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라는 질문 앞에서

by 유쾌한 주부저씨

취미라는 단어는
학창 시절, 신학기가 시작될 즈음이면
늘 마주하던 단어였다.

A4용지에 이름과 한자를 적고
가족사항을 쓰고
좋아하는 과목과 이런저런 질문들 사이에
어김없이 등장하던 문장.

“취미는 무엇입니까?”


생각해보면 그 질문은
내 시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신학기마다 가져오는 종이에도
아이의 취미를 묻는 질문은 빠지지 않는다.

각설하고,
나의 취미는 학창 시절부터 늘 같았다.
책 읽기, 음악 감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옛말이다.
지금의 나는
TV보다 잠자기,
유튜브보다 잠자기,
멍하니 있다가 잠자기.

취미라고 부를 만한 것은 딱히 없다.


반면 신랑의 취미는 명확했다.
낚시, 세차, 유튜브 보기, 술 마시기,
소파에 눕기, 담배 피우기,
핸드폰 게임 돌리기.

특히 낚시와 세차에 있어서는
진심을 넘어선 집요함,
때로는 약간의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아빠를 보던 큰아이가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엄마는 아빠처럼 취미 없어?”

그 질문 앞에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나는 취미가 없구나.


맞벌이를 하며 살아온 내게
취미라는 단어는
어쩌면 사치에 가까웠다.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두었는지
신랑은 몇 년 전부터
주꾸미 낚시를 같이 가보자고 했다.

사실 그전까지 신랑은
민물 베스낚시만 하던 사람이었다.
바다낚시는 비싸다며
절대 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

그런데 친구 따라 한 번 나간 주꾸미 낚시 이후
운 좋은 날엔 백 마리 넘게 잡아오더니
이제는 주꾸미 낚시가
매년 빠지지 않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여자 낚시꾼이 많이 늘었다느니,
미끼값도 안 들고 어렵지 않다느니,
주꾸미는 1년생이라 부담 없이 잡아도 된다느니.


장점 설명은 점점 열을 띠었다.

낚시는 남자들만의 취미라 생각했던 나도
그 말에 슬며시 마음이 움직였다.
재작년, 이맘때였다.

새벽 항구는
내가 알던 세상과 전혀 달랐다.
수십 척의 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
배를 찾느라 분주한 낚시꾼들,
항구를 둘러싼 상점의 조명까지.

마치 밤의 유흥가처럼
밝고 수선스러웠다.

배가 항구를 떠나고
20분쯤 달려 포인트에 도착했다.

신랑은 내 낚싯대에 미끼를 달며
설명을 시작했지만
배는 이미 꿀렁꿀렁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배 속에서도 무언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앞사람들을 지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배멀미의 시작이었다.

그날 나는
토하고 눕고,
눕다 또 토했다.

주꾸미는커녕
낚싯대조차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채
배만 타고 돌아왔다.

그 와중에 신랑은
내 자리와 자기 자리를 오가며
주꾸미를 연신 끌어올렸다.


혼자 70마리 이상.

뿌듯한 신랑 얼굴 뒤로
멀미에 누렇게 뜬 내 얼굴과
쭈그러진 주꾸미들이 겹쳐 보였다.

못생김의 한 세트...

첫 주꾸미 낚시는
그렇게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작년.
이번엔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귀미테를 붙이고, 멀미약을 먹고,
유튜브로 예습까지 마쳤다.

주꾸미가 바다 위로 올라오는 날,
처음 보는 인간이 나일 테니
선크림도 꼼꼼히 발랐다.


놀라서 다시 바다로 떨어지지 않길 바라며.

하지만
주꾸미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느낌은 왔는데,
결과는 없었다.

마치
소고기 한 점만 맛보고
식사가 끝난 기분이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작년의 주꾸미 낚시는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올해.
기다리던 주꾸미 시즌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기어이
제대로 된 조과를 얻고 싶었다.


그렇게
3년 만에
주꾸미 낚시의 맛을 알게 되었다.

서툴지만
30마리 정도를 잡았다.
신랑은 여전히 70마리.

양가 부모님께 나눠 드리고
지지고, 볶고, 삶아
사흘 연속 주꾸미를 먹었더니
아이들이 말했다.

“이제 주꾸미 좀 그만 먹고 싶어.”

복에 겨운 소리였다.

그렇게
나에게도 취미가 하나 생겼다.


1년에 한두 번뿐이지만
그래도 좋다.

내년의 주꾸미 낚시를
조용히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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