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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천경마 Jan 31. 2022

오토바이로 부처님께 가는길

2019.06.26

오토바이를 고치는데 구르카 용병학원 학원생들이 어디론가 달려 가고있었다 문득 그들을 보면서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룸비니가 막 가고싶은것은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이 아니라면 개업뒤 오게될 손님때문에 업장에 반쯤 강제적으로 묶이게 될 것 같았다 아마도 이것은 앞으로는 자연스럽게될 자영업자의 숙명일것이다 개업을 준비하는 시점에 오신다는 대망의 장기 투숙 손님에게 3일간 양해를 구하고 룸비니에 다녀오기로 했다 네팔 포카라에서 오토바이로 '지금' 룸비니에 다녀올수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다행이고 어떻게보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갈때 이용한 루트, 구글맵에서는 여섯시간 반정도 걸린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쉬는시간이나 밥먹는시간을 고려한다면 7시간이상 걸렸다 이 길은 많은 현지인들로부터 포카라에서 룸비니까지가는 지름길이라고 추천받은 길인데 길상태는 많이 안좋다 특히 포카라 시내 끝무렵 데비스폴 이후 시작되는 4시간 정도의 산악구간은 앞 코너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기때문에 현지 바이크 하나를 앞세워 달리지 않으면 매사에 조심스러울수밖에 없다 산에서 사고가 난다면 수습할 방법이 당최 떠오르지 않는곳이 네팔이다



홍텔의 애마 홍바이크는 출발전 아름다운 풀 점검을 통해 여행중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초반 산악길에서 길이 너무 단조롭고 안예뻐서 그런지 시간이 엄청 안갔다. 길이라는것이 그렇다 걷기 좋은길. 오토바이나 자전거에게 좋은길. 자동차에게 좋은길 모두가 다 다르다. 걷기에는 테헤란로보다는 연리단길이 좋듯. 모든 편안함은 속도와 비례하게된다 코너 돌아 뭐가 나올지 모르는 히말라야 고갯마루에서 오토바이는 당최 속도를 낼수가 없다. 걸을때는 다음코너가 호기심이고 궁금증이 되지만 오토바이에서 다음코너는 스트레스가 되었다 



열두시쯤 산악구간을 마치고 들른 식당. 버섯스프 함께 나온 버섯튀김도 그냥 저냥 먹을만했다 네팔 북부의 산악지대를 넘어 남부의 평야로 접어들었다는것을 느꼈다 일단 가죽잠바 안에서 땀이 차기 시작했고 오토바이에 반사된 태양이 한번더 뜨거워졌다 오토바이는 한없이 평화로웠고 길을 둘러싼 나무들의 품종이 바뀐것을 느꼈다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나서면 굉장히 시끄러울것같은데 무척이나 고요하다 부처님의 품으로 가는길 식당에서는 더이상 고기를 팔지않았다 




룸비니 도착전까지 사진이 없다 여행을 기록으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은 늘 막연하게 하지만 새벽부터 이어진 강행군+부뚜왈 이후 룸비니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이십키로미터 이상의 비포장도로에서 낙오해버린듯....무튼 룸비니는 거대한 사찰지구로 구성되어있고 부처님 태어나신곳은 별도의 입장료를 받는다 네팔 사람인척 해서 50루피만 낼려고했는데 걸려서 스리랑카사람인척 했다 피부가 밝은 스리랑카 사람은 처음본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내 스리랑카어는 이들에게 혼돈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국인 중국인은 입장료 500루피 스리랑카 사람은 200루피 나는 원래 네팔 거주비자니까 50루피가 맞다 


룸비니 국제 사원지구에는 각국의 절들이 모여있는데 각국 전통양식에 따라 또 소승 대승의 구분에따라 사원의 건축양식이 다 다르다 그러나 가장큰 문제는 룸비니라는 자체가 1960년대 이후 조성된 곳으로 전통양식은 따르되 대부분의 건물이 콘크리트 건물이라는것이다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이 세운 비석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는 성스러운 곳이니 지역주민에게 세금을 깎아줄것" 그 오래전에 세금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배터리 케이스 사용이후 사진에 자꾸 손가락이 나오는게 신경쓰이고 현대시대에 건축된 곳이지만 자세히 살펴본다면 벽돌을 주된 건축양식으로 사용하던 고대 불교 국가들의 흔적을 느낄수있다 태국의 아유타야나 스리랑카의 폴롯나루와를 생각해본다면 전성기의 그곳이 아마 이런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 그때의 세계를 양분했던 불교문화의 정점이 아마 이랬으리라 




운하에서 잠시 세우고 한장 남겼다 쾌적한 룸비니에서 오토바이를 타니까 체력이 조금 회복된느낌 사원지구는 넓고 또 룸비니는 매우 덥기때문에 이동수단이 없다면 매우 불편하다 보통 뚝뚝이라고 불리우는 삼륜차를 타고 가이드겸 쓰는데 가격은 잘 모르겠다 큰절에 가면 자전거를 많이 비치하고있었는데 가격은 잘 모르겠다


대성석가사에 도착한 시간은 한낮이었는데 절에계신 관리자분께서 오침시간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잠시후 성철 큰스님의 마지막 상좌였다고 포카라에서 부터 들었던 큰스님을 만났다 딱히 큰스님을 드릴려고 빵을 챙겨간것은 아니었는데 여행중에 먹으려고 준비했던  포카라의 명물 열두광주리 선교사들이 만든 크림빵이 있어 크림빵을 드렸다 룸비니는 부처님의 고향. 주변에는 단것이나 고기등 일체의 세속적인것들이 없다 스님께서는 빵을 맛있게 드셨는데 입술에 묻은 크림을 핥는 스님의 혀에서 나는 속세를 보았다 


종을 울리면 공양시간 시작이다 스님이 먼저 드시고 그다음 투숙객들이 밥을 나눈다 숙박료 500루피에 3식 제공 여행자에게 이만한 조건이 없다 그리고 또 다른 옵션조차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지식을 못먹는 내가 룸비니에서 절밥을 현지식으로 먹었다 절에서 남기면 안된다고 배웠으므로 철저하게 끝까지 먹은뒤 설거지도 본인몫이다 절밥도 현지식도 한번에 고비를 넘게된것은 아까 낮에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해결책이 없다는걸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냥 맛있다 아니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한다 그렇다 모든것은 결국 마음먹기 나름 아니었던가 




대성석가사에 오면 번거로울수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담배. 대성석가사에서 담배를 피우기위해 8번게이트 밖으로 나와서 피우고 들어갔다 부처님앞에서 흡연예의를 차리기 쉽지않다 


스리랑카 절에 들러 스리랑카 스님에게 개업신고를 마친다 스리랑카 스님은 싱할라어를 할줄아는 한국사람에게 놀라고 스리랑카사람은 룸비니만 오지만 혹시 포카라에 가게되거든 손님을 꼭 보내준다고 하셨다 스리랑카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감사했다 스리랑카 부처님을 룸비니에서 뵙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스리랑카 사람이 많을줄알았는데 현지 견학온 네팔 학생 서넛밖에 없다 스리랑카는 최근 테러사건 발생국가로 경찰 한명이 스님을 보호 하고있었다 




부처님 태어나신 바로옆 보리수나무. 석가사 스님께서 명상하시는 스님들께 보시도 좀 하고 명상도 따라해보라고 권유해주셨는데 스님들 대부분이 명상보다는 신문을 보고계셨고 준비해간 잔돈보다 스님이 많이계셔서 보시는 못했다 소승 대승을 떠나 내가 생각하는 용맹정진이 조금 달랐다 부처님이 다녀가신지 몇천년이 흘렀다 과거와 지금이 같을수는 없다 




한번도 예불을 해본적은 없지만 예불은 크게 어렵지않다 살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반야심경을 외웠고 책받침에 어디서 뭘 외우고 뭘해야하는지 자세히 적혀있었다 종교를 떠나 먹여주고 재워주시는 부처님에 대한 예의로 예불을 했다 룸비니는 많이 덥기때문에 절을 하는동안 땀이 한바가지가 흘렀는데 한국 보살한분 서양 보살한분 나까지 세명이서 예불을 했다 눈을 마주칠일도 소통을 할 일도 없다 스님의 목어소리 목탁소리에 그냥 흘러내리는 땀처럼 시간도 흐를뿐이다 


룸비니는 엄청 덥다 한밤중에도 30도를 육박했다 전기가 끊어져서 물을 끼얹고 다시 자리에 몇번을 앉았다 모기장은 있는데 공허한 절간에서 밤에 난생처음 경전을 읽었다 새벽예불은 안드려도 될것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너무 더워서 그냥 예불을 드렸다 잠을 못자고 뒤척였다 난생처음 불경을 깊게 읽에된 감사함. 스님과의 대화가 선문답은 아니었으나 나는 평안을 찾았다 이기적으로 평안을 찾은 나에게 죄송함 그리고 감사함. 본생경이 있다면 본생경을 읽고싶었는데 스님께서 추천해주셨다 읽기쉽고 재미있을것이라고 했다


욕심의 끝은 결국 칼끝과 같음이라 







돌아오는 루트는 부뜨왈에서 새로생긴 도로를 통해 우회하여 프리티비 고속도로로 합류하는 루트. 물론 산에서는 굉장한 짜증이 몰려왔지만 새로생긴도로는 한국식 갓길에 개울따라 지어진 아름다운길이다. 올때 갈때 거리는 100키로 정도 차이나고 구글맵에서 설명하는 소요 시간은 한시간 정도 차이가 나지만 실제 시간은 일곱시간으로 두 코스가 같다 다만 먼저온길은 구불구불 산악길이 힘들었다면 복귀하는길은 오토바이 최고속력을 시험할수있는 기회가 오는도중에 여럿있는 길이라는점이다 강가가 무척이나 시원하다 




치뜨완을 오른쪽으로 달리다가 잠시 세우고 그냥 한번 찍었다 바닥에 유리조각이 선명하다 누군가 얼마전에 큰 사고를 여기서 당했다 그들의 신을 위해서 기도했다 돌아오는길 열시쯤 길에서 만난 가게에서 초우면을 시켰는데 채식밖에 안판다고했고 고추만 들어간 초우면이 도저히 아닌것같아서 두입먹고 수저를 내려놨는데 사장님도 울림이 있으셨는지 환타 값만 받았다


포카라로 돌아오는길에 이른아침 카트만두에서 출발한 투어리스트 버스들도 만났었고 돌아와서 씻고 잤다

양보해주지 않거나 양보해줄수 없었던 버스의 매연을 얼굴로 직격탄을 맞았다 숯검댕을 칠한것마냥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포카라는 너무 시원하다 

나는 이렇게 부처님에게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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