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흰 볶음밥이 늘어나던 날

by 유쾌한 주부저씨

나에게 볶음밥은
딱 두 가지 종류밖에 없다.

김치볶음밥과
흰 볶음밥(야채볶음밥).

나의 신랑분은
흰 볶음밥을 좋아한다.

(하아…
야채 잘게 써는 거 상상만 해도
벌써 손목이 아리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가 직장을 다닐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김치볶음밥만 해주었다.

김치볶음밥에
무슨 레시피가 필요하겠는가.

김치, 밥, 기름.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그날 한 끼는 뚝딱이다.

조금 더 호사를 부리고 싶을 땐

스팸이나 고기만 넣어주면
카햐—
맛의 풍미가 그냥 살아난다.


그런데 어느 날,
신랑이 말했다.

야채의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흰 볶음밥이 먹고 싶다고.

이제는 시간에 쫓길 일도 없으니
(백수의 여유)
야채 기본 네 가지를
잘잘한 깍둑썰기로 썰었다.

감자 두 개,
당근 하나,
애호박 하나,
양파 하나.

마침 대파도 있겠다
파기름을 내고
돼지고기를 과감히 넣었다.

그렇게 완성된
흰 볶음밥.


어찌나 맛있게들 먹는지
해준 내가 다 뿌듯했다.

양이 넉넉해서
남은 볶음밥은
소분해 두기로 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식으면 냉장고에 넣어야지,
생각만 하고는…

다음 날,
그 자리 그대로
식탁 위에 있는 볶음밥을 보고
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안 넣었네…
볶은 거니까 괜찮겠지…’

‘어?
뚜껑도 야무지게 덮어놨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여기에 갖다 붙이며
그제야 냉장고에 넣었다.

그날 점심 약속이 있어
나는 외출을 했고,
신랑에게는
어제 남은 볶음밥을 데워
큰애랑 같이 먹으라고 했다.

가뿐한 마음으로
수다를 떨다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왔다.

볶음밥은 아직 남아 있었다.

큰애는
“볶음밥 세 번은 싫다”며 패스,
신랑은 저녁약속 있다며 패스.

결국 나와 둘째가
남은 볶음밥을 먹기로 했다.

전자레인지에서
따뜻해진 볶음밥을
한 숟갈 떠넣는 순간—

어?

나 볶음밥에
낫또 안 넣었는데.

이 찐득하게
늘어나는 감촉은 뭐지?

갑자기 싸해지는 기분.

냄새를 맡아보니
시큼쿰쿰하다.

헉.
(맛이 갔는데!
아주 멀리 갔는데?!!)

“먹지 마!
먹지 마!
상했어!”

싱크대 앞으로 가
후다닥 버리고 있는데
큰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
아빠랑 나랑 먹었는데?”

“이걸 먹었어?
이상하지 않았어?
늘어나고, 냄새 나고…”

걱정스럽게 묻자
큰애는 말했다.

“어제 먹은 거랑
맛이 좀 다르긴 했는데…
아빠가 먹길래 나도 먹었어.”



허얼—
이 단순한 인간들을 어쩌면 좋나.

누가 봐도 상한 음식인데
말없이 그냥 먹었다고?

여기서 신랑에게 확인 전화를 하면
분명 이런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어제랑 맛이 다르더라!
왜 말을 안 했냐!”

이 시나리오는
처음도 아니었다.

그래서 조용히
큰애에게 말했다.

“이거…
아빠에겐 비밀이다.
너 속 괜찮지?”

큰애는
새로 끓여준 미역국을
맛있게 먹으며
짧게 대답했다.

“응.”

점심 먹고
한참이 지났으니
이쯤이면 소화도 다 됐겠지.

밤이 깊어
거하게 취해 들어온 신랑을 보니
저분도 멀쩡한 것 같아
내심 안심이 됐다.

혹시라도
구토나 설사를 한다면
그건 숙취다.

숙취가 분명하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나는 그렇게 우길 생각이다.

미안해… 여봉…

하아—
또 이렇게
원치 않는 비밀 하나가
늘어났다.

오늘의
쭉 늘어나는 흰 볶음밥은
내 마음속에
고이 묻어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