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o Nov 19. 2023

13. 그래서, 레게머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멕시코 | 자유, 그것은 바로 물아일체의 경지 2

그랬다. 나는 몰랐던 것이다. 일련의 출금 과정에 대한 영단어를.

당연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사실을. 사실은 전혀 모른다는 걸.

그렇게 셀프로 바보 인증만 하고 여전히 돈은 뽑지 못했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바꿔 말하면 여든에 하는 짓은 세 살 때도 했다는 거다.

요즘 누가 그러나 싶겠나만은 나는 여행 갈 때 그 나라의 SIM카드를 구매하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로밍도 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오로지 숙소나 공항 등에 있는 WIFI만을 사용했다.

이때의 나도 그랬다. 숙소를 나오면 나는 원시인과 다름없었다.

당연히 산크리스토발 길 한복판에 무료 WIFI가 있을 리 만무다.


나는 문명이 발달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서, 자발적으로 원시인의 삶을 택했었단 사실을 깨달으며 어버버 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외국에서 돈 뽑는 방법'을 찾아볼 수도 없었단 소리다.


어째선지 문뜩, 아까 만난 Gme 생각이 났다.

Gme는 여태 만났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 오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뭐랄까. 나와 같은 이방인이면서 Gme는 이곳에 참 잘 녹아있었다. 현지인 같다는 표현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누가 봐도 명명백백한 이방인이었다. 피부색도 다르고, 옷차림도 달랐다. 심지어 머리스타일도 다르다.

Gme 또한 이곳 사람들과는 다른 피부색, 옷차림,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Gme는 길가에 있는 저기 저 건물처럼, 따사롭게 내리쬐는 오후 햇살처럼, 느지막하게 그러나 아주 조금 선선하게 불어오는 저 바람처럼. 마치 이 마을의 일부인 것 같은 느낌.

어디를 가도 Gme가 있을 거 같은 느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세상에!


그곳에 바람처럼 흘러가는(?) 듯 유유자적 걸어가고 있는 Gme가 있다!


 "Gme!!!!!"


나는 신기한 마음에, 그리고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Help me!"


나의 다급함과 소란스러움에 Gme는 놀라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묻는 말에 ATM에서 돈을 뽑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바보는 나 하나뿐이었다. Gme는 친절하게 돈 뽑는 법을 알려주었다. 나를 바보 취급하거나 무시하지도 않았다.

돈을 뽑고 Gme와 함께 동네 산책을 했다. 아까 본 길가에서 그림을 그리던 사람을 또 만났다.

Gme가 다가가더니 말을 건다. 그리고 나에게 그를 소개를 시켜주었다. 그의 이름은 You.


You는 일본에서 미술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길에서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며 그 돈으로 여행을 한다고. 그리고 우리랑 같은 숙소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산크리스토발에 있는 동안 우리는 자주 어울려 다녔다.

함께 시장에 구경 가서 다양한 과일과 채소 등을 사기도 하고,

그렇게 산 재료들을 가지고 저녁에 함께 스튜나 다양한 요리도 해 먹었다.

어디서 독한 술을 가져와서 서로에게 몰래 먹이기도 했고, 요리에도 때려 넣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도 만들었다.



누가 언제 찍었는지도 잘 모르는 사진이지만, 이 사진. 왠지 좋다.



이곳은 밤에 바에 가서 술 한잔하고 들어와도 괜찮을 정도로 치안이 괜찮은 곳이라는 호스텔 스태프의 말에(물론 소매치기는 있을 수 있지만.) 저녁에는 근처 라이브바에 가서 하우스와인 한잔에 재즈 무대 등을 즐겼다.

그럴 때마다 You는 그들의 라이브 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고, 무대가 끝나면 항상 그들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건넸다. 좋은 무대였다는 말과 함께.

괜히 You가 멋있어 보였고, 왠지 나도 미술을 해보고 싶다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이제 막 세계일주를 출발해 남은 여정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한국에 돌아가서의 미래를 걱정했었다.

어쩌면 이 순간까지도 나의 여행이 옳은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걸 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해야 하지?'

 '그때가 되면 내가 몇 살이지? 취업은 잘할 수 있을까?'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있을까?'

 '동기들은 벌써 취업하고 자리 잡은 애들도 많던데.'

 '쟨 벌써 결혼을 하네?'


여행을 즐기려는 마음 한편에 항상 자리 잡은 걱정과 고민들은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한다한들 지금 내 여행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떨칠 수 없는 걱정이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아마 내가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각자 자기네 나라에서의 자신의 삶이 있지만, 각자만의 이유와 꿈과 목표로 세상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 여행에서 얻는 것이 무엇이며, 이 여행을 위해 희생한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내가 희생한 것과 얻는 것을 저울질했을 때, 저울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을지.

그건 여행이 끝나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젠가 이 여행을 끝내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그 순간을.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것이리라.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한 번쯤을 혹은 가슴 한편에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산크리스토발에서 며칠을 함께하는 동안 옆에서 바라본 Gme는 조금 달랐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을의 건물처럼, 따사롭게 내리쬐는 오후 햇살처럼, 느지막하게 그러나 아주 조금 선선하게 불어오는 저 바람처럼. 아무런 속박도 제한도 저항도 없어 보였다.(어쩌면 그냥 그렇게 보였던 걸 수도 있지만)

나랑 흐르는 시간이 다르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Gme를 보다 문뜩, 참 '자유롭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25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만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살면서도 자유로운 사람을 봐왔다고 생각했지만, 진정으로 '자유롭다'라는 표현은 이런 사람을 보고 써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Gme가 부러웠다. 자유로운 Gme를 닮고 싶었다. 나도 자유롭고 싶었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매 순간 자유로울 순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적어도 이 여행에서 만큼은 자유롭고 싶었다.


외형이 비슷해지면 조금은 그의 태도와 그의 방식과 그의 자유로움을 닮을 수 있을까?

시도는 해볼 만하다 생각했다. Gme는 딱 하나,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레게머리.(레게머리한 사람 실제로 처음 봤다.)



그래서, 레게머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그렇게 어느 ATM 앞. 바보가 한명 서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