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다 히카의 소설을 읽고
요즘에는 삼시 세끼 외에도 수시로 간식을 먹기도 하고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배고플 새가 없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에는 원래 편식이 심한데다가 몸에 좋다는 것은 대부분 싫어하고 특히 과자류를 좋아했는데 나이를 먹고나니 이제라도 건강 생각해서 야채 과일 등 몸에 좋은 것도 조금씩 찾아 먹고 끼니는 제대로 챙기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주중 점심에는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식단으로 차려진 학교 급식을 먹는다.
직장에서 힘든 업무를 하다가도 즐거운 급식 시간을 생각하면 마음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되어 더욱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솜씨 있는 분들은 누구나 좋아하고 함께 머무르고픈 매력을 지닌 것 같다. 다른 직장으로 전근을 가게 될 경우 급식이 좋았던 곳은 떠나기가 아쉬울 만큼 내게 큰 의미였다.
학교나 기숙사에서도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급식을 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너무나 고맙게 여겨졌다. 겨울이면 하얀 추위와 까만 어둠을 뚫고 꼭두새벽에 출근하는 것조차도 힘드실텐데 매일 세끼를 만들어주시고 가만있어도 땀이 나는 무더운 여름에도 위생 상태와 식중독 등 여러모로 신경써 가며 뜨거움속에서 책임을 다하시니 정말 감사하다.
아마 내가 고등학교 시절 자취하면서 도시락을 챙겨가지 못해 하루 종일 굶은 날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 배고프고 서러웠던 기억 때문에 더 좋은 이미지로 남는가 싶기도 하다.
“우선 이것부터 먹고” 하라다 히카의 소설을 읽었다.
제목은 딱히 베스트 셀러일 것 같지 않았으나 오래전부터 맛있는 음식 해주는 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다가 일본에서 독자들의 뜨거운 호평이 쏟아졌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
내용은, 대학 동창들 5명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20만엔씩 각출해서 창업을 하고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가사도우미 가케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창업 아이디어를 낸 가키에다와 진정한 리더인 다나카, 유일한 홍일점 고유키, IT 전문가인 모모타, 영업 담당 이타미, 그리고 필리핀 혼혈 아르바이트생 마이카 등 각자가 지닌 사연들과 가키에다의 실종으로 인한 사건의 전개로 이야기는 서술된다.
무겁기만 했던 사무실 분위기도 바꾸고 청소며 집안 일 등 일에 파묻혀 지내는 친구들을 위해 어느 것 하나 신경쓰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자 했던 다나카의 제안으로 가사도우미를 신청하게 되었다.
가케이는 조금은 무뚝뚝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챙겨주며 상대방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응원해주고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으로 따스하게 위로해 주었다. 서로의 속사정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도움이 되어 준 가사도우미에게 친구들도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하나 둘 털어놓게 되면서 자신이 원했던 미래를 선택하게 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P166 “도미는 역시 고마운 생선이야.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게 없어.(중략)
이타미는 도미야. 아마 어딜 가도 성공할 테고, 어느 회사를 가도 잘 할거야.(중략)
이타미는 빛이야. 이 회사의 빛. 지금 그 빛이 사라지면 이 회사는 위험해.”
P343 쌀과 육수는 왜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까. 마음과 몸에서 서서히 온기가 돌았다.
그 날 이후로 싸늘하게 식어 있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다나카는 생각했다.
P368 “너 같은 사람들은 남들을 속이고, 지배하고, 상처 입히지.
하지만 마지막에 웃지는 못해. 가엾게도 말이야."
가사도우미 가케이는 대화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우선 이것부터 먹고' 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마음 속으로 스며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편한 분위기나 관계를 원만하고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
책에는 음식을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과 맛깔스럽게 먹는 방법을 자세히 안내하고 우리나라 신라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도 소개한다. 요리를 못하는 나도 간단한 메뉴는 해 보고 싶을만큼 요리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내는 각자의 이야기 형식과 마지막 부분에 생각지 못한 반전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흥미롭다.
우리집에서는 남편이 대부분 요리를 한다. 물론 밥은 내가 준비하지만 퇴근하자마자 냉장고를 뒤져 우리 둘과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을 위해 땀 흘려가며 열심히 지지고 볶는다.
돌이켜 보면 내가 복이 참 많은 것 같다. 시부모님과 살 때는 시부모님 밥을 얻어 먹고 두분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남편 덕분에 매일이 배부르다. 나 혼자 있을 때는 계란 프라이 하나만 해서 먹는다던지, 냉장고에 있는 것만 한두개 챙겨먹게 되는데 아마 남편이 없었으면 매 끼니를 대충 때웠을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정성스러운 밥상을 준비해 주는 남편이 늘 고맙고 많이 감사하다!
'밥 한번 같이 먹는 것'으로도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는데 정성을 다해 차려주는 음식은 꼭꼭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하고 오랫동안 굳어있던 마음도 녹일 만큼 위대한 마법의 힘을 가졌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가볍게 읽을만한 도서를 소개하며 누구든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밥 한끼 같이 먹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