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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Jul 13. 2023

8. 그 남자와 자연스럽게 그러나 뜨겁게 키스를 했다.

멕시코 | 그곳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1

약 2주간의 일본 여행을 끝내고 멕시코를 가기 위해 하네다 공항으로 갔다.

국제선은 출발 3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한다. 그게 나의 상식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비행기 출발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체크인 수속을 위해 당당하게 항공사 카운터로 걸어가서 티켓과 여권을 제시했다.

(빨리 해주세요. 나 라운지 가야 한단 말이에요.)


  "손님, 죄송하지만 손님은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으세요."


  "....네?"


뇌정지가 왔다. 저 사람 지금 뭐라 하는 거지?

2주를 넘는 기간 동안 계속 일본어를 써서 잘 여행했는데, 이제 와서 말이 안 통하나?


  "왜죠...?"


내 항공권은 미국 LA를 경유하여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로 입국하는 편도 비행 티켓이었다.

그렇다. 편도 비행 티켓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계일주를 한다는 말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지,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즉, 어디 섬에 들어갔다 오거나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왕복 비행기 티켓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당연하게도 멕시코행 편도 티켓을 끊었었다.


그런데 이 편도 티켓이 문제였다.


나라에 따라선 편도 티켓만으로는 입국이 불가능한 나라들이 있었던 것이다.

불법체류나 각종 다양한 이유로 왕복 티켓이 있어야만 입국을 허락해 주는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공항에서 체크인하는 시점에서 제지당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나야 나)


그렇게 나는 비행기 탑승을 제지당했다. (!)

(아니, 그럴 거면 애초에 편도로 티켓을 팔지 말라고)


미치겠다. 손이 떨렸다.


라운지에 눈이 멀어 체크인을 서두르고 있었는데, 라운지는 커녕 지금 멕시코를 못 가게 생겼다.

(비행기 티켓이 있는데, 왜 타질 못하니 ㅠㅠ)

당연한 이야기지만, 티켓값도 비쌌단 말이다!

이렇게 내 돈을 날릴 순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멕시코에 못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내 돈을 날릴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한심하네 나 ㅎ)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고 승무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제가 비행기를 탈 수 있나요?"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아놨더니 이번엔 목소리가 떨렸다.


  "돌아오는 티켓을 사셔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고, 비행기를 안태워준다 해도 타는 방법은 있었다.

다만, 돈이 들었다. 돈돈돈.

그렇게 부랴부랴 다시 일본으로 리턴하는 티켓을 현장에서 발권했다.

물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생각으로 구매한 건 아니다.

멕시코에 무사 입국만 하면 바로 환불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가급적 돌아오는 티켓은 멕시코에 체류가능한 기간과 엇비슷한 티켓으로 구매했다.

유비무환. 바로 환불 신청이 될지, 또 수수료가 얼마 들지 몰랐기에.


순식간에 한 시간이 지났고, 어느덧 비행기 출발 2시간 전이 되었다.

그제야 겨우 체크인 수속을 하고, 수화물을 부칠 수 있었다.

역시 국제선은 최소 출발 3시간 전에는 도착해 있도록 하자.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근데 이 맛에 세계일주 한다.)




후..

결국 기대했던 라운지는 못 갔다.

체크인 이후에도 시간이 다소 지체되어 바로 비행기를 탑승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의외로 6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을 좋아한다.

밥도 주고 술도 주니까. ㅎ


비행기를 타면 루틴이 있다.

먼저 자리를 잡고, 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앉는가 살펴본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면 먼저 와인을 한잔 부탁한다.

와인 한잔 마시면서 스크린에 어떤 영화가 있나~ 구경하다 보면 밥을 준다.

밥을 먹으면서 와인을 한잔 더 부탁한다.

밥도 먹었겠다, 와인도 마셨겠다, 영화를 보다 보면 노곤노곤 잠이 온다.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또 와인을 부탁한다.

와인을 마시다 보면 또 밥을 준다.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 사육당하다 보면 어느샌가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사육을 당하기에 6시간 이내는 너무 짧다.

그래서 나는 6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이 좋다. ㅎ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거쳐 LA에 도착했다.

사전에 미국 비자도 받아놨기에, 비행기 티켓도 준비가 되었기에 별 탈없이 입국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아쉬웠던 점이 이 순간이었다.

이 당시 미국에 대한 흥미가 크게 없었기에 그냥 경유만 하고 지나갔는데, 만약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LA에서 육로로 멕시코로 넘어가면서 미국 서부도 여행 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 기회를 놓쳐버려서 그 이후에도 나는 아직 미국을 가보지 못했다.)


LA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약 6시간(정도..였나..?)을 더 날아가 드디어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감격)


일본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서 멕시코시티의 숙소를 추천받았다.


Hostel Amigo


일본인이 운영하는 호스텔로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내가 세계일주를 하던 시기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오히려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하고 있었고, 나 또한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한국인보다 일본인들을 더 많이 만났었다.


이땐, 어플로 미리 숙소를 예약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어플이 없어서, 그런 시대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생각을 못했다.

무식하게 위치만 찾아보고 가서 현장에서 방을 구했다.

(그나마 여긴 숙소라도 알아보고 갔지, 그 이후에는 한동안 숙소조차 알아보지 않고 그냥 현지에 가서 숙소를 구했다.)


그렇게 호스텔 아미고의 주소만 달랑 들고, 그곳을 목적지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읽을 수는 있는데, 뭔가 익숙한 거 같은데, 전혀 모르는 말.

스페인어가 곳곳에 적혀있다. (당연한 말)

티켓을 사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좋았어. 여기까진 한국이랑 똑같군. 자연스러웠어.(뿌듯)'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

내 주변에는 멕시코인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곧이어 지하철이 왔고 그 남자와 나는 같은 칸 열차에 올라섰다.


열차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앞뒤로 멘 나의 큰 배낭과 작은 배낭이 승객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되지 않도록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 탄 남자는 일행인 듯 미리 열차에 타있던 남자와 자연스럽게 그러나 뜨겁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

....??

.....???

......!!!!!!!!!!!!!!!!!!!!!!!!!!



그 남자와 자연스럽게 그러나 뜨겁게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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