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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Jul 19. 2023

9. 홀로 떠난 여행이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

멕시코 | 그곳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2

열차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앞뒤로 멘 나의 큰 배낭과 작은 배낭이 승객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되지 않도록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 탄 남자는 일행인 듯 미리 열차에 타있던 남자와 자연스럽게 그러나 뜨겁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

....??

.....???

......!!!!!!!!!!!!!!!!!!!!!!!!!!


그 남자와 자연스럽게 그러나 뜨겁게 키스를 했다.




혹시라도 글을 대충 읽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아니라, 나랑 같이 열차를 탔던 남자가 미리 열차에 있던 남자랑 키스한 거다.

(혹시라 썼지만, 절대 있을 것이다. 나 놀리는 거 좋아하는 내 주변인들은 심지어 똑바로 읽어놓고도 자체적으로 오해할 것이다. 뻔하다.)


어쨌든.


충격적이었다.

너무 놀랐다.


남자끼리 키스하는 걸 처음 봤다.

심지어 저렇게 뜨겁고 거칠게(?).

그것도 이런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더 놀라운 건 나는 놀라서 구석에서 계속 흘끔흘끔 쳐다봤는데(?),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저기 저 커플(?)의 애정행각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이질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기 뭐야. 왜 다들 태연해. 무서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문화의 차이인가?

이곳은 동성애를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바라봐주는 곳인가?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과는 달리, 공공장소에서의 스킨십에 대해 관대한 편인가?

여기서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나뿐인 걸까?


나만 섬인가 보다.


20분이 넘는 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간 동안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열정적으로 서로의 입술을 탐닉했다.

결국, 내가 열차를 내리는 그 순간까지도 그들은 처음과 같이 서로의 사랑을 대해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 이랬던가?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은 그들의 사랑을 반강제로 1열 직관하다 보니 처음 느꼈던 놀람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열차를 내리면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그들을 봤다. 짧은 순간을 영원처럼 보내는 그 모습을.

이쯤 되면 그들의 모습에서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세상에는 저런 사람들도 있고,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세상을, 사람을, 순간을 받아들이는 나의 그릇이 조금 커진 것 같았다.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멀어졌고, 지하철을 벗어났다.

(사랑과 정열을 그대들에게..☆ Adios.)




멕시코부터 파나마까지 중앙아메리카로 분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나라들은 수도의 치안이 가장 불안했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또한 그러했다.

길가엔 무장경찰들이 위치해 있고, 모든 가게나 슈퍼, 숙소들의 문은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간 숙소 또한 그러했다. 삭막한 건물 외관에 달린 강철로 만들어진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ㅁ자 빌딩 안에 작은 마당이 있는 그런 느낌.

살벌한 바깥풍경과는 사뭇 다른 아늑한 느낌마저 드는 공간이었다.


체크인하고 싶다고 하니 예약이 있냐고 묻는다.

당연히 없다. 당당하게 안 했다고 대답했다.

다행히 빈방이 있었다. (휴)


내 방은 2층의 한 2인실.

룸메는 큰 키에 마른 몸매, 옆머리는 다 밀고 윗머리를 길게 길러 뒤통수 쪽에 묶은 헤어스타일의 일본인 남자였다. 그리고 온몸이 이레즈미로 덮여있었다. 눈매가 보통이 아니었다.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 졌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했다. 풀네임이 길어 그냥 Shin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Shin은 일본에서 자랐지만 국적은 브라질이란다.

고등학교 철없던 시절엔 폭주족을 했었다며(네?) 그 시절 사진을 보여줬다.

만화책으로만 보던 기다란 상의에 허리에 붕대를 감고 다니는 그 시절 일본 폭주족이었다.

상남 2인조는 아무래도 얘를 모티브로 한 게 아닌가 싶다.


갑자기 집에 몹시 가고 싶어 졌다.


직업은 타투이스트이고, 타투는 야쿠자 사무실에서 배웠다고 했다.(네??)

그러면서 주로 야쿠자들에게 타투를 해줬단다.

그러다 야쿠자 두목의 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두목에게 걸려서 도망치듯 해외로 왔다고 했다.

그렇게 8년째 여행을 하고 있단다.(도피생활!?)


갑자기 격하게 집에 가고 싶어 졌다.


대충 짐만 풀고 도망치듯 숙소 공용공간으로 갔다.

매니저랑 이야기를 하다 조금 친해졌다.

저녁 7시가 넘으면 가급적 밖에 다니지 말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다니게 되더라도 큰길로 다니고, 무리를 지어서 다녀라고 한다.

골목길은 아예 갈 생각도 하지 말란다.


 '응. 절대 나가지 말자^^'


나는 빠르게 결심했다.


도착 첫날이기도 하고, 장시간의 이동으로 좀 피곤했던 나는 간단하게 숙소 근처를 돌아보며 저녁거리만 대충 사서 돌아왔다. 맥주도 샀다.


간단하게 저녁을 만들어 먹고 있으니, Shin이 다가왔다. Shin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놀다 보니 어느샌가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Shin은 보기완 달리 유쾌하고 괜찮은 친구였다.)


그중에는 이미 오래 이곳에 머무르며 Shin과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있었고, 나처럼 오늘 막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국적과 인종을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차별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으로 마주하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익숙한 동북아시아권을 벗어나 처음 발 디딘 중앙아메리카 대륙은 도착과 동시에 나에게 큰 충격과 놀라움을 선사했고, 무섭고 낯설기만 했던 이곳 먼 땅 멕시코에서, 각자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모여 맥주 한 캔으로 인연을 맺는다.


그들의 존재는, 그들의 이야기는 내 여행의 일부가 되고,

나의 존재는, 나의 이야기는 그들의 여행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채워주었다.



홀로 떠난 여행이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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