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르르
식구가 늘었다. 엄마가 다니는 짐네이지엄에서 알게 된 지인이 여건상 돌보기가 힘들어진 반려견이 있는데 우리 집이 애견인 집안이라는 소문을 듣고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에 들이게 된 아이다. 어린 시절 몰래 퍼먹던 프리마처럼 하이얀 몸에 앙증맞은 갈색 점이 매력적인 아이는 겁이 많고 사람을 심하게 경계해 먼저 우리 집에 정착한 소심쟁이 미키와는 달리 크고 앙칼지게 짖어댔다. 미키와 같은 단모 치와와 종인데 살짝 털찐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매번 볼과 목덜미를 입술로 꼬집어 줬다.
먼저 집에서는 ‘알마니’라고 불렸다던데 우린 그냥 ‘마니’라고 불렀다. 마니를 견제하느라 잘 자리 잡았던 미키의 배변습관은 완전히 깨져 여기저기 난사해 둔 아이들의 영역 표시를 찾아내 닦는 일이 가족 모두의 의무가 됐다.
회사에서는 무엇 때문인지 연구직군의 직급체계를 기존 연구원(사원, 대리급)–선임연구원(과·차장급)–수석연구원(부장급)에서 연구원-책임연구원으로 단순화했고 팀 내 '그룹'을 ‘파트’로 명명하게 됐다. 책임 호칭으로 불리는 많은 사우들 때문에 부쩍 책임감 있게 진행될 것 같았던 회사 업무는 약간의 변함도 없었다. 오히려 회식과 야유회에 더 진심인 눈치다.
매번 1/N로 급여 공제되는 파트 회식비가 늘 부족해 추가 거출되는 금액을 고려하면 기회비용으로 충분히 파파존스 피자와 BHC 핫후라이드 치킨까지 혼자 넉넉히 먹을 수 있겠단 생각에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는 회식만으로 파트 내 원활한 소통과 단합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깜짝 선물처럼 1박 야유회도 곁들이곤 했다. 기억에 전혀 남지 않는 무언가를 위해 “위하여!”를 수만 번 복창하고 복숭아뼈가 닳도록 양반다리 자세로 술을 따르며 피상적인 이야기만 오가니 그들은 나를 모르고 나 역시 그들을 알지 못한다.
연구소 근처 계열사 호텔에서 팀 단위의 숙박·집체 팀 세미나가 진행됐다. 사내 강사의 진행에 따라 무작위로 조를 나눠 소통의 중요성에 주안점을 둔 과정이다. 신입사원 교육 시절이 떠오를 정도로 이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구겨서 버려질 가능성이 농후한 전지(全紙)와 포스트잇을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소비했다.
일부 책임연구원들은 비즈니스호텔 안에서의 밤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밖으로 나가 기존과 같은 술자리를 가지려 했다. 혹시라도 그들의 눈에 띌까 두려워 일찌감치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팀 예산이 넉넉했는지 마련해 준 1인 1실의 트윈 베드에서 평소보다 이른 잠에 들었다가 미처 손써두지 못한 평일 네 시 오십 분 알람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무척이나 어두운 숙소 창밖은 아무런 생명체가 살지 않는 곳인 양 몹시도 고요했다. 일어난 김에 샤워를 하고 늘 출근하듯 꼼꼼하게 옆머리를 눌러 드롸이 후 선블록까지 도포했음에도 아직 여섯 시가 되지 않았다. 조식 뷔페 개시까지 한참 남아 숙소 TV로 케이블 방송을 보다가 스르르 잠에 들었다.
창을 통해 들이친 화창한 햇살에 살균·표백된 침대보에서는 상쾌한 내음이 올라왔고 새들은 힘차게 합창 중이었으며 그 소리에 모처럼 개운하게 일어나 시계를 봤더니 아홉 시가 훌쩍 넘었다. 하다 하다 집체 세미나에서 지각을 하는 사람은 나뿐일 것이다. N 연구원 놈. 친구가 아침 식사 시간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전화라도 해 줄 법한데 그러지 않았다. N도 밉고 나 자신도 너무너무 미웠다. 드래곤볼을 베지터 일행에게 뺏긴 프리저처럼 분노하며 강의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같은 조에 편성된 한 책임연구원이 내게 넌지시 말했다.
“왜 이런 데서 늦어~ 파트장이 아까 수첩에 네 이름 적더라...”
술 못하면 성공할 생각을 말라던 그 파트장에게 밉보이거나 빚지는 일은 치 떨리게 싫은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한 번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휴대폰에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뜬 것치고 몸이 지나치게 가볍다 했지만 착각에 지나지 않았고 그날 그렇게 지각을 했다. 종종 보이던 파트장의 노기는 홋카이도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원숭이 낯빛처럼 붉은데 그렇게 지각한 날에도 이처럼 새빨갛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바로 다음날 또다시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순간 죽고 싶도록 자신에게 화가 나 눈물이 맺힐 것만 같다. 휴대기기 탓을 해보려 다시 1분 앞으로 알람 재설정을 해봤더니 귀를 찌르는 소리는 전혀 문제없이 흘러나왔다. 나의 투스카니로 굉음을 내며 질주해 보지만 이미 칵핏에서 가리키는 시간은 열 시에 육박했다. 그렇게 파트장에게 나는 기강이 해이하고 불성실한 사람으로 각인됐음이 확실하다. 자칭 소신 있는 정시퇴근주의자는 이 날 만큼은 조아려진 고개를 쉽게 들 수 없었고 잘하지 않던 야근을 했다.
몹시 피로하고 삶이 공허하다. 직장 생활로 쌓인 노폐물을 잡담이라도 나누며 훌훌 털어낼 누군가가 내겐 없다. 철저하게 혼자이고 혼자라 고독하다. 어렵게 나와 끈이 닿은 소저들은 하나같이 내 타입이 아니다. 그래도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눠본 상대가 괜찮다 싶어 차로 배웅하는 길에 한 번 더 만나볼까 마음먹었던 순간 그녀가 우측 사이드 미러 시야를 자꾸 가리는 바람에 몹시도 위태로운 야간 운행을 하게 됐다. 그 바람에 잔뜩 신경이 곤두서버려 세상의 모든 존재가 싫어진 나는 휴대기기는 물론 머릿속에서도 그녀를 지웠다.
티 없이 맑은 피부에 지적인 눈빛, 엘리건트 한 생머리에 이상적인 프로포오션의 눈부신 자태를 보이는 소저들이 내가 탑승하고 있는 열차 칸에만 족히 세 명은 되는데 이들은 절대 나와 닿지 않았다. 작년에 헤어진 그녀가 추천했던 키티 케이스에 담긴 휴대기기로부터 부정적인 기운이 흘러나오나 싶어 급하게 바꾼 기기가 내 첫 스마트폰인 팬택 ‘이자르’이다. 콤팩트하고 기기 하단에 현란한 불빛을 보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터치 감도가 매우 아쉬웠던 개체다.
퇴근 버스 안에서 그 이자르 화면에 뜬 낯선 번호와의 통화를 거절했다. 부재중 전화 알림이 찍힘과 거의 동시에 날아온 문자메시지에는 ‘중동지구대인데 절도 신고를 받고 연락을 했다. 증거 확보도 됐으니 속히 오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절도는 무엇이고 증거는 또 무엇이며 겁박하듯 저 무례한 경찰의 태도는 무엇일까 싶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단숨에 그 지구대로 향했다.
머리가 희끗하고 풍채 좋은 경사가 내 앞에 가까이 서서 내려다보는데 위압감이 느껴졌다.
“6월 6일 현대백화점 버커루 매장에 갔었죠?”
그건 사실이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CCTV를 확보했으니 속히 죄를 실토하라고 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며 CCTV를 확인해야겠다고 했더니 그는 가소롭다는 듯 한숨을 내쉬곤 괜히 일을 번거롭게 만들어서 좋을 건 없다고 경고한 후 동료 순경 한 명과 함께 백화점 1층 관제실로 향했다.
관제실에서 경찰이 확보했다던 영상 속의 옷을 훔친 남자는 내가 아니었다. 그 절도 피의자의 헤어스타일은 일견 나와 흡사해 보였으나 내가 평생을 만져보지도 않은 검은색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걸치고 있었다. 잠시 생각해 봤는데 그날 내가 백화점에 입고 간 옷이 매우 눈에 띄는 레오파드 패턴의 후드티였기 때문에 영상을 앞뒤로 좀 더 돌려보자고 제안했고 백남준 비디오 아트와 같은 수많았던 화면 중 하나에 드디어 내가 등장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쓸쓸히 옷가지를 살펴보던 화면 속 내 모습을 본 그 경사는 아까와 180도 다른 태도로 수사를 하다 보면 왕왕 이럴 때가 있다면서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이 에피소드를 들은 아빠는 특히 분노하며 백화점을 그냥 둬선 안된다고 했고 나는 뭘 이런 걸 가지고 들쑤시냐며 그냥 두자고 했다. 작년까지 백화점 쟈스민 회원으로 자부심이 높았던 엄마는 백화점에서 쇼핑하다가 구조물에 걸려 다친 한 아주머니의 사건을 예로들어 그분은 삼백만 원을 보상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아빠는 백 명의 죄인을 처벌하는 것보다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는데 법의 존재 이유가 있다며 일갈했다. 매우 일리가 있는 말에 설득되어 다음날 백화점 4층 담당자인 서 과장과 통화를 했다.
서 과장은 연신 정중한 사과의 변을 하곤 드래곤볼 용신도 아니면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내가 금품이나 받자고 이러는 줄 아냐며 호통을 치다가 삼백만 원 정도면 해결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내부 회의를 거친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끊었고 다시 전화가 왔을 때에는 내 계좌번호를 물으며 또 사죄의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입금된 돈 중 백만 원은 아빠와 나눠쓰라며 엄마에게 보냈고, 남은 돈으로는 그간 내 발길이 닿지 않았던 백화점 1층 선글래스 코너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 제품을 망설임 없이 구입하는 식으로 환원해 줬다.
하마터면 수사기관을 들락거리고 송사에 휘말릴 뻔했다. 작년 신점집 무당이 권했던 굿이라도 했어야 했나 싶었다. 우연히 성명학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고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모임의 홈페이지에서 성명으로 알아보는 점수와 초, 중, 말년 운세를 재미로 봤는데 78점짜리 이름에 초·중년 운이 좋지 않다는 해석을 해줬다. 특히 결혼이나 부부운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혼을 인생 제1의 목표로 둔 나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결과였다.
문득 2년 전 신촌 거리 점집에서 개명을 하면 좋다는 제안이 떠올랐고, 주변에서 속 편해 보이는 지인이나 재벌의 이름을 입력해 봤더니 모두 100점에 가까운 결과를 보였다. 삼국지연의나 옛 위인들을 보면 아명(兒名)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니 지금이 개명의 적기로 봤다. 수소문 끝에 찾은 작명소에 새 이름을 의뢰했고 10만 원을 입금한 후 생년월일시를 이메일로 송부했다.
작명가 선생님으로부터 약 보름 후 대여섯 개의 이름을 받았고 삼십여 년을 '두성(斗性)'으로 살았는데 막상 새 이름을 고르고 덧 입히자니 영 어색하고 낯 뜨겁기까지 하다. 그래서 후보군 중에 아예 생소한 이름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지금 사용 중인 ‘동의(洞誼)’가 됐다. 이름 점수도 99점으로 높고 운세도 길하게 풀이돼 흡족했다. 작명가의 의도나 이름의 정확한 뜻을 들은 바는 없어 한자 그대로 직역해 보니 '마을(洞)을 옳게 하다(誼)'로 나더러 이장님이 되라는 것인가 싶었다. 친애하는 LLM에게 문의해 보니 '통찰력 있고 신뢰받으며 화목한 사람'이라고 해석해 준다. 개명 15년 만에 그 뜻을 듣고 대단히 감탄했다. 힘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
가정법원에 개명허가를 얻어 회사의 인사정보는 물론 각종 금융 정보와 신분증, 웹사이트까지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모든 것을 바꿨다.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같은 팀의 어떤 책임연구원은 나를 굉장히 합리적인 인물로 봤는데 무속 따위에 의지해 개명을 했다며 적잖이 실망했다는 뜻을 친구인 N 연구원을 통해 전했다.
엎질러진 물이다. 개명 덕에 2025년 현재를 큰 근심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아직도 일부 친척 어른들이나 소수의 옛 친구는 과거 이름으로 부르긴 하지만 지금은 변경 후의 이름이 내겐 더 익숙하고 친근하다.
몇 년 전 나와 남구로 역 일대를 도주했던 친구 L은 어느새 어엿한 불란서 유학파가 됐다. 그는 매년 여름방학마다 고국에 돌아올 때면 나와 만났고 그의 아버지 명의로 포천 베어스타운 리조트 회원권이 있다며 함께 입국한 불란서 친구 무리에 합류해서 가보자고 했다. 초면에 언어도 통하지 않던 그들과 2박 3일간 아웃사이더 기질을 꽁꽁 숨겨가며 어울렸던 내 모습이 매우 낯설다. 처음으로 장만한 아쿠아슈즈를 신고 잘 가지 않던 계곡에서 어린아이처럼 물놀이도 즐겼다.
그 외에는 무더위를 피해 콘도미니엄 안에서 그들과 거실에 누워 한참을 TV 시청을 하며 뒹굴뒹굴했다. 당시 TV에 등장한 miss A 수지 같은 여인은 처음으로 본 것 같은데 그저 천상계에서 잠시 속세에 들른 존재처럼 눈부신 광채를 내던 기억이 강렬하다.
고교, 대학 동창이자 팀 동료인 N 연구원은 스키장을 매우 좋아했다. 매년 겨울이면 함께 설원을 누빌 멤버를 구했는데 한 번은 나와 N 연구원, 그와 동기인 P 연구원 그리고 구매본부에서 일하는 고교 동창 H 대리까지 함께하게 됐다. 팀 워크샵이나 야유회는 싫었지만 이렇게 마음이 맞는 또래끼리의 짧은 여행은 나쁘지 않았다.
그간 알지 못했던 강원도 정선군에 발을 들였고 그곳의 쾌적한 슬로프에서 실컷 활강했다. 멤버들은 커지노도 해보자며 의기투합해 강원랜드에도 떨리는 마음으로 입장해 보게 됐다. 드디어 나도 90년대 홍콩 영화에서 봤듯 폼 나게 카드놀이를 해보나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게임장 안은 후줄근한 차림의 아줌마와 아저씨들로 붐비고 소란스러웠으며 즐비했던 슬롯머신에서는 퀭한 눈빛을 한 사람들이 따라 하기도 힘든 자세로 앉아 그림이나 숫자가 그려진 원통형 드럼을 응시하고 있었다. 종목마다 앉을자리는 물론 테이블 곁에 서서 제대로 게임을 관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우리가 픽한 종목은 ‘빅 휠(Big Wheel)’ 이란 게임으로 룰은 간단했다. 딜러가 54 등분된 대형 원판을 회전시키고 원판 위에 설치된 화살표가 멈춰 가리키는 섹션에 배팅을 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도박 중독은 나라님도 구제하기 어려운 관계로 우리는 딱 오만 원만 환전하고 잃으면 미련 없이 숙소에 돌아가기로 약속했다. 게임 테이블을 둘러싼 드센 아주머니들 틈으로 곡예하듯 팔을 들이밀어 칩을 걸어두고 진행하는 딜러의 손을 숨죽여 지켜봤다. 원판이 도는 동안 희망 회로도 따라 돌고 가슴 졸이며 두근대다가 순식간에 칩이 사라지기도 또 몇 배가 되어 돌아오는 이 맛에 중독되는구나 싶었다.
함께한 멤버 셋이 삽시간에 칩을 모두 잃었다. 나는 우리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고자 가지고 있는 모든 칩을 SILVER 섹션(승리 시 베팅액의 2배)에 모두 걸었다. 천 원짜리 녹색 칩이 너무 많아서 쌓아놓은 칩들이 피사의 사탑과 같이 위태로워 보였고 그걸 보곤 근처의 아주머니들이 피식 웃기도 했다. 원판은 또 돌았고 탄성 있는 화살표는 튕겨지듯 아슬아슬하게 SILVER를 가리켰다. 아주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홀로 우뚝 솟은 내 칩을 보곤 비웃던 사람들마저 기립박수를 쳐줬으나 칩의 수 그대로 2배 계산을 해야 했던 딜러는 욕만 안 했지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똑같은 탑 두 개를 쌓아 내게 지급했다.
그렇게 이십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손에 넣고 강원랜드를 빠져나와 기쁜 마음에 멤버들에게 피자 야식을 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싶다가도 이 좋은 기운이 나의 쏘울 메이트를 만나게 하는 데 쓰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하나 마나 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이름까지 바꾼 만큼 내년엔 꼬인듯한 일이 스르르 풀리기를 치즈 크러스트를 베어 물며 빌었다.