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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May 30. 2024

개저씨 되지 않을 결심


이 단어를 몰랐습니다.


개꿀이라느니 개빡침이라느니 강아지를 앞에 넣고 강조하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어감도 좋지 않고, 표준말은 아닌 것 같은데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개좋아라는 표현도 긍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너무 좋아 이런 표현이 더 좋습니다. 더 짧은 표현이 좋다면, 그나마 넘 좋아 정도까지는 받아주고 쓸 의향이 있습니다 ㅎ


그러고 보면 옛날 욕설에도 개XX 등이 있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우리 부모가 개 라는거냐 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걸 많이 보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강아지를 많이 키우다 보니 강아지를 많이 보고 친숙해져서 이런 말까지 나오나 보다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과거나 현재나 별로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아 글이든 일상 언어에서든 잘 쓰지 않습니다.


크게 관심 없었는데 뉴스에 계속 나와서 시끄러웠던 민희진 님과 방시혁 님의 갈등을 보며, 이것도 역시 돈과 관계의 문제인가. 정도로 생각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사람의 살아온 길을 비롯 사실관계 등이 모두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입장 차나 뉴스와 남의 말 정도는 참고로 듣지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민희진 님의 기자회견이 하나의 중요 milestone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SNL 등에서 따라 하는 것까지 봅니다.


그 중에 맞다이 라는 격한 말까지 나오다, 이 문제의 개저씨 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처음 듣는 단어인데도 맥락을 들어보니 대충 어떤 말이고,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알 수 있었지요. 그건 아마도 오랜 직장 생활과 사회 생활에서 제가 이미 많이 경험한 캐릭터여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남이니 김치녀니 젠더 갈등 자체나 이것을 정치에서 이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아저씨 중에도 개저씨가 있고, 아줌마 중에도 나쁜 사람이 있지만, 개저씨 말이 나왔으니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다만, 전제로 할 것은 그런 나쁜 사람은 소수라고 생각하는데요. 전 개인적으로 그 소수의 나쁜 사람들 때문에 다수의 좋은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일부의 과욕이나 무례 등이 많은 부조리와 갈등의 시발점이라고 보고 있구요. 그런 소수의 문제를 지적하고 일단 제가 남성이니 개저씨가 되지 않을 결심을 해볼까 해서 적어 봅니다.


부정적인 면들을 구체적으로 쓸 것이니 비위가 약하시거나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듣고 싶으신 분들은 다음을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나마 조금 재밌게 쓰려고 노력은 했으니 감안해서 봐주세요.


긍정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세상엔 명암이 있으니 저 같은 작가는 양면을 모두 다룰 수 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났음을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퇴근 길 지하철.


오늘도 사람들의 쓰나미다.

나도 그 중 하나인 게 슬픈 현실.


이건 줄을 선다는 개념이 아니고, 같은 시간 대에 사람들이 쏟아져서 들어오고 떠밀려 간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지방은 소멸이라는데 서울 경기 수도권은 인구가 줄어들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안 그래도 좁은 땅의 일부 지역에 인구의 반이 모여 살다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건 만원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느낀다. 정치하시는 분들은 국민 세금으로 기사 딸린 차 타고 다니시니 체감이 낮나 보다 정도 생각하고 있다.


최근엔 유명한 산업도시 울산마저 젊은 층 인구 유출이 심해서 문제라고 한다. 자동차, 중공업 등 대규모 공장들이 많아 1인당 평균 소득이 전국 1위를 기록한 적도 있는 도시까지 지방 소멸의 대열에 끼고 있다니 참 문제다.


그런데도 서울을 더 큰 도시로 만들자면서 청년과 저소득층을 원룸, 고시원에 밀어 넣고 있다. 원룸 전세가가 1억을 넘기도 하고, 조금 더 넓다고 2억을 넘는 곳도 있으니 이건 뭐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더욱이, 그 돈을 주고 들어갔는데 방이 좋지도 않고 지저분하고 문제 있는 경우가 많으니 쩝.


그런 전세마저 너무 비싸서 대출을 받고 거기서 또 사기가 발생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참. 세금 받아서 월급 받고 대우 받는 똑똑하고 잘난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민생이라고 하는데 현실은 이렇게 지옥철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인 상태로 지하철 콩나물 숲 속 한줄기가 되어 서 있으니 숨이 턱턱 막힌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안 하면 거지되니까 참고 해야 하는 걸까.

그런 거지. 거지 같다. 그만하자.


그 와중에 내리고 환승하는 시간을 조금이나 아껴 보겠다고 사람들을 뚫고 이동하는 아저씨가 무리해서 가려한다. 그때 내 옆에 서 있는 아가씨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 속 꽃미남 아이돌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현실을 벗어나 있던 아가씨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18 개저씨


아, 저럴 때 쓰는 말이구나.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현실에서 직접 겪으니 바로 이해가 되네. 인생은 실전이야.


그렇게 서서 모르는 사람들과 몸을 부딪히며 원치 않는 운동을 하는지 잘 흘리지 않는 땀까지 흘리고 있는데, 내 앞의 좌석에 앉아 계신 분이 기적적으로 이번 역에서 내리려고 일어나셨다.


앗싸 개꿀

(아차. 이런 말 쓰지 말아야 하는데. 배우면 자꾸 써먹고 싶다. 일단 쓰면 찰떡이라 입에 밴다.)


옆에 서서 같이 기분 상했던 이어폰 아가씨가 왠지 날 원망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IC 원래 내 자리인데.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속마음이 흐흐

설마 날 보고 개저씨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아이고 모르겠다. 사람 많고 힘들고 이럴 땐 무조건 앉아 가야쥐~


옛말에,

새옹지마라 했던가.


행복은 진정 찰나인가.


호사다마까지 꺼내는 건 오버인가.


의자에 앉아서 내 표정이 일그러진 데는 채 1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영화에서 부유층 아저씨가 이런 대사를 친다.

지하철 싫다고. 냄새난다고.


예민하긴.

돈 있어서 차 있고 기사까지 있으니 지하철 탈 일 없어서 그럴 순 있겠지만. 난 어차피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면서 기후동행카드인지 뭔지로 조금이라도 교통비 아껴보려는 직장인이니 그런 코는 사치쥐. 아침에 붐빌 때 화장실에 가 보라규. 난 이미 그런 곳에서 십수 년을 버틴 몸이랍니다.


이랬던 내가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앉을 자리의 옆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지까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바쁘고 신경 쓸 것 많은 세상에. 그래 누가 옆에 앉든 무슨 상관인가. 나만 편하게 가면 다행이지.


신경 써야 했다.

이래서 어른들이 바로 앞만 보고 가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미리 준비하라고 했었나. 역시 어른들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더니 헐헐


옆에 앉으신 분은 그야말로 빌런 종합선물세트였다.


감지 않은 게 분명해 보이는 꼬질꼬질한, 벗겨진 머리

머리를 감지 않았을 것이니 샤워도 당연히 안 했을 것 같은 냄새

언제 빨았을지 모르겠는 더러운 옷


거기다 대낮부터 한잔 걸치셨는지 술 냄새

이건 그냥 옷에다 소주를 갖다 부어야 이런 냄새가 날 것 같은데

하는 정도였다.


트림까지 꺼억 하시니 홍어 냄새까지.

우웩 쏠리는 줄 알았다.


개인적으로 홍어 삼합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땐 잘 못 먹었는데 사회 생활하면서 나이 먹다 보니 톡 쏘는 맛과 함께 달짝지근한 막걸리와 먹으면 별미다.

그런데도 그 냄새가 날아오니 왜 이 음식을 싫어하는 애들이 화장실 냄새가 난다고 기겁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담배 냄새.

하루 한 갑을 피우지 않곤 결코 잠을 잘 수 없을 것이 분명할 것 같은 사람의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데 어머니들이 폐암에 걸리시는 걸 보고 주요 원인이 가스레인지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것도 주요 원인이긴 한데 내가 보기엔 간접흡연이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가족이 담배를 피우면 직빵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길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담배 냄새가 날아온다. 도심 금연 구역을 지정해 놓아도 버젓이 걸으며 담배 피우는 인간들이 있으니. 오죽하면 인구 소멸을 막기 위해 고생하고 계신 임산부 분들이 길빵 (길에서 걸으면서 담배 피우는 인간들) 하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그렇게 힘들다고 하지 않나. 본인이 기호로 피우고 병 걸리든 말든 자신의 선택이니 뭐라 할 수 없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더 확실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하긴, 예전엔 버스 정류장 뿐만 아니라 버스 안에서, 그리고 사무실, 심지어 호텔 내부 복도에서도 담배를 피웠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폐병 안 걸리는 게 이상할 정도다. 후진국에 출장을 가보면 아직도 그런 나라들이 있다. 남들 건강도 좀 신경 써 줍시다. 쫌!


이 정도의 생각을 하고, 일어나야 할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까지 했는데 내 인내력의 한계는 딱 두 정거장이었다.


이 개저씨의 온갖 잡내를 맡으며 참고 편하게 앉아 갈 것이냐, 냄새를 피하고 서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불편하게 갈 것이냐.


인생은 가끔 이토록 참혹한 선택지 내에서 선택을 강요 받는다.


다행히 사람들이 조금 내려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빈자리가 된 곳은 옆에 서 있던 이어폰 아가씨 차지였다.


매의 눈으로 이번엔 무조건 자신이 앉겠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던 그녀는 내가 앉아마자 엉덩이부터 들이밀기 신공을 펼쳤다.


오래 못 갈걸.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찌그러진 양은 냄비.

두껍게 바른 화장 철갑마저 그녀의 주름을 가리지 못할 정도였다. 오늘 집에 가면 엄마나 친구에게 할 말 많겠다. 그 전에 먼저 카톡 불 나겠군. 극혐 이러면서 ㅎㅎㅎ


너도 빈 자리만 보았지, 장차 이웃이 될 사람까진 미리 안 봤구나. 이래서 층간소음 없는 이웃을 만나는 게 인생의 복이라고 하지 않더냐. 우르르쾅쾅 리모델링 공사 뺨치지? ㅋ


이래서 일어났던 거냐?


웅, 내가 내리려고 일어난 줄 알았구나?

다른 사람의 판단과 행동을 너무 자기 기준에서 넘겨 짚어선 안된다네, 젊은 친구 ㅎㅎ


처음 본 사이의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끼어서 서 있는 피곤이 냄새를 이겨낸 듯 했다.


그러고 보면 이 냄새 쩌는 개저씨의 옆자리엔 이어폰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 더 있었지. 우리에겐 오른 팔과 왼 팔이 있지 않은가.


마스크를 쓴, 통통하신 아주머니셨다.

아 인생의 험난한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는지 이 정도는 참을만하지.

하는 표정이셨다. 저런 걸 득도 라고 해야 하나.

히지만, 아주머니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곤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해탈의 경지엔 이르지 못하셨군요.

하지만 그 정도도 대단하시긴 한 겁니다.

저 같은 필부는 거의 앉아마자 스프링 튕기 듯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아직 인생 공부가 모자란 듯 하옵니다.


닥치고 조용히 가자. 나도 사실 힘들다.

아주머니의 표정에도 그런 스침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사무실에도 이런 개저씨가 있다.


50 넘은 노총각이신데 술, 담배까진 같고,

옷은 그래도 회사 출근한다고 빨아 입고는 오는데 뭔가 쾌쾌한 냄새가 난다.


여기까지 받고 이제부터 더블, 아니 그 이상으로 간다.


몸이 안 좋으면 술 담배를 하지 말 것이지, 아침부터 기침, 재채기, 가래 3종 세트다. 아 코 풀고, 풀 코가 없으면 파고 하튼 여기도 오피스 빌런 종합선물세트다. 얹어서 사무실에서 손톱 깎기는 기본이다. 발톱은 안 깎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 이 미친 긍정 맨.


하지만, 살려고 애써 긍정 맨이 되려는 나에게 이 아저씨는 꼭 다가와서 말을 건다. 술이 덜 깬 벌건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분명히 피곤해서 양치를 하지 않고 자고 늦게 일어나서 일단 튀어 나온 것이 분명한 입냄새를 풍긴다. 입냄새가 심한 후배에게는 양치 좀 하고 얘기하자고 다이렉트로 퍼붓지만, 이 인간은 선배라 사람 말하는데 대놓고 코를 막을 순 없고 미치겠다.


“아, 소개팅 해야 하는데 40대만 들어오네.

애도 못 낳을 건데 나이 든 여자만 들어오냐.“


이미 빡치신 분들 계실 겁니다.


지는 나이가 몇인데 눈만 높아 가지고. 하자 덩어리에 그러니 그 나이까지 장가를 못 갔지. 나이 많은 놈이 지 나이는 생각 못하고 어린 여자만 밝히고 등등등


저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나이 들어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번식욕구와 그와 연결된 아이 낳기에 더 유리하다는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그 성향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마는.

자신을 객관화하고 상대방 입장도 생각해 주셔야지요.


현실성 있게 갑시다.

이렇게 말하니,


나이 많은 여자는 이것 저것 다 해봐서 뭘 잘해줘도 별 반응이 없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잘 나갈 때 생각하고 바라는 건 많다. 자기 나이 든 건 생각 못하고.


이런 천인공노할 말을 지껄입니다.


어린 여자는 예쁘고 조금만 잘해줘도 호응도 좋고 더 고마워할 줄 안다며 덧붙이면서 말이죠 헐헐헐


현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 제가 백날 정신 차리세요 해봐야 안 들을 것이 100 % 아니 200 % 확실하기 때문에 (개저씨 종특 - 종족특성 - 남의 말 안 듣기 시전)


술집에서 50대 아저씨가 30대 아가씨들에게 헌팅 들이댔을 때 30대 아가씨들이 질겁하는 속마음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보내줬지요. 술 사준다며 같이 놀자고 들이대는데 여성 분들이 얘기 중이라며 당연한 퇴짜를 날리는 내용이었지요. 극혐하면서.


난 달라


다르지.

영상에 나온 아저씨들보다 더 나이 많고 스타일 구리고 키 작고 못 생겼지.


대놓고 팩폭 날리면 싸우자는 것 밖에 안 되어서 에둘러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가씨들이 술 하고 밥 사준다고 아저씨 하고 놀아주지 않아요. 그 정도 돈은 다들 있어요. 잘 생긴 자기 또래랑 놀고 싶지. 누가 배 나온 아저씨하고 놀고 싶겠어요. 상식적으로 생각 좀 합시다. 제발 쫌!


전혀 수긍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지나가고 보면 끝난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직접 본인이 겪어 보면 말이 안 된다는 걸 실감할 것이니까요.


가끔 원빈이 찍었던 ‘아저씨’라는 영화가 원망스럽습니다. 이 영화가 아저씨들의 근자감을 키운 것은

아니었을지. 마치 이소룡 영화를 보면서 자신도 이소룡이 된 것처럼 쌍절곤 돌리는 쌩쇼 하다가 혼자 다치는 것처럼 말이지요. 원빈같은 아저씨는 저엉말 드뭅니다.


사고는 이 아저씨를 포함한 더 나이 많은 분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터졌습니다. 날이 좋으니까 밖에서 맥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다들 가자고 하더군요. 갔지요. 그날따라 어린 축의 여성분들이 많았습니다.


500 원샷을 때리더니

크아아 좋다

하면서 급발진할 기세가 엿보였지요.


거기다 대고 다른 아저씨가 기름을 부었습니다.


야, 잘생긴 니가 가서 저 친구들한테 같이 한잔 하자고 해봐라


헐 20-30 대에도 이런 짓을 거의 안 했는데 나이 먹고 이게 무슨 망발입니까. 심심하고 외로우면 한잔 더 마시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얼른 주무실 것이지, 웬 민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런 제 말을 들을 리가 없지요.


평상시 사무실에선 쥐 죽은 듯이 있으면서 꾸벅꾸벅 졸기나 하는 분들이,

저녁에 잘 먹고 한잔 마시자 한 떨기 폭주 기관차가 되어 버린 겁니다.


기세 좋게 가더니 결국 까이고 돌아옵니다.

당연한 결과였는데 아쉬워하는 꼴이 참 안타깝습니다. 유튜브가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지요.


그리고 애먼 알바생에게 화를 냅니다.


맥주 시킨 지가 언젠데 이제 가져와

내 말 무시해!


헐헐헐 제발 좀!

이날 이후로 이 개저씨 분이 끼는 술자리는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임에 누가 오는지 물어보는 이유지요.


이렇게 장어 먹고 발정 난 개저씨들이 술 마시고 사고 치고, 회식 때 노래방 가서 여직원들에게 이상한 짓을 하기도 합니다.


젊은 직원들끼리 자기들끼리는 술 마시고 가끔 노래방 가는 걸 즐기던 여성 직원 친구들이, 아저씨들과 회식할 땐 노래방이라는 말만 나와도 화들짝 놀라며 거부 반응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개 끌려가듯 가게 되어도 방 안에 있지 않고 최대한 나와 있고 안되면 화장실로 피신해 있기도 하지요.


억지 부르스로 대변되는 불편한 장면인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많이 사라졌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도 그런 일이 발생해서 징계를 받고 집으로 가는 일까지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역사는 반복되나요.

나쁜 역사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쩝




여기까지 소위 말하는 build up이 잘 되었나요?


이제 조금 길어졌으니, 느슨해진 이 글을 조여주고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개저씨의 정점은 무례하고 더러운 행동을 제멋대로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지위 등을 이용해서 갑질 내지는 비슷한 짓을 했을 때지요.


이분들의 특징은 자기가 힘이 있다고 느끼면 자꾸 사람들을 모으려고 합니다. 즉, 모아놓고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이지요. 교장 선생님 일장훈식 비슷한 것입니다. 뙤약볕 아래 줄 맞춰 선 학생들 중에는, 힘은 없어서 말은 많아진 교장 선생님 훈화에 픽픽 쓰러집니다. 사무실에서도 보면 10분이면 끝날 말을 수십 명을 모아놓고 한 시간 동안 주저리 주저리 떠들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이 이렇게 힘든 겁니다. 싫은 걸 해야 하고 참아야 하며 심지어 잘 듣는 척하고 때로 웃기까지 해야 하니까요.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거기까지 가야 하는데 저에게는 쉽지 않은 경지입니다. 어쩌면 타고난 재능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다 갑자기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봅니다. 사실 답은 이미 정해 놓은 걸 당해봐서 뻔히 아는데 말이지요.


다들 뭐 먹을 거야? 먹고 싶은 거 편하게 골라서 먹어. 난 짜장 보통.


여기서 전 잡채밥이요.

하고 치고 나가야 하는데, 한 끼 밥을 먹으면서 객기를 부르기에는, 딸린 처자식에, 생활비, 대출 이자, 마이너스 통장 등등 많은 것들이 걸려 있습니다.


음, 역시 다들 짜장면이지? 좋아.

역시 중국음식은 짜장면이지. 하오~

통일하면 음식도 빨리 나오고 좋잖아.

어이, 김 대리, 군만두 서비스 좀 먼저 달라고 얘기 좀 해봐 봐. 젊은 사람이 눈치 없이. 빠릿빠릿하지 못 해가지고 말이야. 엉? 그래 가지고 어따 쓰겠어?


18 그냥 탕수육 하나 시키지

김 대리는 지옥 같은 입사 지원과 압박 면접을 다시 하느니, 군만두 서비스를 요구하자는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그런다고 평생직장도 힘들고, 이직을 해야 하겠지만 당장 그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지요. 하기 싫은 일은 뒤로 늦추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회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의견을 물어보길래 모두들 표준 model, 다른 사례들을 말하며, A는 B로 가야 한다고 상당한 의견의 일치를 봅니다. 오랜만에.


그런데 이분 아니랍니다.

A는 C로 가야 한답니다.


Why?


그냥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나를 지금까지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그 삘이, 영감이 그 길로 자신을 이끈답니다.

아니면 본인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렇답니다.


개저씨의 개소리지요.


경험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범인들이 모르는 천재성과 결단력이란 것이 가끔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극히 예외적이란 걸 아셔야 하지요.


A는 B를 말하던 사람들이 벙 찝니다.

하나같이 찐빵처럼 모락모락 열만 피우고 있습니다.

직급이 깡패라고 결국 A 사안이 C로 결론 나서 그렇게 진행됩니다.


제발 문제만 되지 마라

이렇게 빕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문제들은 불거집니다.

큰 손실을 회사에 가져옵니다.


우리의 개저씨가,

미안. 내가 그때 여러분들 말 귀 담아 들었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니까 책임자로서 내가 책임질께

이럴까요?


그랬다면 이 이야기가 이렇게 길게 이어지지 않았겠지요.


왜 날 말리지 않았느냐고 되려 성을 내거나,

면피하고 책임을 전가하려는 갖은 노력을 합니다.

어떨 땐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거나 혹은 차분하게 사기 치는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도 하지요.


아저씨도 알면서 그러는 거지요?

먹고 살려고. 그 자리 유지하려고.

압니다.

그런데 책임을 받아주진 못하겠습니다.

그러다 우리가 죽거든요.


현실은 안타깝게도, 고연봉의 이 아저씨가 성과급까지 한 몫 챙기고, 나머지 부스러기를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는 결과로 이어지기 일쑤입니다. 돈 앞에 장사나 공자님은 잘 없습니다. 그런 척 하는 분들은 많이 봤습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발생하니,

그래서 들고 일어나거나 다른 길을 찾는 사람들이 생기지요.


요즘엔 나이 드신 분들 뿐만 아니라, 젊은 친구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면 완장 차고 대감님 노릇하려는 친구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있었지만 시대를 따라 숫자가 늘어나면서 사례도 늘고 있지요.


최연소 임원이다 뭐다 해서 파격 승진을 했는데, 갑질, 직장 내 괴롭힘, 폭언, 폭행 하다가 1년 만에 짤린 케이스 많이 아실 겁니다. 젊은 꼰대지요.

이런 비슷한 친구들을 보면 개저씨 유망주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여성 분 중에도 이런 분이 있습니다. 남녀 평등이 이런 데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네요. 이런 면에선 남녀 불문인 경우도 자주 봅니다.)


얼마 전 길을 가다 까마귀에게 공격을 당했습니다. 처음엔 깜짝 놀라고 사실을 확인하고는 기분이 나쁘더군요. 그런데, 뉴스를 보니 도심 까마귀 문제가 저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개저씨는 이런 까마귀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예기치 못한 공습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회사를 다니고 일을 해야 해서 얼굴을 맞대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쳐다도 보지 않을 사람이지요.


풍자 형식으로 재미를 가미해보려고 했지만 내용 자체가 부정적이라서 이런 내용을 좋아하지 않으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저 개저씨라는 게 이런 사례들과 관련이 있으니 주의하자 정도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이 단어가 없어지는 데에 이 글이 조금이나마 기여를 했으면 하는 마음에 몇 자 적어봅니다.


개저씨가 되지 않는 속성 방법


1. 잘 씻고 다니자. 옷도 제때 빨아 입고 다니고.

2. 남이 싫어하는 짓은 줄이자. 눈치볼 건 좀 보고 배려도 좀 하자.

3. 나이 더 많다고 자리 차지하고 있다고 갑질이나 이상한 짓 하지 말자.


사실 별 것 없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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