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辨의 성경보기]아브라함의 이삭 제사에 숨겨진 이야기

'믿음의 시험'이 아니라 '우상 숭배의 단절'

by 이근엽


익숙하지만 가장 오해된 이야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평생을 기다리다 포기한 순간 기적을 베풀어 갖게 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순종하여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려간다. 칼을 들고 죽이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급히 아브라함을 제지하고, 대신 숫양을 제물로 주어 제사를 드리게 한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여전히 논쟁이 많은 이야기 중 하나인 '이삭의 결박' 사건이다.



이삭을 제사로 드린 이야기에 대해 흔히 알려진 해석을 보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여겨지게 된 중요한 계기로서 순종과 믿음을 잘 드러낸 이야기로 해석하는 견해가 가장 흔하고, 부차적으로 희생 제물이 된 이삭이 나중에 오실 어린 양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조상'이 되기에 합당함을 증명해야 하는 마지막 관문으로서 소위 '믿음의 시험'을 내리신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널리 알려진 견해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창세기의 '이삭의 결박' 사건에 관한 기존의 해석이 얼마만큼 설득력을 가질까?

설득력 차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신학적으로는 과연 합리적 해석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일까?


먼저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기독교계의 널리 퍼진 해석에 대하여,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언약의 상징으로서 이삭을 은혜로 주셨다가 도로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한 하나님 이야기에 대하여,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종교의 야만성과 비윤리성 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여기는 것 같다.


씁쓸하지만 비이성적인 이야기이고 그 해석은 맹목적인 믿음만을 강조하는 유치한 수준에 그쳐 설득력이 없다는 것으로 들린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자들 역시 성경을 읽는 과정에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 뭔지에 대해 갸우뚱하게 생각해 본 적이 많았을 것이다.

목회자, 주일학교 교사 등으로부터 '믿음의 시험'이라는 설교를 듣고 난 후라도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을 떨치기 힘들었을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이삭의 결박' 사건을 하나님에 대한 순결한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해석은,

비신자들이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마치 인간이 순종하는지 안하는지 떠보기 위해 비윤리적인 시험을 강요하는 억압적 절대자로 오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당시 사회상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고 본문의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삭의 결박 사건의 본래 의미는 무엇이고 이에 담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



고대근동에서 종교의 의미와 '장자 희생'이라는 관습


구약성경은 고대근동을 배경으로 쓰여진 텍스트로서 고대근동 사회의 신화, 문화, 종교, 정치, 경제 등에 관한 내용이 곳곳에 배어있다.

보다 정확히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하나님(야훼)신앙으로 재해석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근대 이전까지도 마찬가지였지만 기원전 2,000~3,000여년전 고대근동 사회는 신(God)의 뜻이 인간이 세상 온갖 일과 운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근본 원리였기에, 종교는 모든 면에서 인간의 행동양식을 규정하였다.


하나님의 명에 의해 아브라함이 그 아버지 '데라'를 따라 가나안으로 떠나기 전 원래 살던 고향은 갈데아 우르로서 달(moon)신 '난나(Nanna 또는 Sin*)'를 주신(main god)으로 섬기는 도시였다.

일족의 수장인 데라가 여정 중간에 너무 힘든 나머지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 입성을 포기하고 정착한 '하란' 역시 난나를 주신으로 섬기던 도시였던 점을 보면,

고대근동 사람들에게 종교가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지나쳐 온 '신(Sin)광야'나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Sinai)산'의 지명은 고대근동 전 지역에서 인기가 높았던 달신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구약성경 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가나안 토착민들이 섬기던 신들, 즉 '바알', '아스다롯', '몰렉' 등을 하나님(야훼)과 같이 섬김으로써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는 이야기들에서 공통되는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암몬 족속의 신이었던 '몰렉'의 경우,

자녀를 희생 제물로 요구하는 종교적 관행이 하나님의 심한 분노를 산 것으로 묘사되다.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열왕기하 23:10)
너는 네 자식들을 몰렉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면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게 하는 일이다. 나는 주다.
(레위기 18:21)


그런데 이와 같은 인신공양 제사의 풍습은 '몰렉' 신의 경우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나안의 신은 '바알'이다.

바알은 폭풍우(땅을 비옥하게 하는 비를 내림)의 신'이자 '풍요의 신'으로서 가나안 뿐만 아니라 아시리아(바알신의 다른 이름인 '아다드' 또는 '하다드'로서 왕의 이름에 널리 사용됨), 이집트(힉소스 왕조 이후 이집트의 4대 신중 하나인 '세트' 신에 수용) 등 가나안* 지역을 포함하여 고대근동 전반에 걸쳐 매우 인기가 많았던 신이였다.


이러한 바알을 주로 섬겼던 페니카아 문화권에서도 바알 숭배와 관련해 “(첫째)아이 희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토페트(tophet/tofet)'로 불리는 성역에서 유아/어린아이의 화장 또는 매장과 함께 헌납 비문이 다수 발견되었고, 그 비문에는 특정 신에게 바친 서원과 함께 “신이 내 소리를 들었다/복을 주었다” 같이 신과의 거래적 성격이 드러나는 '청원–응답 문언'이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페니키아 봉헌 비문
페니키아 봉헌 비문


또한 성경에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던 모압의 왕이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모스 신에게) 자기 장자를 번제로 받침으로써 전황을 바꿀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압 역시 장자 희생의 종교적 관습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열왕기하 3:24~27)


아브라함의 선택은 왜 자연스러웠을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브라함이 살았을 당시 고대근동에는 자기들이 믿는 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 즉 첫째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대가로 축복을 얻어내고자 하는 종교적 관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제사의 목적은 신에 대한 경배 내지 찬양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재물, 안전, 다산 등의 축복을 신으로부터 얻어내고자 했던데 있었던 것으로 그 실제 성격은 '거래'에 보다 가까웠다.


이와 관련하여 고대근동에 대하여 심취하여 깊게 파고든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은 자신의 대표적 장편소설인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서,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쳐 몸의 의탁하게 된 외삼촌 라반이 첫째 아들을 재물로 바쳤으나 신이 응답하지 않아 그 이후 아들은 물론 원하던 축복도 얻지 못하여 겪는 '(신과의) 거래 실패로 인한'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한글번역판 총 6권으로 구성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자식,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 요구를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히려 고대근동의 여타 신들과 같이 하나님 역시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 그 대가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으라고 하시는가 보다 생각하며,

당시의 종교적 관습에 따라 별 저항 없이 따랐다고 보는 것이 훨씬 설득력을 가진다.


이야기가 바뀌는 순간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급격히 전환된다.

하나님게서는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개입하여 중단시키고, 대신 예비된 숫양을 제물로 주신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까?


그 답은 바로 십계명의 제1계명인 우상숭배를 끊어내기 위함이었다.


고대근동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장자를 제물로 바치는 이유는, 순수한 신에 대한 경배 내지 헌신이 아니라 원하는 축복을 얻어내고자 신의 권능을 끌어내는데에 있었다.

인신공양은 그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을 초월적 '권능을 가진 존재'이지만 인간이 어떤 특정 조건을 충족(보통 희생제사의 모습으로 나타남)시키는지 여부에 따라 그 권능을 토해내는 그저 수단화 되고 객체화 된 열등한 존재(deus ex machina), 바로 '우상'으로 여기는 관념이 바탕에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굳이 '자유의지'를 부여하면서까지 인격적 관계를 맺고자 하셨던 인격적 절대자, 하나님께서는 바로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이러한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을 용납할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삭의 결박사건'은 바로 당대의 종교적 관습에 따른 장자공양을 별 뜻 없이 따르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야훼) 신앙에서는 더 이상 그러한 우상숭배는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선언(계시)하시기 위해 벌이신 사건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브라함의 순종이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단호히 거부하시는가에 있는 것이다.


우상숭배를 금지한 본래 의미


아직도 십계명의 우상숭배 금지가 불교, 이슬람교 등과 같은 타 종교를 의미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숭배'의 본 뜻은, '다른 종교를 섬기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소원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행위'에 있다.


출앱굽한 이스라엘은 모세의 부재로 인한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하여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형상화(우상화) 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정착할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의 토착종교를 금지하신 이유는, 단지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거짓 신을 섬기는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가나안의 종교관 자체가 신을 그저 인간의 헌신적 숭배행위 여부에 따라 축복 내지 저주를 내리는 권능을 가진 우상적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이삭의 결박 사건은 ‘믿음의 시험’이 아니라 우상 숭배의 논리를 해체하는 선언적 사건이 된다.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작될 수 있는 신이 아니고 어떤 제물로도 거래될 수 없는 인격적 절대자라는 사실이 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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