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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Nov 15. 2023

12. 그렇게 어느 ATM 앞. 바보가 한명 서있었다.

멕시코 | 자유, 그것은 바로 물아일체의 경지 1

앞에서 너무 생략을 많이 한 것 같아, 인형의 섬 사진만 몇 개 올려볼까 한다.


안타깝게도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3개월간의 모든 데이터를 다 날려버렸다.

그래서 예전에 페이스북에 올려놨던 사진들을 몇 개 겨우 찾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페이스북 더 열심히 좀 할걸)

(지금까지의 내 이야기에 사진이 없던 이유.txt)



어떠한 사연으로 섬에 인형이 많이 걸려있다. 무서운 인형들이.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호스텔 아미고에서 누군가에게 멕시코의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지도를 보니 과테말라에 가는 길목에 있었다.

과테말라에 예약해 둔 어학원의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이제 멕시코시티를 떠나기로. 다음 목적지는 산크리스토발이다.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급전개)


안타깝게도, 전개가 빠르다고 이동시간이 짧지는 못했다. 버스로 14시간.

한국에선 4시간만 버스를 타도 엄청 오래 탔다고 이야기하는데, 중남미에서 4시간쯤(?)은 단거리 취급이다.


밤새 달린 버스에선 많은 일이 있었다. 간식도 먹고, 불편하게 잠을 청하다 겨우 잠드나 싶다가, 얼마 못 가 잠에 깨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중간에 생명의 위기(feat. 화장실)도 겪고, 동사(?)도 겪을 뻔했다.

어찌나 에어컨을 세게 틀어주는지... 짐칸이 아니라 함께 들고 탄 작은 배낭 안에 담요가 들어있었기에 망정이었지, 오는 내내 오들오들 떨면서 그렇게 생사의 고비와 고난과 역경을 헤쳐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앞으로 내 여행에 장거리 이동이 많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온다. 장거리 이동이 없길 바라는 건 사치인 거 같으니, 부디 앞으로 내가 타는 모든 버스에 화장실만이라도 있길.

그나마 위안이라면 덩치가 그리 큰 편이 아니라, 남들에 비해선 자리가 아주 조금 넓다는 거? (주륵)


치열했던 지난밤과 달리 산크리스토발은 평온했다.

그런 평온함을 채 만끽할 여유도 없이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커다란 배낭을 멘 채 마을을 돌아다녔다. 숙소를 잡기 위해.

이때까지도 여전히 나는 어플을 써서 숙소를 미리 예약할 생각은 할 줄 몰랐다.

오로지 발품으로 숙소를 찾을 뿐.

(대신 장점으로 숙소 직원과 체크인하면서 협상을 할 수 있다. 좀 깎아주이소~)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괜찮아 보이는 호스텔을 발견했다.

가격도 저렴했고, 위치도 괜찮아 보였다.

내가 체크인한 방은 4인용 도미토리. 대낮이었지만,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다행히 곰팡이 냄새는 안 난다.


방에서 그나마 가장 깨끗해 보이는 침대를 골라 배낭을 벗어두고, 잠시 숨을 골랐다. 후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방구석에 있던 침대에서 무언가(?) 꿈틀거린다. 자세히 보니 발바닥이 나와있다.


혹시 몰라 나름대로 조용히 방에 들어간다고 들어갔는데, 인기척이 느껴졌었나 보다.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이 일어났다.

자다가 깼는지 부스스한 머리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남자였다.


그렇게 나는 Gme와 만났다.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Gme와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짐을 푼 나는 숙소를 나왔다.

한결같은 이야기지만, 딱히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 좋아 보여서, 오랫동안 버스에 쪼그려 앉아있어서, 이제 막 무거운 배낭에서 해방되어서, 그래서. 그냥 마을을 걷고 싶었다.


사막에 마을이 있다면 이런 색일까? 샌드베이지와 황갈색 그 사이 어딘가의 색깔로 이루어진 마을은 참 활기찬 마을이었다.

산토크리스토발의 길거리엔 물건을 파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버스킹(이라는 이름의 소음을 내는)하는 사람(멕시코에서 내가 느낀 점 중 하나는 이곳 사람들은 버스킹 하는 사람들에 대해 몹시 관대하며,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대충 소리만 내도 돈을 준다는 것이다.), 구걸하는 사람, 나처럼 산책하는 사람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한참을 아무 계획도 없이, 지도도 보지 않고 그냥 발 는 대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을 어귀에서 ATM을 발견했다.

마침 현금을 좀 뽑아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터라 망설임 없이 ATM 앞으로 갔다.

VISA, Master Card가 호환되는 걸 확인하고 멋들어지게 카드를 넣었다.

이내 카드가 인식되고, [Español] / [English] 두 개의 버튼이 떴다.

자연스럽게 [English]라 적힌 버튼을 눌렀다.


문뜩. 이번 여행에서 ATM을 통해 처음으로 돈을 뽑는다는 걸 깨달았다.


 '카드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면, ATM에서 출금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바보도 아니고..ㅎ'



그렇게 어느 ATM 앞. 바보가 한 명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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