쑥 내려 앉혀준다.


“캬아, 좋다.

사는 거 뭐 있노.”


이렇게 술과 고기라는 건강에 가장 주의해야 할 음식을 먹으며,

광고를 한 편 찍고,

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 회사 짤렸다.”


“네?”


(길어졌네요. 내일 남은 글들 정리 후 올리겠습니다.

좋은 오후 되세요~)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107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느 식당에서 떠 올린 옛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