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ing, the Season of Sorrow
아버지 49재를 지내고 군산에서 돌아오는 길...
지난 3월, 아버지가 여든셋의 연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월요일 퇴근길에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감기 기운이 있으셔서 엄마가 끓인 콩나물국을 맛있게 드셨다는 얘기를 하시더군요. “아직 날이 사나우니 옷 따뜻하게 잘 챙겨 입으셔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데...
바로 그다음 날 몸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중환자실에 일주일 계시다가 급격히 악화되어... 그렇게, 너무나 허망하게 떠나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손주들을 포함해 온 가족이 면회했었지만, 결국 아버지와의 대화는 그날 전화 통화가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처음 겪는 부모님의 장례식. 그것도 불과 일주일 만에 생긴 사태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고, 황당했고... 무엇보다 허무하고 허망했습니다.
입관 절차부터 대성통곡을 하는 엄마와 여동생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 앞에서 차마 울 수 없었습니다. 상주인 저는 이를 악물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슬픔을 참아내며 모든 절차를 치렀습니다.
발인 전날 밤...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계를 보고는, 늦게까지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도 보내고 가족들도 다 들어가라 했습니다. 그리고 소주 한 병을 들고 아버지 영정 앞에 홀로 앉았습니다.
지난 세월 아버지와의 추억이 무엇이 남아 있는지도 더듬어보고, 평생 농담 한마디 없으셨던 점잖고 조용하고 근엄하게 살아오신 삶도 되짚어 보았습니다. 문득, 아버지의 생이 참 외로우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작 그의 아들인 나는 깃털처럼 한없이 가볍고, 넓고 얕은 사람이라 세상사 다 우스워 보이는데... 아버지처럼 깊고 근엄한 생을 사는 사람의 인생은 무척이나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가족이 다 나간 불 꺼진 장례식장. 나는 아버지 영정 앞에서 소주를 마시며 이틀 동안 꾹꾹 누르며 참아왔던 슬픔을 토해 내고야 말았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격하게 울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잘 가시라는 인사 한번 못 드리고 보내드린 한이 남아서였겠지요.
군산 승화원에서 아버지를 화장하고 추모관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 그날은 왜 그리 돌아가신 분들도 많은지. 바람도 봄답지 않게 세차게 불고, 운구차들과 유족들로 추모관은 붐볐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거의 30년은 쓰시던 낡은 지갑이 나왔습니다. 그 속엔 엄마와의 연애 시절 사진이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본 엄마는 또 흐느끼며 우셨습니다. 키가 좀 더 큰 엄마를 배려해, 살짝 무릎을 구부린 아버지의 포즈가 눈에 금세 들어왔습니다. 다음 날 그 사진을 출력해서 작은 액자로 만들어 아버지 봉안함에 넣어드리고 올라왔습니다.
벌써 49일이 되어, 오늘 아버지를 뵙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오늘도 승화원과 추모관에는 영정 사진을 든 근엄하면서도 무표정한 상주와, 그 뒤를 따르는 슬픔으로 가득 찬 유족들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던 날보다 바람도 더욱 세게 불고, 봄비도 추적추적 내리네요.
휴일의 추모관에는 이미 오래전 슬픔을 웃으며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들과,
이제 어느 정도 정돈된 슬픔에 눈물 글썽이는 우리 남매들과,
오늘 새롭게 슬픔을 마주하여 울기 시작한 사람들까지...
그 모두의 머리 위로, 봄비는 아랑곳없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감성에세이 #에세이 #글쓰기 #문학 #아버지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