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기업은 망하는가

by 이상


그렇게 대단한 학교 나오고 똑똑한 사람들 많으며 취업 경쟁률을 보면 살인적인데 말이다. 최고의 인재들을 골라 뽑는데, 왜 그렇게 적자를 보고 망하며 사람들을 내보낼까? 업황이 좋지 않아서? 시장 환경이 변해서?


여러 요인들이 있을 것인데, 회사 생활을 하며 봤던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래서 결국 그것이 회사에 큰 손실로 이어졌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려 한다.


대학생 땐 대기업 이름만 들어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초봉 5000 만원!

우와, 내 통장엔 5만 원, 잘해야 50만 원 있는데 초봉이 5000만 원이라니!!


거기다, 매출은 5조, 50조에, 영업이익, 단기순이익 같은 숫자를 보면 몇천억 혹은 조 단위로 돈을 번다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면접 보러 갔을 때 도심 중심에 떡하니 우뚝 솟아 있는 사옥을 보면, 절로 위축된다.

아자 아자! 쫄아서 할 말 못 하고 떨어지지 말고, 준비된 말 포함해서 할 말 속시원하게 잘 하자!

자신감 있게, 다만, 싸가지 없게 과하게 나가진 말고!

그러면서 한편으론 사원증을 찍고 통과 게이트를 통해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대기업 명함 들고 다니고 저 사람들처럼 멋지게 사회 생활해 봐야지 하는 기대감에 부푼다.


운 좋게 면접관을 잘 만나서 맘에 들어서 경쟁자들을 제치고 입사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생각이 든다.


‘어, 이게 맞나?’


으리으리한 건물은 사실 임대인 경우가 많다.

말은 자산을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운용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글쎄.

어떤 기업들이 실제 회사의 업보다 부동산으로 돈을 더 많이 벌고 자산이 늘어나는 걸 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더욱이, 임대한 건물에서 나가고 원상 복구하며 이사 비용에, 새로 setting 한다고 적게는 몇십억, 많게는 100억 단위로 쓰는 걸 보면,


‘이 짓을 왜 하는 거지?’

짬밥이 안 될 때는 내 짐 싸고, 팀, 본부 공용 짐 싸고, 임원 방 짐까지 싸면서 정작 할 업무를 못한다.

이사 다음날 출근해서,

(보통 주말 지나서 월요일인 경우가 많다. 내 경우 월요일 아침엔 아사리판인 경우가 많고 짐을 분실하는 경우가 많아, 이사가 완료되는 시점에 맞춰 일요일 오후 정도에 미리 가서 내 짐들을 찾아둔다. 이사 많이 한 직장인의 꿀팁. 함정은 주말에 쉬는 시간 뺏긴다는 것.)


짐 찾고 setting 하면서 더 의구심은 짙어진다. 더욱이, 그 이사를 잦은 조직개편이네, 임대 기간 완료네, 계열사에서 시행하거나 지은 건물이 분양이 안 되어서 그 건물로 들어가야 하네 하며 돌아다니다 보면 이게 뭔 짓인가 싶다.


전세, 월세 살이하며 집주인 보증금 올려달라는 등쌀에 밀려 2년마다 짐 싸고 풀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내 집, 내 건물에 푹 좀 안정되게 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정작 회사가 내 것이 아니고, 조직개편이니 회사 이사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하며 묵묵히 박스 테이프를 붙인다.


멋지게 보였던 단정한 정장 수트나 business casual에 사원증도,

상사를 잘못 만나서 특히, 월요일 아침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거나,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지치는데 사람은 뽑아주지 않고 계속 치어서 살다 보면 어느 날 깨닫는다.


‘아, 이 사원증이 개목걸이구나.

외부 사람 못 들어오게 이 게이트가 있는 것이기도 한데, 동시에 내가 출근 제때 하는지, 업무 시간에 나다니고 딴짓 하러 다니는지 다 check 되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 System에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왔다 갔다 한 시간들이 모두 시간 분 단위로 모두 찍혀 있다. 평소엔 별 말 없어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의 무기가 된다.


어떤 곳은 1분만 늦어도 바로 alert가 날아오고, 사유서를 쓰고 부서장 결재를 받아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늦을 것 같으면 차라리 오전 반차, 아님 반반차를 쓰라는 촌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괜히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아닌가? 출퇴근과 근태는 기본인가? ㅎㅎㅎ


이번 글에선 인건비 깎고 연봉 낮추는 것이 사실상 제 1 목표인 인사팀, HR이 왜 방만한 조직 체계를 만들고 옥상옥을 만드는지에 대해 몇 줄 적어보려 한다.

큰 기업일수록 관료화된다고 하는데, 결재라인에 보면 길게 늘어서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안자 – 과장 – 파트장 – 팀장 – 실장 – 본부장 – 부문장 – COO – CEO

거기에 결재자 외에 합의자도 별도 추가다.


물론,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큰 돈이 걸려 있으면 이렇게 해서 점검에, 점검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단순히 불안해서, 밑에서 최대한 걸러오길 바라고 윗사람들이 최대한 결재하기 편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이렇게 되면 결재하는 사람도 불안하니, 와서 설명하라고 한다.


이렇게 딸려 올라간다.

1차 기안자 -> 과장

2차 기안자, 과장 -> 파트장

3차 기안자, 과장, 파트장 -> 팀장

그 다음, 상무보대우, 상무보,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까지…


기안자는 도대체 보고를 몇 번을 해야 할까?

그 과정에서 보고 자료 수정을 하고 결재를 다시 올리다,

결국 처음 만들었던 자료로 돌아가는 경험. 해 본 사람 있을 것이다.


분명 의사결정 과정을 축소하고 layer를 줄여서 효율적으로 일하라고 하는데,

불필요한 중간 관리자는 줄여서 인건비를 아끼라고 하는데,

현실은 왜 이럴까?


첫 번째는 회사가 공룡이 되며 절차를 많이 만들고 공유 목적인 경우가 많다.


“김상무, 그 건 mail 봤어? 그 건 어떻게 생각해?”

월요일 아침 tea time 때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사장님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이며, “예, 그건 좀 더 파악해 보겠습니다.”

하며 회피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헤어질 때 뒷맛이 씁쓸하다. 왠지 뒤에서,

‘으이그, 저걸 상무라고. 사장인 나도 알고 있는데 자기 담당인데 저런 것도 파악 못하고 있나. 쯧’

이런 말이 날아오는 듯 하다.

그래서, 퇴근하고도 주말에도 휴대폰에 깔아 놓은 outlook 등 e-mail과 결재 system을 끊지 못한다.


여러 사람이 보고 걸러지면 좋은데 사실은 의사결정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인생은 Timing 이라고 하는데, Business는 진짜 timing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제때에 딱 맞춰 내놓아야 미친 듯이 주문이 밀려 들고, 생산계획과 준비 그리고 투자까지 딱딱 맞아 들어야 그걸 모두 매출과 수익으로 연결시키는데,

그런 회사 많나?

잘 모르겠다.


더욱이, 부서 간 이기주의 Silo도 (굴뚝 – 담 쌓고 정보 공유하지 않는 행태) 문제지만,

더 문제는 낙하산으로 꽂힌 인사가 있어서 아무것도 모를 때 더 심해진다.

그룹에서 내려왔네, 어디서 좌천되어서 여기로 왔네, 누구 사돈의 팔촌이네, 갖가지 사연은 많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봤다.


그 회사에서, 최소한 그 업계나 관련 업계에서 밑바닥부터 올라온 사람은 그나마 이해가 빠르고 의사결정이 바로 바로 되어서 결재나 일이 적시에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고, 더욱이 이해시켜줘야 한다.

진이 빠진다. 이런 식으로 몇 단계를 끌려 다니다 보면 회의감이 오기까지 한다.

마치 대학 때 공부 못하는 학생 과외하며 답답했지만, 집에서 받는 용돈으론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이걸 했던 기억이 난다. 남에게 설명하는 것이 적성에 안 맞고, 말 안 듣는 학생을 만나면 몇 배로 골치 아프다.


글을 쓰다 보니 기억이 나는데, 이런 상황에서 업무를 잘 모르는 상사가 위로랍시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러면서 내용도 다져지고 니 편을 만드는 거야.”

그 당시엔 그러려니 했는데 지나고 보면 굳이 내 편을 만들어야 하나, 아무리 인간 사회는 결국 무리 짓게 된다고 하지만 그게 맞나 싶기도 하다. 내용이 맞고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는 게 중요하지.


회식 후 여직원과 심야에 같이 택시 타지 말라고 까지 하는 회사는,

그런 일이 불상사로 이어졌던 일이 많았던 회사다.

학벌 조장하지 말고 파벌 조성하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강조하는 회사도,

당연 학벌, 파벌이 조성되어 때 되면 같은 학교끼리, 같은 파벌끼리 저녁에 한잔씩 하고 주말에 골프 치며 단합을 다지는 일이 많은 회사다.


거기다 윗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면 끝이다.

‘그래도 저 인간 열심히 하고 내 말 잘 듣는데 자리 하나 만들어줘야 하는데.’

‘아 다 챙기고 그러느니 한 놈만 패고 싶다.’


당연히 드는 유혹일 수 있지만, 이러면서 불필요한 자리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위에서 말한 다수의 결재 과정과 의사결정 지연이 일어난다.


사장은 COO를 두려고 하고,

부문장은 본부장을 두려 하고, 본부장은 실장을 두려하고,

실장은 팀장을, 팀장은 파트장을 두려 한다.

물론, 한 팀원이 100명이 넘고, 하는 일이 너무 많고 중요하면 파트장을 두고 관리해도 된다.

그런데, 한 실에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있으며 그 중 반이 실장, 팀장, 파트장 이러고 있으면 되겠나.


실제 노 젓는 사람은 적고 올라타서 이래라 저래라 말만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지는 상황이다.


하는 일에 비해, 비대한 조직,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과 지연, 이상한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업을 모르는 상태에서 말도 안 되는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


제대로 설계된 전결규정과 전문가들인 담당, 팀장, 실장 3단계, 많아야 사장 보고 및 결정으로 단순하고 간결한 의사결정과정을 기본으로 하고, 필요시에만 업무 협조팀의 합의를 받고 일을 해나가는 조직과 어디가 잘 될지는 자명할 거라 본다.



2월의 첫날!

설 명절이 있어 여유로운 한 달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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