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보루

by 레몬향품은

떠남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듯하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다. 조용한 신호처럼, 아주 미세한 균열로...

문득, 어색해진 침묵 속으로, 나는 그날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햇볕은 유난히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낯설게 느껴지던 오후였다.


아버지가 혈액 투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객혈을 했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OO아! 피가 나온다. 왜 이렇노?”

“잠깐만요. 병원에 전화해 볼게요.”

“선생님! 아버지가 기침하다가 피가 나왔어요. 왜 그런 거예요?”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아버님께서 쇠약하셔서 견디기가 많이 힘드실 겁니다.”

“아부지! 가끔 그럴 수도 있다는데요. 크게 걱정 안에도 될 것 같아요.”

“배고프다. 식당에서 밥 먹고 가자.”

“그래요. 뭐 먹을까요? 아부지 좋아하는 자장면 어때요?”

“그래, 먹자.”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갑작스러운 담당의에 말에 당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표정이 묘했다. 나는 애써 담담했다. 아버지도 나도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화제를 다른 것으로 바꿔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날 이후,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일 식사 후엔 넓은 베란다에 놓인 의자에 앉아 아껴 키우던 허브잎을 만지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건강이 악화하면서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선물로 들어온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내일 당장이라도 떠날 사람인 것처럼 끊임없이 담배를 이어 태우고 있었다.

“아부지! 왜 다시 담배 태워요? 그만 태워요. 그러다 큰일 난다 아부지!”

“괜찮다. 그냥 피고 싶다 내버려 둬라.”

마음이 너무 아팠다. 주위에 병마와 싸우다 떠난 사람들의 보호자 말에 의하면, 거의 다 떠날 사람들은 자신이 떠날 날을 알고 있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아버지의 모든 행동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부모님의 결혼 생활은 내내 순탄치 않았다. 너무 대조적이었던 성향에 서로를 괴롭히면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의 말이 옳음에도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어머니에게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그랬던 아버지가 사과를 했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내가 사랑이 부족해서 당신에게 잘못을 많이 했다고.


그랬다. 아버진 엄마를 늘 외롭게 했고, 아프게 했고, 슬프게 했다. 그럼에도 딸에겐 헌신적이고, 사랑이 많은 분이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늘 불만이었다. 그 사랑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랑한 시간보다 미워한 세월이 훨씬 많았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사과한 후로.


그날도 여전히 아버지는 담배를 계속 이어서 태웠다. 3~4일 만에 담배 한 보루를 다 태웠다. 그리고 거실엔 당신의 흔적만 남기고 우리와의 이별을 고했다. 누워있던 이부자리 흔적만 그대로.

낙엽이 툭툭 떨어지는 이맘때쯤이면 늘 생각이 난다. 누운 자리 그대로 몸만 나와서 둥글게 동굴이 만들어져 있던 이부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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