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고군분투 중인 스타트업 일잘러들을 위로하며 쓰는 첫 번째 이야기
※주의: 이 글은 오직 일잘러를 위로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일몰러로부터 슬랙 메시지가 도착한다.
슬랙 메시지에는 노션이나 피그마, 지라 등 협업 도구의 링크가 있고 내가 태그 되어 있다.
많은 스타트업의 일잘러들은 이런 피드백 요청 메시지를 받는다. 특히 직급, 직위, 직책이 높을수록 더 많은 메시지를 받는다. 그리고 매우 바쁜 시간을 쪼개서 메시지를 열어보면 한숨이 지구 끝까지 나온다.
전체 PPT, 엑셀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거나, 피그마 내용이 그대로... 정말 그대로 다 담겨 있다. 특별히 코멘트는 없다. 어디를 봐야 할지(집중), 무엇이 고민이고 그에 대해 담당자의 의견은 어떤지(생각), 어떻게 풀어보고 싶은지(목적),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일정),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의도)...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어마무시하게 싸질러져 날아온 똥을 당신은 불행히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스타트업의 일잘러니까
슬프지만 작업 결과물의 수준은 두 번째 문제이다.(하지만 보통 이런 피드백을 요청하는 일몰러라면 결과물의 수준도 낮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일잘러들은 이걸 또 못 견딘다. 그래서 답답하더라도 그냥 그 업무를 대신 처리하듯이 일을 한다.) 이렇게 똥을 맞게 되면 이제부터 그 업무는 나의 업무가 된다. 나 대신에 똥을 치워 줄 일잘러도 부족하고, 내가 이 똥을 치우지 않으면 일잘러들의 목표는 똥이 되기 때문이다.
일잘러들은 피드백을 요청하는 방법에 대해서 지적하고 교육하지만 일몰러들은 사실 피드백을 요청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어렵지 않다. 그저 역지사지(피드백을 요청받는 사람의 입장에서)해보면 될 일이고, 육하원칙에 맞게 서술하고 대화를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계속 일몰러가 똥을 던지냐고? 답은 간단하다. 일몰러 본인도 자신이 만든 결과물이 똥인지 알기 때문이다.(똥인지도 모른다면 무지한 거고, 똥인지 안다면 무능한 거다. 그리고 똥인지 알면서도 던졌다면 염치가 없는 것이다.)
똥을 거름으로 만들려면 어느 지점에 중점을 둘지, 어디에 힘과 공을 더 들일지, 무엇이 고민인지 글로 풀어내야 하고 치열하게 사고해야 하며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사실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했다면 업무 완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피드백 요청도 줄어든다. 오히려 자신 있게 업무를 추진하고 문제를 돌파한다. 하지만 일몰러는 그 사고의 여정이 싫은 것이다. 당신에게 "내 똥을 부탁드립니다" 한 마디로 싸지르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도 문제없이 월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직 덜 당한 일잘러들은 일몰러들이 "몰라서, 아직 연차가 적어서, 가르치고 교육하면 될 것이라 착각한다" 개똥 같은 착각이다. 이런 피드백 요청 방법은 누가 가르쳐줘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더 나은 결과물, 더 높은 목표와 성과를 추구하면서 일하는 일잘러라면 그냥 자연히 알게 된다. 구조화하고 개념화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고 실행하게 되는 방식에 불과하다. 생각해 보자 일잘러도 어디 책에서 보고 배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1.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피드백을 받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면 걸러야 한다.
보통 업무에서 바라는 점이나 이직 사유를 물었을 때 '사수가 없었다(그래서 피드백을 받지 못해 일을 잘 못했다)', '같이 고민을 나누면서 일하고 싶다(그러지 못해서 혼자 하니까 일을 잘 못했다)' 등의 표현에 대한 이유를 잘 들어 봐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스스로 일하지 못한다'를 증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2. 일몰러에게 계속 기회를 주면 안 된다.(한 번으로 충분하다.)
일몰러는 자신이 일몰러인 것을 모른다. 따라서 염치가 없고, 당연히 상대방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는데 '친절'하게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는 것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요청 방식에 대해 지적을 하더라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친절'하게 요청하지 않아서 문제라 생각한다. 즉 일몰러는 모든 것이 감정의 문제라 받아들이고 문제의 본질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과감하게 끊어내야 한다. 감정은 전파되고 조직은 부정적으로 변한다. 피드백은 피드백대로 다 해주고 뒤에서 욕먹는 일잘러가 되지 않아야 한다.
3. 고양이 손에 아쉬워하면 안 된다.
일몰러가 던진 똥에 대한 피드백 시간은 일잘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거의 몇 배로...) 든다. 사실 모든 내용을 피드백해야 하고,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며, 대신해 주는 수준이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 일을 두 번, 세 번하게 되고 결과물은 지연되고 성과는 놓칠 수 있다. 그냥 내가 하자. 우리 어차피 일잘러 아닌가
4. 절대 대신해 주면 안 된다.
아마 일잘러들은 일몰러들이 다시 해 올 결과물들도 뻔히 예상이 될 것이다. 몇 마디 해보면 일몰러가 어느 수준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과 표정에 다 드러난다. 그래서 보통 일잘러들은 그 시간도 아까워서 대신해 주게 된다.(이 과정에서 일잘러는 계속 일잘러의 길을 가게 되고, 일몰러는 계속 일몰러가 된다.) 하지만 일잘러들은 조직의 핵심 인재이고 계속 위로 올라갈 사람들이다. 그래서 계속 일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점점 조직에서 맡게 되는 역할과 책임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몰러들이 어떻게 해서든 결과물을 가지고 오고, 해내게 해야 한다.(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몰러의 인생에서 유일한 참스승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건강한 이탈이 일어나야 한다. 조직의 성장 속도와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몰러가 이탈하고 그 빈자리를 일잘러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 더 크고, 빠르게 갈 수 있다.
5. 교육은 하면 안 된다.
세상에 일몰러들을 위한 교육은 너무나 많다. 일잘러는 일몰러를 교육하는 사람이 아니다. 같은 동료이고, 일을 함께 수행하는 사람이다. 피드백을 요청하는 방법, 피드백을 반영하는 방법과 같은 내용은 선배가 후배에게 한 번 정도 꾸짖어야 할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시 불이행이 반복된다면 경고해야 할 사항이지 교육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 일잘러들도 각 팀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도 피드백 요청이라는 똥을 맞고 있는 일잘러를 위한 위로의 글이지 피드백을 하면 안 된다가 아니다. 피드백은 중요하다. 그러나 피드백을 요청받는 사람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좋은 피드백은 요청자의 좋은 요청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업무 내용이 아니라 소통의 과정에 한해서만 다루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일몰러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일잘러들에게 똥을 그만 던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일잘러가 있다면 우리 스타트업과 함께 해볼 것을 추천드립니다. 우리 조직은 일잘러들이 똥을 받아내고 있다는 것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잘러 1명이 나라를 구하듯, 스타트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소수 정예의 일잘러들만 모이고 있으니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메모나 댓글 꼭 남겨주세요. 일잘러는 조직에 기여하고 조직은 일잘러에게 대우하여 서로 함께 하는 동안 같이 윈윈 할 수 있는 동료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