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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Nov 07. 2023

10. 그는 깡패인가? 아니면 협상의 달인인가?

멕시코 | kyo님께서 스킬 '협상(Lv1)'을(를) 습득하였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 같은 무리끼리 서로 내왕하며 사귐.  /  출처 : Oxford Languages


쉽게 말해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다.




그날 저녁 함께 맥주를 마신 Shin의 친구들 중에 Taki(세이클럽?)와 Issei가 있었다.

Taki는 미용사라고 한다.

Issei는.... 그냥 휴학 중인 학생?.. 백수..?...이었던가?

이 친구들은 여행지에서 처음 사귄 친구들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으로 나의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친구들이다.(방금 기억 잘 못했던 거 같은데?)


Taki는 머리가 길었다.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왔고, 파마를 했다. 그리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Issei도 머리가 길었다. Issei는 옆머리는 투블럭에 윗머리만 길러서 쫑여 맨 머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참고로 Shin도 머리가 길었다. Issei와 비슷한 머리를 하고 있지만, 투블럭을 앞머리부터 사선으로 비대칭하게 밀었다. 그리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그렇다. 셋은 장발과 무섭게 생겼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착한 친구들이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굳이 비유하자면 야쿠자나 칼잡이 같은 비주얼의 친구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마음은 착한 친구들이다. 아니, 진짜로.)


맥주를 마시며 몇 명의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그 친구들 중에서 유독 Taki와 Issei랑 더 많이 친해졌다.

의외로(?) 장난기도 많고 잘 웃는 유쾌한 친구들이었다.



Shin과 그의 머리를 잘라주는 Taki. Taki는 내 머리도 잘라주었다. 그들은 마음씨 착한 나의 친구들이다.



자연스럽게 내일 뭐 할 거냐는 이야기가 오고 갔고,


나는 지금껏 그래왔듯 아무 계획이 없었다.(No plan is the best plan ㅎ)


Taki와 Issei는 테오티와칸에 피라미드를 보러 간다고 했다.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큰 피라미드 유적지란다.


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고대문명 등과 같은 것에 사족을 못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보고 싶어서, 페루의 마추픽추가 보고 싶어서, 중국의 만리장성과 브라질의 예수상,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보고 싶어서 세계일주를 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런 유적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맙소사 내가 아는 피라미드라곤 이집트의 피라미드뿐이었는데, 멕시코에서 피라미드라니! 고대도시라니! 그 얼마나 웅장한 울림인가!


나는 그들과 함께하기로 했다.(Taki, Issei님과(와)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함께 버스를 타고 테오티와칸의 유적지를 보러 갔다.

유적지에는 태양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가장 큰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두 번째로 큰 피라미드, 그리고 중앙을 가로지르는 죽은 자의 거리 등이 있다.



유유상종.. 내 바지를 보니 어떻게 얘네랑 금방 친해졌는지 알 거 같다.



그리고 관광지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잡상인이 있다.

다양한 테오티와칸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목걸이, 팔찌 등의 액세서리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까지!

그중에 우리의 눈에 띈 건 멕시코&고대문명스러운 이미지가 프린팅 된 티셔츠였다.


아직 마트에서 가격표가 찍혀있는 물건 외에는 사본적이 없던 나였기에 우물쭈물하고 있자니 Taki가 나섰다.

Taki는 우리 중에선 그나마 가장 어른스럽고 그나마 가장 얌전한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스스로 나선 것이다.


뚜벅뚜벅

뭘까 이 쓸데없는 비장함은.

어느샌가 Taki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다. Issei도 웃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함께 있던 나도 웃음기를 거두어들였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웃음기 거둔 두 친구의 얼굴이 무서웠다.


 "이거, 이거, 이거. 얼마?"


각자가 눈여겨봐 둔 티셔츠를 가리키며 Taki는 입을 열었지만, 절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셔츠 1장당 15,000원" (당시 환율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원화로 표기함)


역시 관광지는 관광지인가 보다. 초장부터 장난질이다.

멕시코 물가는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저렴한 편인데, 저 싸구려 티셔츠를 장당 15,000원에 팔다니.

Taki는 동요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장당 1500원."


!!!

우리나라에서도 물건을 사고팔 때 종종 흥정을 한다. 물론 나도 흥정을 해봤고, 처음보다 싼 값에 물건을 산 적이 있었다. 그렇게 흥정하면 1,2천 원 혹은 물건값의 10% 정도의 할인을 받았고, 나는 만족했었다.

그런데 Taki는 수준이 달랐다. 10% 할인도 아니고, 10%의 가격에 팔라니!

잡상인 아저씨의 눈이 흔들렸다. 잠시 주춤했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얼토당토않는 소리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다시 외쳤다.


 "안돼. 그럼 10,000원"


Taki는 단 한마디로 처음 제시된 금액의 33%를 깎았다.

하지만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문뜩, 도대체 얼마나 바가지를 씌우려 했길래 감가상각이 저렇게 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0원."


여전히 Taki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하고 단호할 뿐.


 "7,000원"


반값이 되었다.

사실 나는, 이미 만족했다. 7천 원에 티셔츠 한 장. 나라면 쿨거래 ㄳ 라며 돈을 쥐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Taki는 멈추지 않는다.


 "그럼, 3장에 7,000원"


우리 편이지만 이미 내 눈에 Taki는 깡패였다. 

아저씨가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충 느낌은 여기서 더 깎으면 자기도 손해라고 이야기하는 거 같은 느낌이었다.

Taki가 슬쩍 미소 지었다. 덩달아 Issei도 미소 지었다. (승부가 난 건가?)

나중에 물어보니 Taki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단다.(?) 물론 Issei도.(왜 웃은 거야)


 "안돼. 장당 4,000원은 줘."


Taki도 느낀 걸까. 이젠 거품이 많이 빠졌다는 걸.

아니면 처음 본인이 생각했던 가격과 가까워졌던 걸까? 우리에게 묻는다.


 "어떡할까? 이 가격 괜찮아?"

 "음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깎아보자."


역시 Issei는 Taki의 친구다. 


 "3장에 10,000원. 그 이상은 못줘."


잡상인 아저씨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돌연 제시했다.


 "OK. 그럼, 동전 던져서 앞면 나오면 3장에 10,000원에 팔게. 대신 뒷면이 나오면 12,000원 줘."


Taki가 동의했다. Issei도 동의했다. 나도 동의했다.

어째서 기념품을 사려던 게 겜블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우리의 수고는 동전에게 맡겨졌다.

팅~ 동전이 던져졌다.

휙휙휙~


앞면이 나왔다.


우리는 결국 10,000원에 티셔츠 3장을 구매했고, 어째선지 Taki와 아저씨는 뜨겁게 악수하고 있었다.


Taki의 협상은 훌륭했다. 그렇게 우리는 테오티와칸 굿즈를 습득했다.


우리는 다 같이 옷을 갈아입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Taki의 가늘디 가는 다리가, 빨간 바지가, 저 어울리지 않는 하트손이.

어째선지 미키마우스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금 Taki가 귀여워졌다.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 마냥 셋이 비슷한 옷을 입고 유적지를 나오고 있자니, 다른 잡상인들에게서 물건을 사고 있는 관광객들이 보였다. 그리고 엄청나게 바가지가 씌여진 가격에 순순히 구매하는 것도.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는 깡패인가? 아니면 협상의 달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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