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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Jul 31. 2024

나의 손절이야기[4]

배려 혹은 기만

 내겐 사촌오빠들이 많은데 사촌언니는 딱 한 명 있다. 언니랑은 어릴 때부터 친했다.

언니는 오빠가 있고, 나는 남동생이 있어 내게 '언니'라는 존재는 언니가 처음이었고,

언니도 '여동생' 이란 존재가 내가 처음이었다.


흔한 자매들이 하는 모든 놀이들을 나는 언니랑 했다.

언니는 나의 긴 머리를 이리저리 예쁘게 묶어줬고 아껴 입던 예쁜 옷을 내게 물려주기도 했다.

인형놀이도 언니랑 처음으로 했고 내게 화장하는 방법을 처음 알려준 것도 언니였다.

나는 언니가 좋았다. 참 좋았다.

자라면서 언니의 키가 나보다 작아졌지만 그래도 언니는 늘 나에게 든든한 언니였다.

우린 질풍노도의 시기 머릿속에 떠다니는 망상과 고민들을 모두 공유했다.


 처음 피아노를 접한 것도 언니를 통해서였다. 언니는 피아노를 잘 쳤다.

나도 언니처럼 피아노를 배우겠다며 피아노 학원에 다녔지만 언니처럼 근사하게 연주하지는 못했다.

특히 <엘리제를 위하여>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소녀의 기도>는 언니보다 잘 연주하는 사람을 여태 보지 못했다. 또 언니는 악보만 있으면 그 시절 가요들도 무엇이든 연주가 가능했다.

언니가 치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언니집에 놀러갈 때면 피아노를 치는 언니 옆에 붙어 앉아 현란하게 움직이는 언니의 가늘고 예쁜 손가락을 구경하다가 전축으로 신승훈, 변진섭, 이승환 같은 그 시절 최고의 발라드 가수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또 그러다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하고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밤이 늦도록 잠들지 못하며

세상 모든 삶과 사랑에 대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라면을 끓여먹거나

피자를 시켜먹으며 또 이야기를 나누고 비디오를 빌려와서 영화를 보며 또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도 대학생이 된 언니랑 자주 만났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잘하는 편이었는데 그걸 언니가 아는 게 싫었다. 왜 싫었을까? 모르겠다.

언니는 원하던 대학 진학에 실패했었는데 그래서였을까?

내가 공부를 꽤 한다는 걸 언니에게 감추고 싶었다.

내가 언니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걸 언니가 알면 나랑 놀아주지 않을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때부터였다.언니에 대한 나의 배려, 아니 기만이 시작된 게.

언니가 너는 커서 뭐가 하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늘 별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언니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작가, 약사, 피아니스트, 미술선생님 등 늘 되고 싶은 게 있었고

그 꿈들에 대해 숨김없이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반면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꽤 괜찮은 대학에 진학했다.

언니는 너 이렇게 공부를 잘했냐며 놀랐다. 그 때도 나는 부끄러웠다. 나 원래 공부 못하는데 수능에 아는 게 많이 나와서 그런가봐, 하며 화끈거리는 얼굴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언니의 모든 연애사를 내게 털어놓았다.

전에 만났던 오빠, 썸타는 대학동기, 숙모가 만나보라고 해서 만난 그 남자, 동아리에서 친해진 연하남 등.

작고 아담하고 귀여운 외모의 언니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꽤 많았고

그들과의 알콩달콩한 연애 이야기를 내게 가감없이 해주었다.

남자의 연락은 어떻게 받아야 하고 남자와 대화할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팁들과 함께 말이다.

연애 경험이 없고 남자들에게 인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남자를 만날 기회도 많지 않았던 내게 언니는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그 시절엔 또 그런 이야기로 언니집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언니처럼 모든 걸 털어놓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결혼을 했다.

언니는 너 내가 남자친구 있냐고 물었을 때 없다하지 않았냐며 어색하게 웃었다.

남편과 연애하자 하고 연애를 한 게 아니고, 서로 너 내 남자친구야 여자친구야 하고 연애를 시작한 게 아닌, 어색한 사이로 한참 알고 지내다가 결혼을 하게 된 거라서 말할 수 없었어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구차한 변명들을 나는 언니에게 결국 꺼내놓지 못했다.


언니는 나의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어느새 결혼하고도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중간에 한번 언니에게 연락을 한 적이 있지만 의례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 그래, 언제 한번 보자.


 너무 담백한, 나에게 더 이상 아무 마음도 남지 않은 한 마디가 어찌나 섭섭하던지.

대학에 진학했을 때도 결혼소식을 알렸을 때도 언니는 내게 그 몇 배는 되는 섭섭함을 느꼈겠지.

솔직해야 했다.

나도 나의 성적을 말하고 목표했던 대학도 전공도 밝혀 언니와 상의하고 연애 이야기도 하고, 결혼소식도 언니에게만큼은 따로 만나 밤을 지새며 알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배려를 한답시고 기만을 한 거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라이브 영상을 보고 또 언니 생각이 났다.

언니랑 같이 밤새며 보았던 영화, 언니랑 같이 처음 먹었던 롯데리아 햄버거, 언니랑 듣던 음악들을 접할 때면 아직도 어김없이 언니 생각이 나고 많이 보고 싶다.

엄마를 통해 언니 소식을 듣지만 이제 직접 연락하지는 못한다. 일단 미안한 마음이 크고,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오늘은 날이 좋았다.

날이 좋거나 날이 좋지 않으면 종종 언니 생각이 난다.

언니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보다 키가 클 때는 이승연처럼 예뻤고, 나보다 키가 작아졌을 때는 한지민처럼 귀여웠던 나의 언니.


여전히 예쁜 방에서 예쁜 화장대 앞에 앉아,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는 책에 푹 빠져 있을 언니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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