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 36.5Mhz HBS 57분 마음 교통정보 9

<안개 자욱한 저녁 퇴근길>

by Oscar Jung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집에 닿길 바라는 ‘마음 안개등 설치 전문점’ 협찬, 57분 마음 교통정보입니다.

오늘 퇴근길, 운전대 잡으신 분들은 평소보다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가셨을 겁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가습기 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자욱한 안개가 도로를 집어삼켰습니다. 가시거리가 채 50미터도 확보되지 않는 구간이 많아, 차량들이 모두 비상등을 켜고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네요.

창밖 풍경이 온통 회색빛으로 지워진 걸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우리의 퇴근길 도로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마음의 도로’와 참 많이 닮아있다고요.

열심히 달리고는 있는데,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이 길 끝에 내가 원하는 목적지가 있기는 한 건지 도무지 보이지가 않습니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1년 뒤 내 모습은 어떨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안개가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선명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불안감. 남들은 저 안개 속에서도 제 갈 길을 잘 찾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여기서 방향을 잃고 멈춰 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아마 지금 이 방송을 듣는 많은 분이, 뿌연 앞 유리를 노려보며 비슷한 한숨을 내쉬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안갯속 운전의 제1원칙이 뭔지 아시나요? 바로 ‘속도를 줄이는 것’과 ‘너무 멀리 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억지로 속도를 내는 건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입니다. 그럴 땐 불안해하지 말고, 그냥 속도를 늦추세요. 그리고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목적지 대신,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딱 10미터 앞의 차선, 혹은 앞차의 희미한 브레이크 등만 믿고 따라가는 겁니다.

우리 인생도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 때, 거창한 계획이나 꿈이 오히려 짐처럼 느껴질 때. 그럴 땐 그냥 오늘 하루, 내 눈앞에 주어진 일들만 간신히 해내며 버티는 것도 훌륭한 운전법입니다.


비상등을 켜고, 조심조심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시야가 트이는 구간이 반드시 나타날 테니까요. 안개는 영원히 머무는 법이 없거든요.

이 막막하고 습한 저녁, 여러분의 불안한 마음에 작은 안개등 하나 켜드리고 싶습니다. 몽환적이면서도 쓸쓸한 트럼펫 선율이 오늘 날씨와 참 잘 어울리네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Blue in Green’ 띄워드립니다.

오늘 밤은 부디 너무 멀리 걱정하지 마시고, 무사히 집에 도착하는 일에만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무사히 돌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큰 위안이 될 테니까요.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집에 닿길 바라는 ‘마음 안개등 설치 전문점’ 협찬, 57분 마음 교통정보였습니다.


인개가득한 퇴근길.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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