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 Jul 06. 2024

눈을 사납게 뜨네

인상학개론

참 다양한 사람들이 동 시대를 살아간다.

나이도 외모도 성격도 무엇보다 인격도 참 다채롭다.

언제 어디서든 남들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사람들의 인상에서 인격을 보려 노력한다.

물론 경솔한 판단이 된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얼추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격이 인상에 드러난다.

나이가 들수록 특히 그렇다.

자주 짓는 표정에서 생긴 주름 하나,

자주 쓰는 단어에서 굳어지는 입매가 인상을 만든다.

착한 표정, 착한 말을 자주 쓰며 늙은 사람은

착한 인상을 지닌다.

그런 사람들만 만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하지만 가끔 인상이 사나운 사람들을 만난다.

어딜가나 있다.

그냥 스치며 눈 한번 마주쳤을 뿐인데 왠지 별로인 인상.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뇌리에 더러운 기분으로 박혀버리는 인상.

마트에서 먼저 계산하려고 신경을 곤두선 사람이나

버스에서 새치기할 틈을 잡으려고 미간을 잔뜩 구긴 사람.

운전 중 차선을 바꾸려는데 끼워주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성공해 내 차 옆을 지나가며 승리의 미소를 날리는 사람.

건물 미화원 보란 듯이 바로 옆에서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탁 버리고 가는 사람.

공공장소에서 이쑤시개로 요란스럽게 쩝쩝 이를 쑤셔대는 사람 등.

인상이 좋은 경우를 못 봤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겨도 인격이 그러면 얼굴 어디 한 구석이 분명 찌그러져있다. 혹은 그냥 봐서 찌그러진 곳이 없어보여도 입을 열고 어떤 표정을 지으면 분명 조화롭지 못하게 일그러진 부분이 나온다.


눈을 왜 그렇게 뜨는지.



아주 어릴 땐 인상 사나운 사람들을 보면 무서웠다.

조금 덜 어릴 땐 그런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더러웠다.

화가 나서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그들과 싸웠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니,

그들이 불쌍해보인다. 확실히 늙었나보다.

지지 않으려 눈에 힘을 준 사람들을 보면 더 이상 무섭지도, 싸우고 싶지도 않고 얼마나 전투적으러 살아왔으면 저럴까 싶어 연민이 드는 거다.

당한 기억이 많으니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강한 인상을 만들어 윽박지를 수밖에.



불쌍하게 보니 부딪힐 일이 훨씬 줄었다.

달려들어 싸울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 나의 얼굴도 편안해진다.

악착같이 먼저 가려는 사람은 먼저 보내주고 생사라도 걸린 게 아니면 한발짝 물러서 양보하는 여유가 생겼다. 사나운 편이었던 나의 인상도 점점 나아져 이젠 인상 좋다는 소리나 웃는 게 예쁘다는 소리도 꽤 듣는다.

선순환이 되어 또 나는 더 상냥한 사람이 되고,

상냥은 더 상냥이 내게 돌아온다.


그러니 노력해야지.

끝없이 노력해야지.


사나워보이지 않게,

아니 불쌍해보이지 않게.


어느덧


잔뜩 날 세우고 악 지르며 화내는 모습이

 불쌍해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이전 12화 나의 손절이야기[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