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노드라마 Oct 23. 2023

유기견 입양, 그리고 10년 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기적


2013년.

이전까지 아파트에 살다가 주택으로 이사를 갔던 그 해 여름, 우리 가족은 본격적으로 새 식구를 찾아 나섰다. 그 당시 언니는 시청 축산과에 근무하고 있었고, 수시로 시내 동물병원에 외근을 다니며 발견했던 몇몇 유기견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부모님은 하루라도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도록 가능 한 새끼강아지를 찾아보자고 말씀하셨다.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여름방학을 맞아 본가에 내려와 있던 나는 그토록 꿈꿔왔던 강아지를 키울 수 있다는 사실에 잔뜩 들떠있었더랬다. 하지만 매일같이 유기견 보호소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새끼강아지를 찾는 일에도 슬슬 지쳐갈 무렵, 언니가 단톡방에 한 유기견 공고 캡처 이미지를 보내왔다.



"얘는 어때?"



안타깝게도 몇 년 전 내 노트북이 하루아침에 포맷되는 바람에 그 당시 공고 사이트를 캡처해 두었던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당시 설명문을 기억나는 대로 몇 자 끄적여보자면 다음과 같다.

-믹스견, 암컷, 성격 온순함, 송정 쓰레기장 부근에서 발견, 태어난 지 한 달 반 정도 추정



그나마 다행히 공고 속 사진만은 남아있다.



공고  강아지의 사진을 보자마자 '은근하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당연히 초면이었지만 저 눈빛은 굉장히 은근했다. 다소 낯선 표현이긴 하나 눈빛이 '은근하다'는 말 외에 다른 수식어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 당시 수많은 공고를 보며 천진난만 어린 강아지보다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듯한 눈빛의 다소 나이 든 아이들에게 마음이 끌렸던 난, '애기 치고 눈빛이 너무 은근한 것 같아'라는 어이없는 핑계를 대며 썩 내켜하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모두 마음에 들어 했고 얼굴이나 보러 가자는 심정으로 보호소에 전화를 걸었는데 공고 등록 후 열흘 동안은 주인을 찾는 기간이라 입양이 불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정확히 22일부터 입양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네, 보호소가 아침 9시에 문을 열어요. 근데 혹시라도 다른 분이 먼저 오시면 보셨던 아이를 못 데려가실 수도 있어요. 새끼강아지들은 특히 더 그래요.


아- 나는 그제야, 괜히 애가 타기 시작했던 것 같다.




-




열흘이 지나고 딱 열하루가 되던 날 아침, 나는 알람까지 맞춰놓고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호소가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식사도 거르고 빠르게 세수와 양치만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집을 나섰던 그날은 새벽부터 소나기가 대차게 내렸다. 와 함께 차를 보호소로 가는 그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는데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지역에 이런 동네도 있었나?'싶을 정도로 그곳은 본 적도 없는, 꽤나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었다. 매섭게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 메트로놈처럼  새 없이 좌우로 요동치는 와이퍼,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 맑은 날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설레던 내 마음과는 달리 보색처럼 대비되던 그날의 풍경이라 더욱 선 뇌리에 박힌 듯하다.


산속 깊숙이 자리해 있던 목적지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이내 시선을 땅으로 고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자기를 데려가 달라는 듯 끝없이 녹슨 철창을 긁는 녀석도 있었고 건물이 떠나가라 짖어대던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시끄러운 난리 통에도 조용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허공만 응시하고 있던 웰시코기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파 아직까지도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녀석에게 얼마나 수많은 기대와 좌절의 반복되었던 걸까. 마음 같아선 그 아이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울부짖는 소리로 인한 무력감에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아빠 역시 한숨을 쉬며 안을 둘러보다가 직원분에게 공고에서 보았던 강아지는 어디 있는지 물었고, 아직 어려서 동물병원에 있으니 그리로 가면 된다는 답을 들었다. 눈에 밟히는 수많은 울음을 애써 모른척하며 뒤돌아 나오려는데 직원분이 유기동물 입양증 같은 서류를 한 장 건네주시며 그걸 병원에 제출하고 데려가면 된다고 하셨다.


시내에 위치한 동물병원까지 가는 동안 아빠와 나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방금 전까지 생생하게 마주했던 애석한 현실을 애써 뒤로하고 아무 일 없었던 양 굴 수는 없었던 탓이다.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감이 존재한다. 으레 그런 세상도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만 해왔거나 TV나 모바일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기만 했었던 풍경이 내 두 눈으로, 또 냉정한 공기를 통해 내 피부로, 처절한 절규를 내 두 귀로 직접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차원을 뛰어넘는 고통의 파도 속으로 나도 모르게 휩쓸리는 일이다. 아침의 마냥 설레던 마음은 금세 희미해져 버렸고, 우리는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집에서 보호소까지 갔던 거리 정도만큼을 더 이동한 것 같다.



딸랑거리는 풍경이 달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간호사 한분이 맞아주셨다. 도착하기 직전 미리 전화를 드렸던 덕분에 '유기견 입양'이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아아, 애기(병원에서 부르는 가명인 것 같았다) 여기 있어요"라고 하시며 우리를 진료실로 안내했는데 그때 눈앞에 펼쳐졌던 모습은 아마도 영원히,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간호사분이 "애기 여기 있어요-"라는 말 뒤에 늦을세라 재빠르게 한마디 덧붙인 말은 "그런데 지금 애기가 똥을 싸고 있어서..."였고, 그 문장이 귀에 재생되는 동안 진료실 바닥엔 정말 작고 하얗고 보송보송한 솜뭉치가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말 그대로 '똥을 싸고 있'었다. 그 솜뭉치의 시선은 열려있던 진료실 안으로 방금 막 들어선 이방인, 즉 나를 정확히 향했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부들부들 열심히 힘을 주고 있는 그 모습에 나는 그만 완전히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간호사 언니는 마치 '첫 만남에 하필이면 똥을 싸는 모습이라니, 혹 마음 바꾸시면 안 될 텐데-'라는 듯한 느낌으로 꽤나 안절부절못하셨지만 나는 이미 그 모습 그대로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앞으로의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아주 소중한 생명체에게.



간단히 뒤처리를 끝낸 간호사 언니가 그 작은 솜뭉치를 안아 들어 나에게 넘겨주었는데 '애기'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내 품에 쏘옥 안겨들어왔다. 나는 혹여라도 낯선 존재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손끝에 모든 감각을 집중한 상태였는데 애기는 우리가 가족이 되었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건지 사진으로만 보았던 '은근'하며 더없이 평온한 표정으로 나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있었다. 그 순간이 너무도 감격스럽고 또한 사랑스러워 그만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예방 접종에 따른 설사 가능성과 추가 접종 일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입양증을 꾸미려는 찰나 간호사 언니가 묻는다. "애기 이름은 뭐라고 적으면 될까요?" 사실 입양일이 다가오기 훨씬 전부터 새 식구의 이름을 이미 정해둔 상태였다. 그 당시 MBC의 '아빠! 어디가?'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던 나는 출연진 중 배우 성동일의 아들이었던 '성 준'이를 굉장히 예뻐했는데, 준이는 '선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예의 바르고 배려심도 강한 아이였다. 그 준이처럼 착하고 (마음씨가) 듬직한 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성별에 상관없이 '준이'로 짓고자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은 '준이'로 하려고요." 혹시라도 간호사 언니가 잘못 적으실까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다시 발음해 드렸다. 준, 이. 하지만 얼마 못 가 이 이름은 현재의 '쮸니'로 바뀌게 되는데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의 강아지를 된 발음 없이 부르기란 우리 가족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나 보다. 사람이라면 몰라도 강아지를 "준이야- 이리 와!" 하는 것과 "쮸니야! 이리 와!" 하는 것은 입에 감기는 맛부터가 다르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내뱉으면서야 알게 되었다(한 번 발음해 보시라!).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반려견의 이름은 가급적 된소리나 거센소리가 들어간 강한 발음을 사용해 3음절 이내로 짓는 것이 강아지가 알아듣기 쉬워 좋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된소리와 3음절 이내가 모두 얻어걸린 럭키한 이름을 갖게 된 행운의 강아지 쮸니.


입양 절차를 모두 마치고 쮸니를 안아 든 채 동물 병원 밖으로 나왔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쮸니를 처음 안겨드렸을 때 엄마는 아주 생생하게 '어머, 천사야!'라고 소리쳤고, 언니 또한 퇴근 후 피아노 밑에 앉아있던 낯선 솜뭉치를 마주한 순간 내가 그랬듯 그 자리에서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2013년 7월 22일, 비록 가족 관계 증명서 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어쩐지 그보다 더 끈끈한 무언가로 연결된 듯한 우리 다섯 식구는 그렇게 전혀 새로운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음, 천사가 확실하군.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면 '사랑'은 곧 '중력'이자,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무이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나와 피 한 방울조차 섞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종(種)까지 다른 이 작고 하얀 생명체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저 건강하게 뛰어노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고, 사료를 오독오독 잘도 씹어 넘기는 모습만 봐도 기특하고, 양껏 먹고 난 후 마치 사람처럼 트림을 꾹- 내뱉으면 정말이지 깨물어주고 싶으며,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허리를 잔뜩 구부려 열심히 볼일을 보는 모습마저 사랑스럽고, 자다 깨서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자기 물그릇이 놓인 자리로 가 알아서 물을 챱챱챱챱 마실 때면 정말이지 천재가 아닐까? 감탄하게 되고, 가만히 누워 새근새근 잠든 얼굴에 숨을 고르느라 작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을 보면 생명의 신비로움에 가슴이 벅차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어란 말인가. 




막내의 자리를 이 녀석에게 물려준 지도 꼭 십 년이 되었다.



비 오던 날 우리 집으로 온 천사는 어느덧 열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의 막내이자 삶의 활력소이고 영원한 '애기'다. 나는 태어나서 이보다 더 사랑해 본 존재가 없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약 138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난 뒤 수많은 별의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었고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이 드넓은 우주에서, 그것도 하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이 풍요로운 별 지구에서. 사피엔스의 조상들이 이 땅에 출현한 이래 다시는 없을 우연으로 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에 만나 가족이 된 너와 우리.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도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이라는데 우리는 그러한 기적 속에서 매일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기적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매 순간 함께 존재함에 감사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을 작은 심장의 앞날을 순전히 인간들의 의지로 결정지어버렸으니 그에 따른 책임감으로 행복 만을 줄 것.


우리의 기적이 다하는 날까지.



작가의 이전글 포기하고 싶은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