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o Mar 19. 2024

31.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붙잡았다.

코스타리카 |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1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가족? 오랜 친구? 아니면 연인?


평생을 나로 살아온 나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행을 하다 보니 이 생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음을 안다.

대구의 팔공산을 오를 때, 정상에 가까워질 때 즈음 나타나는 계단이 무서워 남들이 성큼성큼 걸어 오를 때 나는 무서워서 네발로 기어갔다.

어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네발로 기어갔다.

비슷한 이유로 타의에 의해 놀이공원에 가 본 적은 있지만, 자의로 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그렇게 간 놀이공원에서도 범퍼카나 탬버린(디스코팡팡?)과 같이 높이와 거리가 먼 기구들만 타곤 했다.

안전제일주의.


그런 내가 어째선지 여행 중에는 액티비티와 계속 연이 있었다.

어쩌면 찾아다녔다가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안전제일주의라 생각했던 내 안에는 의외로 안전불감증과 스릴을 즐기는 나도 있었다.


아직도 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있는 듯하다.




처음 온 장소일터인 이곳 국경마을에 아는 얼굴이 있다.

바로 산후안델수르에서 Yuto를 대신해 사준 해먹을 팔던 꼬마 녀석이다.

그 꼬마 녀석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 반가운 얼굴로 뛰어온다. 물론 양손에는 해먹을 가득 들고.

그래도 한번 봤다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그런데.. 너 진짜 어떻게 여기 있냐?

산후안델수르와 가까운 동네이기는 하나 그래도 차로 한 시간은 이동해야 하는 거리이다.

나는 당연히 산후안델수르에 살면서 동네장사(?)를 하는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이 꼬마 녀석들은 생각보다 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녀석들인 듯하다.

어찌 됐건, 마침 나도 오메테페 섬에서 해먹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후 계속 해먹이 갖고 싶었던 터라, 근황토크는 가볍게 생략하고 바로 협상에 돌입했다.


 "야, 나도 해먹 하나 살래. 나한테도 줘. 4달러면 되지?"

그때 Yuto 해먹을 6달러로 샀던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좋아 가져가."

 "그래 그럼 5달.. 어? 4달러면 돼? 그래, 고마워."


이래서 사람들은 단골을 만드나 보다.(?)




소년과의 쿨거래 후 작별 인사를 했다.

아쉽지만 이젠 다시 만날 일이 없으리라. 난 코스타리카로 가니까.

너네가 아무리 활동영역이 넓다 해도 해외영업(?)까진 하진 않겠지.


국경을 통과한다는 것은, 머물던 나라에서 출국하고 새로운 나라에 입국한다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지만 그 긴장이 무색할 만큼 쉽게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별 탈 없이 여권에 도장이 찍혔다.

도장이 채워져 가는 여권을 보는 것이 재미가 쏠쏠하다.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의 국경마을에서 수도 산호세(San Jose)에 가는 길에 몬테베르데(Monteverde)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이 나의 첫 번째 여정이다.

그곳에 남미 최대 높이의 번지점프가 있기에.


지금 생각해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가 왜 번지점프를 하겠다고 결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미 최대 높이라는 타이틀을 정복해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어쩌면 다시는 내 인생에 없을 이 순간을 보다 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던 무의식의 욕구일까?

어찌 되었건 나는 호기롭게,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과 고민 없이 번지점프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이곳의 번지점프는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서두에서 이야기했 듯 높이이다.

이 글을 쓰면서 문뜩 한국의 번지점프 높이가 궁금하여 오랜만에 구글에 검색을 했다.

'번지점프 높이'

한국에는 보통 40~60m 높이란다.

반면에 내가 갔던 곳은 143m. 한국의 번지점프대 평균의 약 3배에 달하는 높이다.

(가격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50~60달러 정도의 금액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높이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뛰어내리는 장소이다.

한국의 번지점프대는 보통 호수 위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려 점프가 끝이 나면 그 줄을 아래로 내려 보트로 나온다.

반면 이곳의 번지점프는 산과 산 사이를 로프로 연결하여, 가로 세로 3m 정도의 바구니(?)를 타고 그 중앙의 지점에서 뛰어내린다.


물론이지만, 나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갔다.

도착해 보니 그렇더라. 그제야 내가 살짝 미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나는 바구니에 올라타 있었다.

바구니가 산과 산의 중앙으로 향하기 시작한 순간까지만 해도 방금까지 내가 밟고 있던 땅과 불과 30cm 정도밖에 떠있지 않았다.

그것이 어느 순간 훅 멀어지더니 중간지점(이라 쓰고 '곧 내가 뛰어내릴 곳'이라 읽는다.)에 도착할 때 즈음엔 저~아래 아주 얕게 졸졸 흐르는 냇물(?) 같은 것이 보이는 게 고작이다.


바구니가 작은 관계로 한 번에 5명의 사람이 탑승이 가능하다.

2명은 번지점프를 도와줄 스태프, 그리고 뛰어내릴 사람 셋.

사실 말이 바구니지 하수도 뚜껑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 옆이고 아래고 훤히 보이는 것이었기에 출발과 동시에 나의 고소공포증은 양껏 활성화된 상태였다.

나는 영국 남자와 이스라엘 남자와 함께였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애써 웃음 지으려는 나와 반대로 나머지 넷은 아주 여유만만하다.

이스라엘 남자는 살짝 쫄았는(?) 기색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괜찮아 보였다.

영국 남자는 곧 뛰어내릴 생각에 신이 났는지 춤까지 추는데, 그 때문에 어찌나 흔들리던지.. 마음 같아선 로우킥이라도 날려서 주저앉히고 싶었지만 한발 내딛는 데에도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했기에 아쉽게도 미수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먼저 뛰어내릴 거냐는 말에 예상대로 영국 남자가 먼저 지원했다.

머리엔 고프로가 달린 헬멧을 쓰고, 두 명의 스태프가 영국 남자의 발목에 줄을 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스태프는 외쳤다.


 "Five, Four, Three, Two, One, Bungee!"


슈욱


영국 남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멋지게 뛰어내렸다.

멋있었다. 나도 저렇게 뛰고 싶었다.


바닥의 틈으로 보니 영국 남자는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이 끝나자 점프는 끝이 났고, 그렇게 줄에 영국 남자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문뜩, 궁금증이 생겼다.


 '한국에선 번즈점프가 끝나면 위에서 줄을 늘려줘서 바닥으로 내려가거나 바닥에 대기하고 있던 보트에 타서 돌아가는데, 여기선 어떻게 돌아가지?'


그 의문은 곧바로 해결되었다.

바구니에 있던 두 명의 스태프 중 한 명이 아래로 또 다른 줄을 내려준다. (!)

영국 남자의 허리 정도 높이까지 줄을 내리더니 줄에 반동을 준다.

그 영국 남자는 거꾸로 매달린 채로 공중에서 그 줄을 낚아 채 허리에 건다. (?)

위에서 줄을 당겨 올리고, 그렇게 영국 남자는 딸려 올라왔다. 바구니의 높이까지. (??)

이제 끝인가 싶었는데, 영국 남자는 그대로 반동을 주더니 또 스스로 바구니에 올라탄다. (???!)


위 글의 '영국 남자'를 '나'로 바꿔 읽으면 그것이 곳 내가 할 일이 된다.

저렇게 나도 해야 했다.


 "After you."

여전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나는 이스라엘 남자에게 순서를 양보했다.


이스라엘 남자는 바구니 한쪽에 뚫려있는 곳(뛰어내리는 곳) 앞에 섰다.

양 옆의 스태프들이 발목에 줄을 매기 시작했다.

곧이어


 "Five, Four, Three, Two, One, Bungee!"


슈욱


내심 '아 잠만 잠만, 미안 못하겠어. 잠시만.'하고 잔뜩 쫄아서 바로 어내리지 못하길 바란 내 마음과 달리 이스라엘 남자도 영국 남자만큼 멋지게 뛰어내렸다.

그리고 멋지게 공중에서 줄을 캐치해 올라와 바구니에 탔다.

멋있었다. 나도 저렇게 뛰고 싶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이제 더 이상 양보할 사람도 없다.

바구니 한쪽이 뚫려있는 곳(뛰어내리는 곳) 앞에 섰다.

스태프 둘이 내 발목에 줄을 매기 위해 쪼그려 앉는다.

머리에 쓴 헬멧의 카메라는 나를 찍고 있다. 영국 남자와 이스라엘 남자는 이미 성공한 자의 여유를 가지고 도전하는 자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물러날 곳은 없다. 영국 남자 앞에서, 이스라엘 남자 앞에서 대한민국 남자의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다.

그래서 힘차게 퐈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멋지게 뛰어내렸다. 아니, 뛰어내리려고 했다.

나의 호기로운 기백이 무색하게,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붙잡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30.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