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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Nov 10. 2023

11. 여행도 쉼이 필요하다.

멕시코 |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다

멕시코시티에 머무르는 동안 테오티와칸 외에도

시가지를 둘러본 이야기나

CNN 선정 7대 괴기 장소라는 인형의 섬(La isla de las Muñecas)에 간 이야기라던가

카누 같은 작은 배를 타고 섬에 가던 중 마주 오는 비슷하게 생긴 배에 탄 어떤 이름 모를 멕시코 아저씨와 정말 그 잠깐 사이(대충 15초?)에 친해져 데낄라를 한병 얻었다(정확하게는 던져주길래 받았다. 나이스 캐치.)는 이야기라던가

함께 버스를 타고 놀러 가던 K의 아이폰이 버스를 내리니 없어졌는데, 핸드폰을 도둑맞은 사실보다 타이트한 청바지 주머니 속에서 K가 눈치채지 못하게 핸드폰을 훔쳐간 기술에 감탄한 이야기라던가

숙소에서 맨날 컵라면만 먹는 사람이 있길래 (간이 하나도 안된) 볶음밥을 (많이) 만들어서 함께 먹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 직업이 중화요리사였다라던가

야인 같은 행색으로 매일 우리 숙소에 놀러 와서는 자기는 체류기간이 진작에 지나버렸다면서 사실은 엄청 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며 북쪽 사막에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선인장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자기네 나라에 가져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걸어 다니는 불법덩어리 U의 이야기라던가

등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생략하고(응?) 시간을 조금 빨리 감아볼까 한다.(급전개)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난 Tacos(왼쪽)보다 Tortas(오른쪽)이 더 맛있다.




호스텔 아미고에 도착한 날 그다음 날부터 3일간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보냈다. 지난 3일 중 단 하루도 단 1분 1초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찍부터 바쁘게 돌아다녔고, 많이 걸어 다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매일 무언갈 했다.

매일 저녁에 술도 마셨고,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늦은 시간까지.


모처럼 여기 멕시코까지 왔는데

최대한 볼 수 있는 건 다 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언제 또 여기 다시 올지 모르니까.


어느덧 호스텔 아미고에서의 네 번째 아침.

아무리 봐도 예의상 달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방의 커튼은 그날도 여전히 눈부신 햇살을 막아내기에 빈약했고 나는 또 어김없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눈을 떴다. 어제와 다름없는 그러나 어느새 이게 평범한 일상이라고 느껴지게 된 그런 아침이었다.

그날도 할 일이 많았다. 가려고 했던 곳이, 보려고 했던 것이 숙제처럼 있었다. 그렇게 나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여행하기 위해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


일어날 수 없었다. 다른 어떤 함축적인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움직일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딱히 몸에 아픈 곳이 있는 건 아니었다.


멕시코를 떠난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멕시코시티는 해발 2,2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다.

백두산 정상과 비슷한 고도에서 지상보다 조금 더 희박한 산소와 조금 더 뜨거운 햇살 아래 몸이 적응할 겨를도 없이 열심히 걸어 다녔었다. 그래서 몸이 퍼진 듯했다.

(사실 테오티와칸에 갔던 날도 얼굴엔 선크림을 발랐지만 몸엔 바르지 않았고, 그 덕분에 팔은 껍질이 벗겨질 만큼 많이 탔었다.)



어쩐지 구름이 엄청 가깝게 있는 거 같더라. 기분 탓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중남미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몸에도 열심히 선크림을 바르길 권장한다.

아니, 무조건 꼭 바르세요. 제발요. (어쩐지 마트에 대용량 선크림을 팔더라. 그것도 SPF100+)


그렇게 정확히, 나흘을 누워있었다.


반나절 ~ 하루도 아니고, 자그마치 나흘이란 시간.

아니, 3일을 열심히 돌아다니고 4일을 퍼져 누워있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다.

참 속상했다.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진 건 시간과 건강뿐이라 자부했던 나였기에 더욱더.


누워서 지낸 첫날은 정말 힘이 들어 아무 생각이 없었다.

둘째 날은 움직이지 못해 조금 답답했다. 방의 천장 모양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셋째 날은 빨리 낫지 않음에 조금 초조했다. 그곳엔 벽의 벽지 무늬를 멍하니 눈으로 따라가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넷째 날. 모든 걸 내려놓았다.


답답함과 초조함을. 그리고 많은 부정의 감정을 내려놓았을 때 문뜩, 가진 건 시간과 건강뿐이라 자부해 놓고선 무엇이 그리 급했고, 무엇에 그리 쫓겼기에 나는 그렇게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움직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어떤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미리 그 지역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그 지역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완전히 안다는 것을 100이라는 숫자로 보았을 때, 50 정도? 60 정도?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 어쩌면 70 정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그 지역을 여행해 보자. 내가 70을 알고 있는데 어떠한 이유로 60 정도밖에 여행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과연 그 여행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최소한 내가 알아본 만큼의 여행은 해야 한다. 그래야 만족을 하니까.

반대로 내가 50 정도밖에 몰랐는데, 여행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서, 다양한 계기와 우연을 통해서 60만큼 여행을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10을 더 여행했으니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똑같이 60만큼 여행했는데 내가 받아들이는 감정은 전혀 다다.


누워서 똑같은 천장만 바라본 지 4일 차가 되었을 때,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전자와 같은 여행을 했었다.

사실 세계일주를 한다는 시점에서 그렇게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는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한(심지어 나는 파워 P이다.) 일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시간을 쓰고 신경을 썼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계속 여행을 했던 것이다.


나는 마음먹었다.


열심히 알아보지 않기로 했다.

 열심히 여행하지 않기로 했다.


10 정도밖에 몰라도 괜찮다.


그래도 충분히 즐거우니까.


그게 여행이다.

그 동네를 떠났는데, 뒤늦게 지나온 동네 좋은 곳, 맛있는 음식을 알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한번 이곳에 왔는데, 두 번 못 올 이유가 뭐가 있는가.

무엇이든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지나고 나서 좋은 곳을 알았을 때?


그땐 그걸 다음에 다시 그곳에 갈 명분으로 남겨두면 된다.


치열했던 3일과 그렇지 못한 4일.

도합 7일이란 시간은 나에게 내가 이 여행을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마주해야 하는지 알게 해 주었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정말로 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여행이 그러했듯, 앞으로의 여행도 그러할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도.

우리 중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앞으로 혹은 다른 길로 나아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멈추어 섰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도 있다.



여행도 쉼이 필요하다.



혹시, '여행 = 쉬는 것(휴식)'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돌이켜 생각해 보아라. 휴가를 가기 전이 피곤했는지. 아니면 갔다 오고 나서 피곤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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