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o Nov 23. 2023

14. 아주 조금, 데이터가 날아간 안타까움이 줄었다.

멕시코 | 세계일주 여행자는 몇 개 국어를 할까?

세계일주를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의사소통이다.


 '여행지에선 주로 어떻게 의사소통 했어요?'

 '와 그럼 몇 개 국어 할 줄 아세요?'

 '영어 잘하겠네요?'


그 질문의 대답을 시원하게 알려드리겠다.


세계일주를 하기 전 나의 언어능력은

 - 한국어 0.9 (나는 표준말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나는 사투리가 심한가 보다. 그리고 'ㄹ'발음을 잘 못해 맨날 친구들한테 놀림받고 가끔 이상한 어휘를 사용해서 양심 상 0.1 뺐다.)

 - 일본어 0.6 (태어나 어릴 적 살다와서 의사소통은 되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약간 어눌함 + 일상생활이 겨우 가능한 단어 수준이라 0.4 뺐다.)

 - 영어 0.3 (망설이지 않고 뱉을 수 있는 문장이라곤 Hi.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가 전부였던 영어 실력(중학생 수준 정도일까? 어쩌면 그보다 더 낮을 수도 있겠다.)이지만, 이건 그래도 정규 교육과정으로 12년 넘게 배운 자존심이 있기에 조금 관대하게 0.3개 국어(관대하게 쳐줘서 0.3 ㅎ) 정도로 쳐줬다.)

도합 1.8개 국어 정도 했던 것 같다.


세계일주 중 나의 언어능력은

 - 한국어 0.8 (어째선지 조금 줄었다.)

 - 일본어 0.8 (일본인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지, 조금 늘었다. 그리고 일본어 사투리를 조금 쓸 수 있게 됐다.)

 - 영어 0.7 (비약적인 발전이다. 파리에서 같은 숙소였던 미국인 Ezra가 처음에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미국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오예.)

 - 스페인어 0.2 (간단한 대화와 식당 주문 등이 가능해졌다. Una cerveza Por favor~ 맥주 하나 주세요~)

 - 기타 0.1 (다양한 나라의 인사말과 욕(?)을 할 수 있게 됐다.)

도합 2.6개 국어(전성기 ㅎ)


세계일주를 끝내고 나의 언어능력은

 - 한국어 0.8 (한국에 왔더니 동생이 "오빠, 왜 한국어를 그렇게 해?"라고 했다.)

 - 일본어 0.7 (잘 안 쓰게 되니까. 아주 조금 줄었다.)

 - 영어 0.5 (영어를 쓸 기회가 없다 보니 많이 줄었다. Ezra가 나중에 한국에 놀러 와서 우리 집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이젠 내가 한국인처럼 영어를 쓴다고 했다. 살짝 충격.)

 - 스페인어 0.1 (꽤 많이 까먹었다. 그래도 이건 기억한다. 아니 절대 못 잊는다. Sin cilantro Por favor~ 고수 빼주세요~)

도합 2.1개 국어


역시 언어는 많이 쓰면 늘고, 안 쓰면 까먹는다.

이렇게 보니 나는 온전히 잘하는 언어가 없다.

(사용가능 언어 0개 국어설)


실제로 여행하면서 많은 여행자를 만났지만, 능통하게 언어를(특히 영어) 사용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아주 기본적인 의사소통 수준이면 충분했다.

(우리에겐 바디랭귀지가 있으니까ㅎ)




산크리스토발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중미의 블랙홀'이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한번 머무르면 쉽게 떠날 수 없고, 오래 머무르게 되는 곳이란 말이다.

나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산크리스토발에서 보내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유카탄 반도의 칸쿤이나 치첸이사, 세뇨테 등 가고 싶은 곳도 많이 있었다.

가능하다면 벨리즈의 그레이트 블루홀에서 스카이다이빙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어학원을 다니기로 예약해 놓은 시간이.


한국에서 어학원 등록을 할 때 일정 계산을 대충 하고 수업 시작날짜를 예약했더니,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생각보다 멕시코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곳이었다.(지금도 여행 중에 가장 좋았던 나라가 어디냐는 질문에 항상 멕시코를 포함한다.)

아쉽게도 나머지는 다음에 다시 멕시코에 와야 할 이유로 남겨두고 과테말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세계일주를 계획하던 당시, 중남미 국가에서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조금만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쓴다.)

누구나 해외여행을 한다면 그러하듯 나도 여행하는 국가의 아주 기본적인 언어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원활한 의사소통 까지는 힘들어도 적어도 인사하고, 감사함을 표현하고, 식당 가서 음식을 주문할 수 있을 정도의 스페인어 회화는 가능한 채로 현지를 여행하고 싶었다.

호기롭게 스페인어 회화책을 구매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생각에 조금 설렜다.

군에 있을 때 사서 출국 전날까지 틈틈이 봤으니 적어도 6개월 이상 본 듯하다.


 'Hola'

스페인어 회화를 공부한다면 가장 먼저 보게 될 단어다. 뜻은 Hi(안녕)


 'Gracias'

여행하면서 Hola 다음으로 많이 쓰는 단어일 것이다. 뜻은 Thanks(고마워)


앞서 이야기했듯, 한국에서 틈틈이 스페인어 회화책을 봤다.

그렇게 나는 6개월 동안 Hola와 Gracias 딱 두 개의 문장(이라고 해도 되나 이걸?)을 외웠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로 6개월 동안 딱 2개의 문장(이라고 해도 되나 정말로 이걸?) 밖에 못 외웠다.


다행히 멕시코시티나 산크리스토발에선 그나마 의사소통이 되는 일본인들을 만났기에, 함께 한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었기에, 의사소통에서 오는 불편함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Hola'와 'Gracias'가 내가 할 수 있는 스페인어의 전부였다. (그동안 뭐 했냐?)


이 당시까지만 해도 매일 일기를 썼다.

아쉽게도 이 때로부터 얼마 후 모든 데이터를 날려먹게 된다.(스포)

그래서 여행 초반 3개월의 기록이 없다. 다만, 페이스북에 아주 조금. 그 당시의 기록과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멕시코를 떠날 때, 그 당시 일기의 흔적을 찾았다.



이제는 없어진 그날의 일기에서 무언가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


분명 8년쯤 전에 쓴 문장일 텐데. 어째선지 지금의 문장과 크게 다름이 없단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그땐 뭐가 그리 두려웠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생각으로 저걸 페이스북에 올렸던 걸까?(라면서 지금도 여기에 올림 ㅎ)

어차피 일기니까 원초적이고 날 것 그대로의 문장일 순 있지만, 조금 부끄러운 수준이다.

어쩌면 그날 내가 잃어버린 건 여행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그 당시 내가 느끼지 못한 수치란 감정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옆에 외국인, 뒤에 외국인, 앞에 외국인이 아니라, 그냥 내가 외국인임 ㅎ)



아주 조금, 데이터가 날아간 안타까움이 줄었다.



어쨌거나. Adios Mexico.


매거진의 이전글 13. 그래서, 레게머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